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출근길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작가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밤새워 한잔하고 회사 마당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술상 위를 부지런히 오갔을 온갖 이야기 끝에 내 생각을 해 준 것은 고맙지만 출근길에 아침 술자리로 직행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책을 만들다 보니,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서 국밥을 먹기도 하고, 호기를 부려 해장술을 나누기도 했다. 드물게 자리가 저녁까지 다시 이어지기도 했지만 해가 중천에 있는데,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배웅하는 일이 많았다.
난,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시가, 그림이, 노래가 좋아서 수고를 마다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기꺼이 같이 있었다. 그들이 다른 일에 서툰 것도 좋았다. 사랑에 서툴러 눈물로 시를 낳고 돈에 서툴러 생활고에 눌려 노래가 새어나오기도 한다. 모든 일에 매끈하고 능숙하다면, 그들이 내가 사랑하는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들이 아프고 외로운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었을까? 그들이 외롭고 힘들 때, 아니면,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술잔을 함께 기울였던 것은 그들은 써낸 글만으로도 그들이 세상에 온 이유가 충분한 사람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상은 녹록지 않다. 텔레비전에 이름을 알리고 건물을 사서 재테크를 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이 있지만, 여전히 나만의, 무명을 견디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빈한한 단칸방에서 한강뷰 아파트로 집을 바꾸어 가는 ‘아티스트’들이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곤궁함 속에서 끈질기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아티스트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그들이 모든 것에 대해서 유능하기를 요구한다. 부인, 딸, 어머니 같은 가족들의 기대부터 동창이나 친구들까지 가까운 이가 돈을 잘 벌고 남들 앞에 번듯하기를 원한다.
<아티스트>는 그 요구에 부응해 보려고 했던 소설가 신득녕(44살·미혼), 화가 곽경수(46살·이혼), 뮤지션 천종섭(42살·미혼)의 출세기이자 실패기이다. 종섭은 득녕의 코치를 받아 “약간의 힐링, 약간의 조언, 약간의 방관”을 담은 책, <가튼 놈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경수는 수도권에 있는 각종 진흥원과 지원센터를 통합한 통합예술진흥원이 발족할 때, 원장 후보자의 경쟁자를 제거하는 일을 해서 한자리 꿰찬다. 득녕은 경멸하던 문학상을 받고 문학잡지를 성공적으로 시작해서 많은 독자를 얻는다.
상대 후보를 비방하고 위협해서 자리를 얻은 경수는 회사 카드를 쓰면서 허세를 부리고 정치에 휘말려 쫓겨난다.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주변에 시달린 종섭은 소모되고 만다. 규모 있게 잡지와 출판사를 꾸리던 득녕도 이상은 꺾이고 행방이 묘연하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만만치 않은 재능이 있는 이들이 서툰 일에 나서지만 종종 끝이 좋지 않다. 물론, 세상엔 모든 것에 능숙하고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들도 있을 것이고 그들의 성취도 즐겁다. 하지만, 마음속엔 지금 어딘가에서 나름의 예술을 하고 있을 아티스트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아티스트>를 읽으면서 욕망을 들키면 부끄럽다. 세상 모두가 욕망을 부추기니 누군들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나이 들면서 커진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쓰러지고 만다. 살짝 부끄러운 나도, 나이 들어 욕심을 놓지 못하면, 서로 따끔하게 혼내주자고 약속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시간은 흐르고 손가락 걸었던 녀석들과도 연락이 뜸해지니 행여 부끄러운 일을 할까 걱정이 크다. 만화애호가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격주에 한번,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