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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모든 게 멈춰버린 듯 힘든 시대…그래도 손 붙잡고 함께 가야죠”

등록 2022-04-10 08:59수정 2022-04-10 09:05

[한겨레S] 살롱 드 여울
김소연 시인
사진/이승원 작가
사진/이승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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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시인에게 길을 묻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일상의 표면적 언어만으로는 슬픔을 이겨낼 수 없을 때. 삶의 밑바닥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시인의 언어가 간절해진다. 일상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안정을 갈구하기에 고통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투명함에 다다르지 못한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괜찮은 척, 위로하는 척, 정상인 척하느라 마음 깊은 곳의 외로움을 자꾸만 숨기곤 한다. 하루 종일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와 시집을 펼치면 비로소 내 마음이 거기 있는 것 같아 눈물이 차오를 때가 있다.

1993년 데뷔 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등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아

시 ‘걸리버’에서 김소연은 속삭인다. “도무지 묶이지 않는 너무 먼 차이”를 사랑하고, “출구 없는 삶에/ 문을 그려넣는 마음”을 알고, “도처의 소리 소문 없는 죽음들”을 본다고. 그것이 시인의 마음이다. 아무리 세상이 낡은 절망으로 시들어가도 “세계지도를 맨 처음 들여다보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존재, 그가 바로 시인이다. 나는 시라는 피난처에서 비로소 부족한 나를 있는 힘껏 보듬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힘든 시간에는 시인의 속삭임이 더 간절해진다. 내게 김소연 시인은 그런 사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문득 길을 잃었을 때, 시인의 문장을 나침반 삼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김소연 시인은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으로 데뷔했고 2011년 현대문학상을 받았으며, <눈물이라는 뼈> <극에 달하다> <수학자의 아침> 등이 모두 장기 베스트셀러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수학자의 아침>과 <마음사전>을 극찬하여 김소연 시인의 책들은 더욱 잘 알려졌다. 지상에 ‘살롱 드 여울’이라는 공간을 만든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초대하고 싶은 ‘감성의 재벌’, 김소연 시인과 아침달 출판사에서 만났다. 우리는 송승언 시인이 정성스레 내려준 향기로운 원두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겨운 시기, 체념하지 않기

―힘들 때 더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작가님이 제겐 그런 사람이세요. 사실 처음엔 다가가기 어려웠어요.(웃음) ‘왠지 저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라는 느낌이 들어서 막막했는데, 그 순간 이미 저는 김소연 시인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시인의 친구가 되려면 아주 높은 지성과 감성의 커트라인을 통과해야 할 것 같았는데, 그렇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마저 마냥 좋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인터뷰를 청했는데 ‘너무 좋지요’라고 해주셔서 정말 오랜만에 ‘심쿵’했네요. 대선 이후 나라 안팎의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워 더더욱 시인에게 길을 물어보고 싶어졌어요.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심정이지요.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뭔가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되돌릴 수 있다는 느낌보다는 ‘인류의 성질이 변하면서 생긴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지 절망이 크다는 느낌보다 ‘이 상황을 이해하고 알아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이런 시대가 우리에게 도래한 것에 대해 거부감이나 체념으로 버틸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많은 것들을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사진/이승원 작가
사진/이승원 작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참혹한 진실까지도, 이젠 똑바로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서로를 더 격렬하게, 미친 듯이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대선 이후에 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작가님, 우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절박하게 묻는 독자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분들에게 답을 드리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했어요.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필요해요’라고 속삭이니까, 나는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길을 걷잖아요. 빗방울에 맞아 살해당해서는 안 되겠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빗방울에 맞는 것조차 조심하는 그 마음이 단지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끝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꿋꿋하게 버텨야 해요. 이럴 때일수록 더욱 격렬하게 서로를 돌봐야 하니, 우울할 시간조차 없어요.

“맞아요.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나를 알게 되었어요.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여행을 못 해도 괜찮은 나를 발견한 거죠. 그동안 너무 많은 모임들 속에서 침범을 경험했던 거죠. 거리두기 함으로써 나를 지킬 수 있었고, 부당한 침범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대구에 사는 한 시인이 오랜만에 카톡을 보내셨는데, 그땐 사회적 거리두기가 극에 달했던 시기거든요. 걱정스레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이러시는 거예요. ‘내심 달콤합니다.’(웃음) 우리가 몰랐던 우리 자신을 알게 된 거죠. 여행을 못 가도, 모임이 불가능해도, 오히려 괜찮은 나를 발견한 거예요.”

“나는 씩씩하다” 스스로 다독이기

―약속은 줄었지만 ‘그냥 나로 살 수 있는 시간’은 훨씬 늘어난 느낌이었어요.

