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살롱 드 여울
패션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
작가로 거듭난 패션인, 유튜버 ‘밀라노 할머니’ 장명숙
구독자 88만명 육박하는 크리에이터이자 ‘딸들의 멘토’
패션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
작가로 거듭난 패션인, 유튜버 ‘밀라노 할머니’ 장명숙
구독자 88만명 육박하는 크리에이터이자 ‘딸들의 멘토’
개성 넘치는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꿈과 일상과 배움의 열정을 나누는 곳, 그곳이 바로 살롱이지요. 작가 정여울이 이 시대의 빛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속 깊은 정담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우리 엄마의 핍박이 저를 만들었어요.” “핍박과 싸울수록 나는 더 강해졌죠.” “나는 시간빈곤자가 아니라 시간관리자예요.”
한국 최초의 밀라노 유학생, 구독자 87만 유튜버 밀라논나(밀라노라는 지명과 할머니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논나’의 합성어), 서울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의상디자이너, 이탈리아 정부 명예 기사작위 수훈자 장명숙의 ‘유쾌한 띵언(명언)’이다. ‘띵언 제조기’로 불리는 밀라논나의 입가에서는 시종일관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미소가 아름다워서 나도 따라 자꾸만 웃게 된다. 나는 밀라논나의 따스한 말들을 이렇게 번역해본다. 괜찮아! 더 많은 것을 원해도 된단다! 마음껏 원하고,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사랑하거라! 꿈이 여러개여도 괜찮아! 우리는 수많은 꿈을 이룰 권리가 있어!
―반갑습니다. 밀라논나 장명숙(이하 밀라논나) 선생님.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젊고 아름다우세요. 그런데 이번 신간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어요. 나이 자체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세련미의 아이콘인 선생님이, 어릴 때는 ‘못생겼다’는 핍박을 들으셨다고요.
“얼굴은 너무 작고 입은 너무 커서 ‘못생겼다’는 구박을 받았어요. ‘꼭 예뻐질 거야, 패션디자이너가 돼서 멋지게 변신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꿈을 이루어서 패션디자이너가 되니까, 어머니가 이러세요. 명숙아, 네가 보는 이탈리아 잡지를 보니, 패션모델들 입술이 꼭 널 닮았네. 내 딸 못생겨서 시집 어찌 보내나 걱정이었는데, 이제 보니 내가 널 최첨단 유행에 맞게 낳아주었구나! 이러시는 거예요. 나처럼 입 큰 여자도 미인 소리를 들을 걸 미리 아시고, 절 이렇게 낳아주셨나 봐요.(웃음) 어머니의 구박이 저를 패션디자이너의 길로 이끈 거죠.”
―지금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셔서 그렇게 농담도 하시지만, 한국 최초의 밀라노 유학생이 되고,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한국과 밀라노를 오가며 첨단 유행을 이끌어가고,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일흔살을 앞두고 유튜버가 되신 일까지,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을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아무리 바빠도 항상 책을 읽고 공부하는 습관이 밀라논나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이를 악물고 노력했지요. 지금도 베갯머리에서 이탈리아어 사전을 찾아가면서 공부를 해요. 아버지 영향으로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며 자랐고, 힘들 때마다 책 속의 명언을 떠올렸죠. 큰아들이 뇌수술을 하고 난 뒤 ‘뇌’에 대해서 궁금한 모든 책을 다 찾아서 봤지요. ‘뇌’를 공부하다 보니까 심리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온갖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는 ‘큐앤에이’(Q&A) 인생상담도 하게 되고, 인생의 위기가 올 때마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어떻게든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려고 노력했지요.”
―항상 쉼 없이 공부하고 남을 돕는 삶을 실천하는 것도 멋지지만, 밀라논나의 또 다른 매력은 ‘마음의 평온을 지키는 법’을 너무 잘 알고 계신다는 점이에요.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를 보면, 여자라서, 아시아인이라서, 일하는 엄마라서, 서럽고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다고 쓰셨어요. 저도 제 트라우마가 떠오르면서 울컥하더라고요. 그렇게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건강한 ‘멘탈’을 유지하게 된 비결이 있을까요. 우리 마음속에 마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겨진 상처의 말들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밀라논나 선생님의 비법을 듣고 싶습니다.
