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버지니아 헤이슨·테리 오어 지음, 김미선 옮김/뿌리와이파리(2021) 나는 포유류이며, 암컷이고, 여성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내 정체성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영장류의 한 종, 호모 사피엔스로 자신을 생각하며 살아온 날들이 뒤흔들렸다. 가부장적인 문화와 관습적 사고에 찌든 내 삶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대부분 여성 과학자의 이름이 낯설었고, 포유류의 번식이 이토록 다양한지 상상조차 못했다. 진화의 과정에서 남성 페니스의 출현을 알면서 여성의 포궁(자궁)이나 태반의 출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에 자주 쓰는 말에서 여성의 질이나 난자, 수정, 일부일처제 등이 얼마나 젠더 편향적인 용어인지를 알게 되었고, 우리가 교과서에 배운 생물학 지식이 수컷 관점이며 영장류 중심, 인간 중심이었음을 확인했다. 책제목 <포유류의 번식: 암컷 관점>에서 포유류, 번식, 암컷 관점이라는 세가지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포유류인가? 진화의 역사에 포유류의 등장은 중대한 사건이었다. 태반생식을 하고 젖먹이 자식을 키우는 동물이 1억5천만년 동안 진화했다. 바로 우리가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생활사는 이들 포유류 조상을 따르고 있다. 해부학적이나 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은 다른 포유류와 닮아 있다. 유전체의 분자적 상호작용, 내분비적 통제, 호르몬 주기, 신경분포 등에서 우리는 평균적인 포유류일 뿐이다. 포유류의 한 종으로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생물학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알 수 있듯 포유류의 진화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왜 번식을 연구하는가? 포유류 진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측면이 번식이기 때문이다. 포유류는 다양한 번식 전략으로 적응방산에 성공했다. 자연선택이 생명의 다양성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포유류의 번식을 알아야 한다. 왜 암컷 관점인가? 포유류의 번식 성공은 전적으로 암컷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암컷은 짝짓기와 수태는 물론 자식의 생존과 성장, 발달의 모든 측면에 관여한다. 난자발생, 배란, 수태, 착상, 출산, 젖분비, 젖떼기와 같은 번식 과정은 암컷의 주도로 이뤄진다. 암컷은 ‘진화의 능동적 참여자’이며 ‘번식의 주체’이다. 그런데 지금껏 생물학에서 표준은 수컷이었다. 암컷 관점은 비표준적인 주제로 소홀히 다뤄졌다. 일례로 호흡, 소화, 대사, 순환을 연구하는 생리학에서 암컷의 번식 상태는 예외적인 경우로 무시되었다. 임신과 출산, 젖분비의 시기에 호르몬과 대사 활동에 변화가 생긴다. 체온이 오르고 몸 속 에너지의 흐름이 변하는데 그 이유로 정상에서 벗어난 개체로 취급되었다. 전 종에 걸쳐 대사를 비교하는 기초대사율은 수컷을 표준 척도로 삼고 있다. 이외에도 생물학에서 암컷과 번식을 홀대하는 개념과 용어는 부지기수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남녀 성에 관련된 수태의 학문은 남성 편향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의 과학도 더 젠더 중립적으로 만들 때가 왔다”고 말한다. 책의 전체적인 관점뿐만 아닌 용어 선택이나 인물 소개에서도 이들이 지향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포유류 암컷의 무한 능력에 감탄하고, “여성은 사회적 포유류다”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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