“팬데믹과 대선을 거쳐오면서, 뭔가 ‘유턴’을 하는 느낌이죠. 모든 것이 멈춰버린 느낌이라 힘든 시간이지만, 유턴하여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근원에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예컨대 팬데믹으로 인해 인류는 임박한 기후위기에 대해 이제야 정신 차리고 바라보게 된 것 아닐까요. 고통스러운 시기이지만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힘겨운 때 거치며 마음 여백 생겨…이젠 고집스럽게라도 원하는 삶 살고파”

―맞아요. 언론에서는 부동산과 주식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마치 세상의 유일한 주류인 것처럼 떠들썩하지만, 사실 ‘이제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분들도 많거든요. 제주도에 서점이 200개가 넘는다고 해요.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동물과 식물에 대한 사랑, 비건 푸드에 대한 대중의 관심, 환경친화적인 삶을 실천하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진심인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마음의 여백이 생겨야만 보이는 것들이지요. 이제는 고집을 부려서라도 그냥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졌어요. 내가 원하는 삶을 이해해주는 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고집스럽게 살아가고 싶어요. 대선 결과가 더욱 명확하게 ‘각자도생의 시대’를 선언해버린 느낌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고집스러움도 필요해요. 내 인생에 한번 똥고집을 부릴 만한, 되게 괜찮은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해요.”

사진/이승원 작가
사진/이승원 작가

―고집스러움이 이렇게 아름다운 울림으로 다가온 적은 처음인데요. 저마다의 아름다운 고집스러움으로, 서로의 손 꼭 붙잡고 뭉치고 싶은 그 사람들 대열에 저도 끼고 싶어집니다.

“그래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요새는 나 혼자만이라도 이렇게 좀 어여쁜 생각을 가져보려고 노력해요. 안 그러면 너무 한숨이 나오니까.(웃음)”

―요새는 어떤 어여쁜 생각을 하나요?

“엘피 음반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시간, 오래전 그만둔 피아노를 다시 배우는 시간이 참 좋아요. 건반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적 상상이 좋아요.”

―저도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잃어버린 ‘내면아이’의 그늘진 시간을 되찾는 느낌이에요. 그런 일상 속의 소중한 몸짓들이 모여 절망을 견뎌낼 힘이 쌓여가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 글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김소연 시인은 끈덕진 우울과 참 오래 싸웠구나. 무조건 위로하는 글이 아니라 남몰래 우울과 오래 싸워본 사람만이 가진 단단함이 느껴져요.

“우울함보다 모멸감이 좀 더 맞는 표현이었죠. 그래도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결핍과 억압 속에서 나는 비교적 씩씩하다고 스스로 다독였어요. 나의 쓰라린 상처들에서 언젠간 통증이 빠져나갈 것을 알았고, 흉터가 남아도 ‘뭐 어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거라는 낙관 같은 게 늘 있었는데, 어린 시절 자잘하게 미리 풍파를 겪은 경험이 그런 낙관을 가능하게 했던 거 같아요. 불행도 행복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감각이 생긴 거죠.”

―작가님이 늘 곁에 두고 읽는 책들도 궁금한데요.

“정희진 선생의 글을 좋아해요. “가족은 만악의 근원이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용기가 있는 분이에요. 날카로운 통찰력과 의도치 않은 유머가 함께하는 순간이 있어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도 늘 곁에 두고 읽습니다.”

사진/이승원 작가
사진/이승원 작가

농밀하고 짧은 글의 멋

―시 쓰기 강의를 할 때 무엇을 강조하시는지요?

“시 쓰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어요.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걸어가 보라고 등을 떠밀죠. 시의 문법이 따로 정답처럼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원래 가진 개성을 최대한 살리는 글을 쓰도록 도와주지요. 시를 쓰고 싶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는, 꼭 시를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농밀한 짧은 글을 쓰라’고 해요.”

―농밀한 짧은 글! 멋진 조언인데요. 산문이 기본적으로 이해받기를 갈구하는 글이라면 시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말하기 때문에 굳이 글자 그대로 이해받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부러웠어요. 시는 특히 오독의 가능성이 많고, 때로는 그 오독마저 아름다울 때가 있잖아요. 암호 편지처럼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불에 비춰 보거나 물에 띄워 보면 비로소 숨은 의미가 드러나는 것처럼, 시인들은 그렇게 언어 속에 비밀스러운 암호를 숨겨놓을 자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러워요.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오히려 제대로 살아보고픈 상반된 마음이 시의 원천”

“그렇지요. 시인에게는 절망조차 기회가 될 수 있어요. 때로는 불행이나 충격이 더 좋은 시를 쓰게 만들기도 해요. 예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도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동료 시인이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이제 더 좋은 시를 쓰게 될 거야.’(웃음) 그 말이 큰 용기를 주었죠. 분노와 절망이 더 좋은 시를 쓰게끔 만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람들이 생각보다 시를 아주 많이 읽는다는 거예요.”