“심리학 책을 많이 읽으면서 ‘내면아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생겼어요. 아직도 어머니에게 들었던 부정적인 말들이 내 안에서 올라올 때가 있어요. ‘넌 참 유난스럽다, 너랑 똑같은 딸 둘만 낳아서 고생해봐라’라고 하신 적도 있죠. 그땐 참 아픈 말들이었지만, 이젠 제가 내면아이를 달래면서 말하죠. 명숙아, 언제까지 이렇게 징징거릴 거야! 그건 여섯살 때 일이야. 이제 어른이 됐잖아. 그분도 나름 사정이 있었겠지. 이렇게 제 안의 내면아이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나를 꺼내지요. 자기 안의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자주 달래주고, 토닥여주고, 응원해주세요.”
―책에서 인생의 멘토 브라가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명숙은 디자이너로 살기엔 보수적이고,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살기엔 감성이 풍부해 평생 갈등할 것”이라고 하셨다고요. 상처받진 않으셨는지요? 제가 다 뜨끔하더라고요.(웃음) 창작과 교육, 또는 창작과 비평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전혀 상처 안 받았어요.(웃음) 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요. 브라가 선생님 말이 맞아요. 밀라노에서 디자인 공부할 때 제 옆에 ‘돌체앤가바나’의 창업자 도메니코 돌체가 있었거든요. 그 친구의 천재적인 디자인을 보면서 생각했지요. 이 사람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구나. 하지만 나는 한계가 있구나. 저는 디자인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50살에 서서히, 딱 그만뒀어요. 제 한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미련 없이 접은 거예요. 디자인 말고도 하고픈 일이 많고요.(웃음)”
―단호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 참 어려운데 선생님은 그런 ‘내 안의 바운더리(boundary)’를 정하기를 정말 잘하세요. ‘바운더리 심리학’도 그런 것이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 정하기, 거절해야 하는 일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의 경계 정하기, 나다운 것과 나답지 않은 것의 경계를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평온을 찾아주는 길이죠. 그래서 책 속에서 한 기업의 ‘의전차량 제공’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모습이 참 멋졌어요. 욕망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잖아요.
“그때 저에게 일자리를 제안하신 분이 좋은 조건을 제시했죠. 계약 조건도 좋았지만, 의전차량 제공도 파격적이었어요. 차량이 준비된다면 당장은 편하지만, 나중에 일을 그만뒀을 때 너무 상실감이 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예의 바르게 거절했어요. 화려한 조건을 받아들이면 제가 그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미련이 생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차량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나중에 그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때 깨끗하게 미련 없이 그만뒀어요.”
―끝없이 변화하는 불안한 노동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글이었어요. ‘갑과 을’의 피할 수 없는 권력관계에서 ‘을이면서도 자존감 넘치는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을’의 위치에서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참 어려운 시대이니까요.
“돈보다는 자유가 훨씬 중요하니까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특권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해요. 훗날 그 자리를 떠날 때 미련이 남을 것 같은 특혜는 거절할 용기도 필요하지요.”
―인생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의 한 대목을 들려드리고 싶더라고요. 사르트르의 문장을 인용하시면서 말씀하셨지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걸 붙들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걸 심사숙고해 선택하여 그 택한 일에 후회하지 말자.”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기도문이 있어요.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위한 기도이지요.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이 기도가 저에게 늘 힘이 됩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구분하는 지혜. 이 문장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내 한계가 과연 어디인가를 가늠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은 반항심이 생겨요. 때로는 그 한계를 훌쩍 뛰어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맞아요. 제가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을 때 첫번째 충격이 바로 ‘국경을 넘는 일’이었어요.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는 것이 당시에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일단 아버지가 허락을 쉽게 안 해주셨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유학을 갔기 때문에 아이 걱정도 태산이었죠. 모든 것이 어마어마한 경계를 뛰어넘는 모험이었죠.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로 국경을 넘는데, 아무런 경계선이 없는 거예요. 비행기도 여권도 필요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렇게 경계를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지요.”
