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디피’
한겨레 토요판 연재 만화가 원작
탈영병 잡는 헌병군탈체포조 얘기
영상 공개 뒤 군대 경험 쏟아지고
전세계인들 호응 OTT 드라마 16위
한겨레 토요판 연재 만화가 원작
탈영병 잡는 헌병군탈체포조 얘기
영상 공개 뒤 군대 경험 쏟아지고
전세계인들 호응 OTT 드라마 16위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3500.html
“에이~ 요즘 군대가 이 정도는 아니지.” 지난달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디피>(D.P.)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시청자라면, 지난 1일 ‘공군 병사 2명, ‘후임병 가혹행위’로 계급 강등 전역’이란 제목으로 여러 매체에서 쏟아진 기사들을 훑어 보라. 불과 <디피> 공개 닷새 만에 알려진,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의 가혹행위다. <디피>를 제작 중이던 2020년 9월부터 지난 2월 사이에도 군인권센터에는 유사 사례들이 접수되어 왔다. 한준희 감독은 1일 <한겨레>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 분명 좋아진 부분이 있지만 안 보인다고 해서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작자이자 감독과 대본을 공동 집필한 김보통 작가는 개인 소셜미디어에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드라마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디피>가 공개된 이후 쏟아진 현실 속 ‘디피’들로 더욱 명확해졌다.
<디피>는 군대에서 도망친 탈영병을 잡는 헌병 군탈체포조 이야기다. 2014년 11월15일부터 <한겨레>에 연재했던 만화 〈D.P 개의 날〉이 원작이다. 2014년은 집단 구타로 숨진 ‘윤 일병 사망 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으로 군대 내 부조리가 가장 뜨겁게 사회적 이슈로 달아올랐던 때다. 실제 디피병 출신인 김보통 작가는 연재를 시작할 당시인 2014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만화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조직은, 군대는 괜찮은 것일까?” “(군대) 밖에서 탈영병 잡다가 한달 만에 군대에 들어와 이틀 자고 나가는 생활을 했는데, 가끔 군대에 돌아와 보면 저번에 맞던 애가 이번에는 다른 애를 때리고 있어요. 섬뜩했어요.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게 올바른 군대이고 조직일까. (군대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다들 웃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탈영을 하고 있고 서로 패고 죽이고 있다는 걸 숨기지 말고 보여주자.”
[토요판] 탈영병 쫓던 만화가가 청춘에게 던지는 질문 _ 김보통 작가 인터뷰 (2014년 11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3500.html
그 진실의 펜은 너무도 날카로워, 만화 <디피 개의 날>은 마치 군대 내 가혹행위 보고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용감했다. 주인공 안준호가 탈영병을 쫓는 과정에서 군대 내 폭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20대 청춘은 이유 없이 성추행을 당하고, 맞았다. 작가는 만화에서 “군대는 침팬지 수용소”라고 비유하며 “수용소 무리들 속 개인의 서열이 확실해야 관리가 편하기 때문에, 조직과 상황이 맞물려 조직 내부의 폭력이 용인된다”고 표현했다.
작은 네모 컷 속 ‘침팬지’들을 7년이 지난 2021년,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마주한 전세계인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오티티(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을 보면 <디피>는 2일 현재 전세계 드라마 순위 16위에 올라 있다. 군대의 실체를 까발리는 소재라 상업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도 놀랍지만,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것도 세상이 변했다는 증거다. 한 감독은 “군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사람 간의 관계와 갈등에 초점을 맞춘 것에 공감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만화에서 베테랑 디피병이었던 상병 안준호(정해인)는 드라마에서는 갓 입대한 이병이 됐고, 원작에는 없던 한호열(구교환)이 조장으로 등장한다. 만화를 본 독자들이 안준호의 서사를 궁금해했던 것을 참고해, 김보통 작가가 안준호의 캐릭터 설정 변경을 제안한 것이 절묘했다. 한호열은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한준희 감독은 “우리 주변에 늘 있을 법한, 평범해 보이는 안준호가 사회에 있다가 자대 배치받고 디피가 되는 과정에 시청자들은 감정이입됐고, 회마다 웃음을 유발한 한호열의 등장으로 무거워져서도, 너무 가벼워져서도 안 되는 이야기의 중심을 잘 잡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극 중에서 “길에서 주웠습니다” “저도 옷 벗겠습니다” 같은 대사들은 실제 작가가 디피병 시절 했던 얘기들을 대사로 옮겼다고 한다.
원작에는 ‘게임 한판 더 하고 싶어서’ ‘잠 좀 더 자고 싶어서’ 같은 우발적인 이유로 탈영하는 다양한 사례도 등장한다. 6부작 드라마는 통일된 흐름을 갖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니 그중에서 몇가지 사례를 추려 담았다. 특히 군대 내 괴롭힘에 주목한다. 원작에도 등장하는 코를 곤다고 방독면을 씌우고 잠 못 자게 하는 사례와 음모 태우기, 원작에는 없는 대공포 발사쇼 등의 가혹행위들은 많은 이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작가는 원작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가혹행위는 군대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았다고 한다. “이건 군 관계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시청평들도 꽤 있다.
