17세기 네덜란드의 과학자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평생을 포목상으로 살았다. 직물을 다루는 직업상 천의 표면을 관찰하고 질을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천을 자세히 보려고 렌즈를 직접 제작했고, 렌즈를 깎고 닦는 기술을 발전시켜 수백배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현미경을 만들었다. 마흔 넘어선 작업실에 들어앉아 현미경으로 온갖 것을 관찰하고 새로운 발견을 보고했다. 늦게 시작했지만, 아흔을 넘겨서까지 50여년을 현미경 관찰에 몰두했다. 그의 발견은 그가 영국의 왕립학회에 보낸 편지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미생물을 처음 관찰한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세기에 그의 편지들을 정성껏 편집해서 수십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그가 발명한 현미경은 우리가 지금 흔히 보는 것과 같이 렌즈 두개짜리 현미경이 아니었다. 원리를 따져보면 단순한 돋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돋보기는 두세배 확대 정도에 그치는데, 당시 그의 현미경이 수백배 확대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돋보기의 배율을 높이려면 렌즈의 모양새가 볼록해야 하는데, 너무 둥글면 렌즈를 통과한 빛이 색깔별로 다르게 꺾여 선명함이 떨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렌즈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레이우엔훅은 유리를 직접 갈아서 쌀알만한 렌즈를 만들었고 그 결과 수백배 확대에 성공했다. 쌀알 크기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그는 아흔에 이를 때까지 이 현미경으로 세균·적혈구·정자 등 단세포 크기까지 정밀하게 관찰했다.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는 그림으로 남았다. 현재의 현미경 기술로 관찰한 것과 똑같다. 그러나 그 그림은 그가 그린 게 아니었다! 레이우엔훅의 현미경은 너무 작아서 본인이 아니면 그 렌즈 너머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려웠기에 그는 본 것을 말로 설명하고, 화가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그림으로 옮겼다. 모델을 세워 놓고 직접 보고 그려도 쉽지 않을 텐데 관찰자의 묘사만으로 어떻게 그릴 수 있었을까.
서점에서 키크니 작가의 만화책을 집어든 이유는 내 평생 해소할 수 없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그려준다니! 그림을 부탁할 수 있다니!
작가는 ‘대신 그려주는 행위’가 치유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뛰고 밥을 못 먹는 괴로운 상황을 맞닥뜨렸다고 했다. 그 상황을 벗어나 보려고 하루에도 일고여덟번씩 뒷산을 올랐는데 효과는 잠시뿐. 반년이 넘게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한다. 머릿속 공허함을 몸이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상을 그려 올리기 시작했고 댓글에서 위로를 받았다. 급기야 댓글로 올라오는 독자들의 부탁을 받고 그리기 시작했다. 남이 본 것을 말로 받아 그리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이 작가는 타인의 ‘마음’을 받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는 그림을 그린 이와 그림을 받은 이들 모두에게 위로와 치유가 됐다. 댓글로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만 달린 것이 아니라 그 그림에서 출발한 격려와 칭찬이 줄을 이었고 고마움과 즐거움에 서로 울고 웃었다.
그 만화들을 책으로 옮기면서 6개의 갈래를 땄다. 극한 일상, 격한 소망, 찐한 사랑, 어떤 가족, 쿨한 농담, 그리고 묘한 상상. 일상에서는 지루함도 참아야 하고 작은 일들에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카페 알바생인데요. 진상 손님들은 무슨 생각 하면서 사는지 그려주세요”, “월요일 아침에 회사 가기 싫은 상황 그려주세요”, “옛날 사진 보면서 젊었던 나의 모습을 회상하는 거 그려주세요”, “여름방학에 공부 열심히 할 거예요”. 하지만 잔잔한 시간 위에 파문이 일고 간절한 바람이 인생을 끌고 간다. “회사 부장님에게 퇴사 통보하는 제 모습을 그려주세요”, “임신 테스트기 두줄 기다리는 제 모습을 그려주세요”,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타고 있는 저를 그려주세요”. 사랑은 영원한 주제. “남친 만나려고 창문으로 몰래 나가는 모습 그려주세요”, “나 차고 새 애인 만든 놈 복수하는 거 그려주세요”. 가족과 농담과 상상이 이어진다. 나는 레이우엔훅의 화가들이 그랬듯이 키크니 작가가 내 옆에 있어서, 나의 소망들을 늘 그려준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만화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