―그렇게 경계를 훌쩍, 아무 고통 없이 뛰어넘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본다면, 저의 꽉 막힌 상상력도 언젠가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선생님 결혼식 때 흔히 쓰는 면사포를 거부하셨다는 에피소드가 바로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하하, 그때는 결혼할 때 다들 면사포를 썼거든요. 나는 그 치렁치렁한 베일이 싫었어요. 서로 이미 다 아는데 뭐 하러 얼굴을 가려.(웃음) 아우, 나는 그런 내숭이 싫더라. 난 내숭 떨기 싫다, 베일이 아니라 내가 디자인한 모자를 쓰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이 엄청나게 반대하셨지요. 아주 유난을 떤다고, 아주 별난 게 나왔다고.(웃음) 남들처럼 하라고, 남들 눈이 있지 않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어머니, 전 남이 아니에요. 평생 ‘남이 보더라도’라는 틀에 갇히기 싫었어요.”
―틀에 박히지 않은 삶,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남과의 비교도 멈추고, 끝없이 후회를 남기는 습관도 버려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껄껄 하지 말자’라는 명언도 남기셨잖아요. 그렇게 할걸, 진작 할걸, 이렇게 ‘걸 걸’ 하면서 후회하지 말자고요.
“껄껄 하지 말자, 그래요. 그렇게 후회없는 삶을 위해서 저는 남과 비교하는 일을 멈췄어요. 비교도 안 하고, 후회도 안 해요.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은 두 아들이 어렸을 때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 거죠. 지금도 두 아들에게 ‘엄마가 미안해’라고 표현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아들들이 날 닮아서 너무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같아서, 쉬어가며, 놀아가며, 즐기며 살라고 이야기해요.”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된 두 사건이 ‘큰아들의 대수술’과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라고 하셨지요. 큰아들이 어린 나이에 엄청난 뇌수술을 해야 했고, 구사일생으로 아들이 살아난 뒤,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많은 타인의 아픔을 돌보는 삶을 시작하셨다고요. 또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 백화점에서 중책을 맡고 계셨는데, 마침 근무일이 아닌 날 그 사건이 일어나서 함께 일하던 분들이 참사를 당하셨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왈칵 났어요. 그 두가지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이 아름다웠어요.
“큰아들의 대수술을 겪으면서 하루아침에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했어요. 마리 앙투아네트가 감옥에서의 마지막 날 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것처럼, 내 머리카락도 하루 만에 수십년을 살아낸 것처럼 변해버렸죠. 고통스러웠지만, 아들이 기적처럼 살아난 것만으로도 제가 그 축복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둘째 아들한테는 공부하란 말도 안 했어요. 세계관이 바뀐 거죠.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은 또 한번 제 인생을 뒤흔들었죠. 하필 내가 출근하지 않은 날 그 사건이 일어났을까, 나를 살려주신 이유가 뭘까, 고민하면서, 아파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돕는 삶을 살자고 결심했죠. 밀라논나 활동도, 이 책의 인세도, 대부분 보육원으로 들어가요. 아파하는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어요.”
―자신을 위한 돈을 거의 안 쓰시는 것 같아요.
“전 돈 쓸 일이 거의 없잖아요. 머리도 다 제가 잘라요. 옷도 옛날에 입던 옷을 입어요. 팔찌나 목걸이 같은 장신구들도 다 한참 일하던 때 마련한 것들, 내가 직접 디자인한 것들이거나 선물받은 것들이에요. 절 위한 돈은 필요 없어요. 지금 입고 있는 이 블라우스는 90년 된 옷이에요. 할머니가 한땀 한땀 손으로 바느질해서 지어내신 옷이에요.”