그래서 드라마는 사실감을 높였다는 평을 듣지만, 한편으로 트라우마에 끝까지 보지 못했다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들어야 했다. 김보통 작가는 과거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비롯해 디피병 중에도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직접 탈영병을 체포했고,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육군 교도소까지 가는 경우도 더러 있기에 심리적인 부담을 안고 살게 된다. 자신이 범죄자로 만든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은 제대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길 가다가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게 되고 혹시나 무슨 짓을 하진 않을까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김보통 작가가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 공식적인 자리에도 독특한 인형탈을 쓰고 나타나는 데는 이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디피>의 원작 만화가 훌륭했던 점은 군당국의 문제점을 거침없이 꼬집었다는 것이다. 육군 본부가 지뢰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병사의 치료비 부담을 두고 말 바꾸기를 하는 사례를 들며 “장군님들 골프장 짓는 데 들어간 돈이 140억원”이라며 “사병을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라거나, “군 내 인권 문제의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군당국의 군 인권 관련 정책은 표류하고 있다”는 식의 군 정책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이 곳곳에 등장한다. 드라마 <디피>는 이런 내용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원작에도 등장하는 박범구(김성균) 외에, 임지섭(손석구) 대위, 천용덕(현봉식) 중령을 새롭게 창조해 사건을 덮기 바쁜 군 간부들의 행동을 보여주는 정도다. 한 감독도 “인물들의 갈등과 재미를 위해서 만든 역할들인데, 간부들의 그런 모습도 배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즌2에서는 원작의 신랄한 풍자가 되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 <디피>는 원작보다는 더 직접적으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가해자일지 피해자일지 혹은 방관자일지 모를 우리에게 묻는다. 너무 착해서 별명인 봉디(석봉+간디)인 탈영병 조석봉(조현철)이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를 찾아가 “나한테 왜 그랬습니까?”라고 묻는다. 가해자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답한다. 군대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탈영병 신우석이 누구보다 착했다고 말하는 안준호한테 그의 누나(이설)는 묻는다. “그런데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애가 괴롭힘 당할 때 왜 보고만 있었냐?”고. “앞으로 이런 일 없으면 좋겠다. 그쵸?”라는 누나의 질문에 안준호는,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한 감독은 “이 작품을 하면서 마지막 이설 배우가 했던 말이 가장 중요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 방관하지 않고 늘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런 생각들을 하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군대는 분명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더 나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안준호의 행동은 더 나아지기 위한 선택인 것일까. 드라마 <디피>는 안준호가 무리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막을 내린다. 한 감독은 “준호는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내가 동의할 수 없다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말을 아꼈다. <한겨레>에 게재된 원작 만화의 마지막 장면의 대사는 “이제 당신도 목격자다”이다. 2021년 넷플릭스로 이젠 전세계인이 목격자가 됐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토요판] 탈영병 쫓던 만화가가 청춘에게 던지는 질문 _ 김보통 작가 인터뷰 (2014년 11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3500.html

드라마 <디피>. 넷플릭스 제공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3500.html

드라마 원작 〈D.P 개의 날〉은 2014년 11월 <한겨레> 토요판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호열(구교환·왼쪽)과 안준호(정해인). 원작에 없던 한호열은 감독이 창조했다. 넷플릭스 제공

원작자이자 드라마 집필에도 참여한 김보통 작가. <한겨레> 자료 사진

안준호는 원작과 달리 이병으로 나온다. 작가의 아이디어였다. 넷플릭스 제공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35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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