―요새는 나태주 시인이나 박준 시인의 작품들뿐 아니라 신인들의 책들도 중쇄를 많이 찍는다고 들었어요.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은 무려 50쇄를 돌파한 지 오래되었고요. 이토록 시인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많아졌다니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의 감성을 키워준 유년기 체험이 있을까요?

“농장에서 동물들과 함께 뛰놀며 지냈지요. 소의 등짝에 제가 올라가 있고, 그 위에 포대기를 두르고 있는 사진이 남아 있을 정도예요.”

―엄마 등짝이 아니라 소의 등짝에 업혀 자란 시인이라니! 정말 시적인데요.(웃음)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소들이랑 같이 있다 보면 자꾸만 파리 떼가 얼굴에 달라붙거든요.(웃음) 우유를 먹는 방식도 달랐어요. 농장에선 그냥 커다란 양푼에 우유를 담아 멋없이 벌컥벌컥, 서로 양푼 돌려가며 마셨거든요. 그런데 도회지에 가니까, 아이들이 글쎄 ‘빨대’로 각자 우아하게 우유를 마시는 거예요. 정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고, 도시 아이들이 부러웠어요. 저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 엄마와는 의견 충돌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위로를 받았지요.”

―딸들은 그런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지요. 아빠가 엄마 몰래 나를 뜨겁게 옹호해주는 그런 눈부신 순간이 있어요. <시옷의 세계>에서 김소연 시인이 아버지 일기를 읽는 장면에서 저도 따라 울었어요. “걱정을 하면서도 딸을 이해해보려는 앞뒤의 문장들이 있었다. 딸을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여겨주는 마음도 많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적막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청소기를 돌릴 만한 작은 힘만으로 할 수 있는 노동이 어디 또 없을까, 매일매일 간절히 원하고 찾으셨다. 일기장을 읽던 자세 그대로 나는 한참이나 눈물을 쏟았다.” 무엇이 작가님을 시인으로 만들었을까요?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계속 시를 쓰게 만드나요?

“경쟁에서 자발적으로 도태되고 싶었어요. 경쟁과 성공의 대열에서 벗어나서 ‘자존감 있는 낙오’를 하고 싶었어요. 시인으로 산다면 자존감을 지켜내는 낙오가 가능해질 것 같았지요. 1987년이었어요. 학내 시위, 거리 시위가 절정이었지요. 학생운동에 기대가 많았기에 분열과 갈등에 실망을 많이 했지요. 저는 거의 홧김에 시인이 되었을지도 몰라요.(웃음) 그러니까 나는 분명히 도망치는 사람인데, 그래도 안 도망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이상한 이중적인 마음이 시를 쓰게 만든 것 같아요. 이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은데 또 진짜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그런 상반된 마음이 시를 쓰게 만들어요.”

사진/이승원 작가
사진/이승원 작가

슬픔이 허문 장벽

나는 김소연의 <마음사전>을 다시 펼쳐 보며 자존심과 자기애의 차이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자존심은 누군가 할퀴려 들며 발톱을 드러낼 때에 가장 맹렬히 맞서고, 자존감은 사나운 발톱을 뒤로 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길고 긴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비로소 눈이 확 뜨인다.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지독한 외로움을 홀로 견디기보다는, 자기애가 무시무시하게 강해 타인조차 자기처럼 사랑하는 ‘행복한 왕자’처럼, 타인의 아픔을 보듬으며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우린 자존심을 너무 앞세우느라 이토록 소중한 자기애를 쑥스러워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김소연 시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격렬한 감성과 냉철한 지성이 함께 자극되는 기쁨이 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 가슴은 더 뜨거워지고, 내 머리는 더욱 차가워진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 때 서울역 합동분향소에서 유시민 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티브이(TV)에서 보던 사람들’을 처음으로 실제로 만났다. 유시민 작가의 눈도, 강금실 전 장관의 눈도 빨갛게 부어 있었다. 우리와 똑같은 눈이었다. 슬픔이 우리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슬픔이 우리를 뜻밖에 더 커다란 하나로 만들어주던 순간이었다. 너무 깊은 절망은 그토록 머나먼 세계에 각자 속해 있던 우리들을 마침내 하나의 커다란 슬픔의 공동체로 묶어주었다. 시인의 언어도 그렇다. 처절하게 외롭고 아픈 순간에는 더더욱 안간힘을 내어 시를 읽자. 슬픔은 존재를 무너뜨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있는 수많은 존재들을 한군데로 모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슬픈 마음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결코 놓지 않으면 끝내 더욱 눈부신 희망의 공동체가 될 터이니. 시인의 눈물이 알알이 맺힌 낱말들이 하나하나 반딧불이가 되어 당신을 끝내 아름다운 언어의 피난처로 이끌어주리라. 우리는 슬픔을 태워 전진할 것이다.

작가. 개성 넘치는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꿈과 일상과 배움의 열정을 나누는 곳, 그곳이 바로 살롱이지요. 작가 정여울이 이 시대의 빛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속 깊은 정담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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