―90년 된 블라우스라니, 놀라운데요. (눈이 시리게 하얀 그 블라우스는 누가 봐도 정말 아름다운 옷이었다.) 밀라논나의 진짜 매력은 ‘옷 잘 입는 할머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옷장에 있는 옷만으로도 어떻게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신 점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명품을 산답시고 경쟁하듯이 백화점 앞에 줄을 서고, 코로나로 인해 ‘보복소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스러워요. 명품은 단지 브랜드가 아니라 ‘내 인생에 어울리는 옷’, ‘나를 있는 그대로 빛내주는 소품’이에요. 난 화장품도 비누도 최소한으로 써요. 물로만 세수하고 샤워해요. 몸에 가능한 한 화학적인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해요.”
―미니멀리즘과 제로웨이스트 운동도 이미 하고 계시네요. 또한 내 아픔을 겪으면서 타인의 아픔을 보살피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밀라논나 선생님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눈부신 영감이 아닐까 생각해봐요. “기성세대는 인생을 숙제 풀듯 살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축제처럼 살게 해줍시다.” 이 문장도 좋았어요. 엠제트(MZ)세대들이 밀라논나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꼰대스러움이 전혀 없으니까요. 너의 날개를 펼쳐 마음껏 날라고 용기를 주시니까요.
“저는 젊은이들에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죠. 누구에게나 그래요. 그게 후회를 가장 덜 하는 방법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인생상담을 요청하지만, 결국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 사랑이란 그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중요해요.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살고 싶은 대로 살게 해줘야 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디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았으면 좋겠어요.”
―밀라논나 선생님으로 인해 저도 ‘나이 드는 것’이 두렵기보다는 ‘더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시간이 가는 것을 무작정 두려워하는 마음의 습관을 내려놓게 되어요. 저렇게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다, 나이 들수록 더 눈부시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 위로받습니다. 밀라논나 덕분에 이제 나이 듦이 두렵지 않아요(웃음).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서, 제 이야기를 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본격적인 신문사 인터뷰는 오랜만이라 더욱 뜻깊은 자리였네요. 여러분, 차오 아미치(안녕, 친구들)!”
“인생의 가장 찬란한 때가 바로 노년이다. 원한다면, 가만히 앉아 하루 종일 햇살도 볼 수 있으니 눈이 부시지 않은가.” 책 속의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며, 밀라논나처럼 환하게 미소짓는 법을 배운다. 밀라논나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을 나중에 다시 보니, 밀라논나가 오히려 나보다 훨씬 밝게 웃고 있어 깜짝 놀란다. 나는 저토록 해맑게 웃는 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다. 나는 아직 내 안의 어둠을 극복하지 못했구나. 그러나 밀라논나와 함께라면 왠지 다 괜찮아질 것만 같다.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유튜브를 보고,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 내내 나는 ‘내 안의 따사로운 햇살’이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싱그러운 광합성을 즐기고 있는 듯한 행복한 착시를 느꼈다. 햇살처럼 따사로운 멋쟁이 언니 밀라논나와의 대화를 여기, ‘살롱 드 여울’에 소담스럽게 담을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달리되, 멈춤을 두려워하지 않기. 꿈꾸되, 집착하지 않기. 사랑하되, 때론 놓아주기. 밀라논나를 통해 나는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고, 절정의 순간, 미련 없이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배운다.
정여울 작가
할머니가 직접 바느질해서 만들어준 블라우스를 여전히 즐겨 입는 밀라논나 장명숙씨. 사진 이승원 작가
“명품은 브랜드가 아니라 ‘내 인생에 어울리는 옷’이죠”
내 속의 아이, 지금도 응원하죠
미소가 아름다운 밀라논나 장명숙씨. 사진 이승원 작가
밀라논나 장명숙씨는 어떤 공간에서도 환하게 미소지으며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사진 이승원 작가
저마다 사연이 있는 추억의 액세서리들과 편안한 신발이 멋스럽다. 사진 이승원 작가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씨가 미소짓고 있다. 사진 이승원 작가
“돈보다 자유…남과 비교 멈추고 살고싶은대로 살았으면”
90년 된 옷도 여전히 ‘현역’이다
신발끈을 고쳐묶는 밀라논나의 모든 동작이 활기차고 우아했다. 사진 이승원 작가
말하는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경청하는 밀라논나. 사진 이승원 작가
달리되, 멈춤을 두려워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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