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수영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단 가면 늘 있는 ‘동호인 문화’가 부담스러웠다. 게으르게 레인을 오가고 싶건만, 그랬다간 터줏대감들로부터 타박 받기 일쑤다. 단체 레슨에 끼어 있다가 함께 회식이라도 하자는 제안을 받으면 손사래 치면서 줄행랑쳐야 한다. 그리고, 코치가 정한 모범적인 자세까지 이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사람마다 팔의 길이, 골반의 형태, 허벅지와 종아리의 생김새 등이 다 다르니 가장 좋은 자세도 다를 터인데 대부분의 경우에 국가대표 수영 선수의 자세를 배운다. 짧은 팔다리와 부족한 근육으로 따라 하자니 가끔은 우스운 장면을 연출하고 물도 먹어가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런 장애물에도 물에 들어가 몸 적시고 물장구치는 것을 즐기던 내가 수영장 출입을 끊은 이유는 등에 생긴 혹 때문이었다. 갑자기 생겨 내 눈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수영복을 입고 남에게 보이는 것이 창피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 받고 떼어내면 될 일인데, 그건 또 무서웠다. 그냥 수영장에 가지 않는 것으로 5년을 보냈다. 얼마 전, 정말 용기를 내서 병원을 찾았고 무사히 제거 수술을 마쳤다. 혹을 달고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불편한 것들을 감수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눈곱만큼 경험했다. 혹을 제거하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고백을 했는데 비슷한 혹이 생겨 수술한 사람도 제법 됐다. 나름, 보이지 않는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데이빗>은 처음부터 끝까지 돼지와 사람이 무엇이 다른지, 그 사이를 나누는 경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만화다. 다름과 같음,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불편함을 다룬다. 평범한 엄마 돼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데이빗은 말하고 생각할 줄 아는 돼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이나 돌연변이 같은 구차한 설명은 붙어 있지 않다. 그냥, 그런 돼지가 태어났다. 그런데 엄밀히 이야기하면 데이빗은 스스로 돼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데이빗을 돼지라고 부르는 것도 맞는지 모르겠다. 데이빗은 돼지의 몸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이것도 만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의 영혼이 빙의했다거나 몸을 빼앗긴 우주인이라는 식의 스토리텔링도 없다. 돼지의 몸을 가졌지만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여기는, 혹은 사람의 마음을 가졌지만 몸은 돼지인, 데이빗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경계에 던져두어 독자들을 다양한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과학철학 첫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만났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커다란 트럭에 부딪히기 직전에 바로 죽을 분량의 독을 삼킨 사람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사고를 당한 사람의 사망 원인을 따지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 않을 일이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 따져가다 보면, 생각이 분명해지고 생각의 구조를 잘 짤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철학자들이 이런 극단적인 사고 실험을 통해서 논증을 하고 생각의 길을 튼다. 그런 면에서 <데이빗>을 읽는 것은 작가가 던진 사고 실험을 따라 해보는 일이다. 데이빗과 같은 존재들은 늘, 새로운 생각을 여는 열쇠가 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독자가 얼마나 이 실험을 반복하고 곱씹는가에 달려 있다.
분류학에서 생물의 종을 나눌 때, 생김새, 생리적·생식적·유전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그런데 여러 특성이 종 사이에 걸쳐 있어서 분명하게 나누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개체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늘 어려움에 처한다. 경계를 흐리는 성질이 생존에 월등한 이점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고 오히려 외면당하거나 배척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경계에 서야 경계를 넘을 수 있다.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그들에게 종 전체의 생존을 걸어야 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하지만 대부분, 다수와 달라서 ‘경계’에 선 것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당한다. 때로는 데이빗처럼 이용당한다. 경계에 선 존재들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용기를 내서 스스로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책의 마지막 장에 ‘데이빗’, 한 단어만 써 놓은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만화애호가
※격주에 한번,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