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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양명학, 우리 시대의 대안적 사유

등록 2021-05-28 05:00수정 2021-05-28 10:10

[책&생각] 이권우의 인문산책

양명학, 돌봄과 공생의 길

김세정 지음/충남대출판문화원(2020)

위기의 증후가 너무나 뚜렷하다. 여섯 번째 멸종은 한낱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위기에 눈 감고 임박한 파국을 모르쇠하는 것은 기존 체제에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일대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동안 믿고 따랐던 가치관을 폐기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공유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뜻있는 이들이 생태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던 말을 곱씹으면서 든 생각이다.

성장신화에 사로잡힌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세계관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 법이다. 오래된 지혜의 우물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싶어 두레박을 내렸다. <양명학, 돌봄과 공생의 길>은 왕양명의 사유를 생명철학의 관점에서 해설하면서 대안적 사유체계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지은이의 해설을 쫓다가 만난 인상 깊은 구절은 천지만물 일체설이다. “무릇 사람이란 천지의 마음이다. 천지만물은 본래 나와 한 몸이니 살아 있는 존재물들의 곤궁함과 고통은 어느 것인들 내 몸의 절실한 아픔이 아니겠는가?”라 했다. 본디 유가철학은 내 부모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나가면 평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왕양명은 그 마음을 뭇 생명을 사랑하는 데까지 확장했다. 지은이도 이 점에 주목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대립과 갈등 또는 지배와 착취의 관계가 아니라 돌봄과 공생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양명학을 재해석한다.

시비지심을 설명하는 대목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지은이는 시비지심이 흔히 말하는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분별심이 아니라 “어떤 존재물이 고통스러워할 때 그것이 마치 나의 아픔으로 느껴지는” 생명의 온전성에 관한 판단이라 말한다. 왕양명은 이 시비지심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알고 배우지 않더라도 능한 양지라 말했다. 맹자의 영향이 짙은데, 맹자를 넘어선 독창성도 엿보인다. 측은지심과 불인지심은 같다. 여기에 덧붙여 왕양명은 풀과 나무가 잘려나간 것을 보면 구제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민휼지심이라, 기왓장이 무너지고 돌이 깨진 것을 보면 애석하게 여기게 되는 마음을 고석지심이라 했다. 모든 존재물의 생명 손상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니 인간을 감응과 통각의 주체로 보고 있는 셈이다.

우리 시대를 일러 인류세라 한다. 인류가 기후체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여 붙은 말이다. 다가오는 위기상황을 막으려면 인류의 주체적 결단과 실천이 중요하다. 지은이는 심층생태주의와 양명학을 비교한다. 앞엣것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라는 자리에서 내려와 자연생태계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에 지은이는 왕양명이 “대저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라고 말한 대목을 주목하자고 한다. 우주 자연 안에서 인간을 중추적인 존재로 평가하는 말인바, 이는 오늘 인류에게 주어진 사명인, 파괴된 생태계를 치유하는 주체라는 위상을 인간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을 따질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길에 지혜의 빛을 던져준다면 함께 읽고 토론하며 다듬고 고치고 덧붙여야 할 일이다. 양명학이 고갈된 인문적 상상력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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