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사적 정보가 독자의 만화적 상상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보통 작가는 메모장에 즉석으로 그린 가면을 쓰고 지난 10월13일 카메라 앞에 섰다.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도 얼굴을 드러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보통 작가가 체제 반항적이거나 시니컬하지는 않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토요판] 만화
토요판에 연재하는 김보통 작가
토요판에 연재하는 김보통 작가
▶<한겨레> 토요판이 새 만화 <디피>(D.P)를 15일부터 연재합니다. 매주 전면 2쪽에 걸쳐 실리는 이 만화는 헌병 군탈체포조가 탈영병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군대가 20대 청춘에게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작가 김보통은 생애 첫 만화인 <아만자>로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에 공동 선정된 무서운 신인입니다. 윤 일병 사망 사건 등 군 문제가 끊이지 않은 가운데 <디피> 연재를 앞둔 김보통씨를 만났습니다.
돈을 번다는 것 외에 의미가 없없다. 암에 걸린 아버지가 병원에서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사투를 벌일 때에도 회식자리에 가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3차를 갔다. 직장생활은 노동을 팔아 월급을 받는 물물교환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4년간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웠다. 계획은 없었다. 이직할 회사가 확정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하고 싶은 게 뭔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이제부터 알기 위해 30대에 사표를 썼다.
퇴직한 뒤로 수많은 밤이 지나갔다. 방바닥에 누워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고민하며 잠 못 자는 시간을 5, 6개월쯤 보냈다. “만화 그려 볼래요?” 어느 날 밤, 만화가인 트친(트위터 친구)이 뜬금없는 쪽지를 보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그는 그때부터 만화가들을 찾아다니며 작업하는 모습을 한두시간씩 지켜봤다. 첫 만화를 지난해 9월 올레웹툰에 연재했다. 마감 날짜는 닥쳐오는데 말풍선을 제대로 그리지 못해 1회는 말풍선 없이 큰따옴표 안에 글을 썼다. 이 엉성함과 불안함이 지난달 3일 한국만화가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 오늘의 우리 만화’로 공동 선정한 김보통 작가 <아만자>의 시작이었다. 1년 전 김보통씨에게 만화 그리기를 제안했던 최규석 작가도 <송곳>으로 ‘2014 오늘의 우리 만화’에 선정돼 한국만화가협회장상을 받았다. <아만자>는 암을 생애 가장 큰 불행이 아닌, 새로운 모험으로 그린다. 눈물 펑펑 짜내는 최루 대신 가슴 먹먹한 여운과 동화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만화다.
첫 만화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김 작가가 오는 15일부터 <한겨레> 토요판에 새 만화 <디피>(D.P)를 연재한다. 연재를 앞두고 지난달 13일 서울 공덕동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다들 도톰한 가을옷을 입고 다니는 날이었음에도 김 작가는 혼자 반팔 피케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해가 질 때부터 뜰 때까지 이야기를 창작하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집 밖에 비가 오는지, 날이 추운지, 따뜻한지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던 그는 “춥지 않다”며 몇 차례 부인하다 바람이 계속 불자 커피숍 실내로 들어갔다. 여름 내내 <아만자> 만화를 그리다 가을날 문득 집 밖에 튀어나온 그는 아직 혼자 여름이었다.
군견보다는 양치기 개가 되기로 했다
-데뷔 만화가 왜 하필 암 환자였습니까?
“암 환자 만화를 거치지 않으면 내면에서 그다음 이야기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아만자>는 제 아버지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했어요. 병원에 가면 아버지는 구토를 하시면서도 내일 출근해야 된다고 저보고 가라고 하셨어요. 뇌에 물이 차니까 점점 못 알아보시고, 의식이 흐릿해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고 환각 상태에 빠지셨어요. 남겨진 몇 개월 동안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거죠. 그놈의 회사는 다녀도 안 다녀도 그만인데. 저는 술집을 가고 노래를 부르고 회사 사람들과 등산을 가고. 아버지에게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어요.”
-두번째 만화인 <디피>도 독특한 소재입니다.
“만화로 그리고 싶었던 조직이 군대, 회사, 학교예요. 사회 구성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조직이잖아요. 저도 군대를 다녀왔지만 경계에 있던 사람이었어요. 어설프게 발을 걸치는 사람이었죠. 보통 ‘디피(DP)라고 부르는’ 탈영병을 잡는 헌병 군탈체포조였어요. 바깥에서 탈영병 잡다가 한달 만에 군대에 들어와 이틀 자고 나가는 생활을 했는데, 중간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가끔 군대에 돌아와 보면 저번에 맞던 애가 이번에는 다른 애를 때리고 있어요. 섬뜩했어요.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게 올바른 군대이고 조직일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필터링을 거친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고. 군인이면서 군인 아닌 내가 군대를 도망친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어요.”
<디피>는 탈영병을 쫓는 헌병 군탈체포조의 추적 과정을 통해 군대에 저당잡힌 20대 청춘들의 자화상을 그린다. 김 작가는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군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그린다. 자신의 경험은 모티브로만 삼고 대다수 상황은 새롭게 창작했다.
-탈영병들을 쫓으면서도 그들을 이해했습니까?
“이해해요.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탈영을 했다는 것이고 나는 아니라는 건데. 군필자들 사이에 이런 농담이 있어요.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간부다.’ 군대는 뭐예요? 지금 군대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전투 조직이 아니에요. 가혹행위, 성추행…. 가둬두고 서열 체계를 학습화시켜요. 만화를 통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이 조직은, 군대는 괜찮은 걸까. 엠비시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다들 웃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탈영을 하고 있고, 서로 패고 죽이고 있다는 걸 숨기지 말고 보여주자. 저는 군대에 있을 때도 제게 질문을 던졌어요. 2년 내내 뭐하고 있느냐고. 나는 개였어요. 개. 냄새를 맡으라고 주면 그 냄새 맡고 악착같이 쫓아다니는 개, 충실한 군견. 그런데 탈영병의 어머니에게 아들을 찾았다고 하면 너무너무 행복해하고 고마워하고 주저앉아 우셨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나는 군견이지만 또 충실한, 양치기 개구나. 잃어버린 양을 찾아주는. 어차피 개일 거면 군견보다 양치기 개로 마음을 먹고 찾자. 그 생각을 하며 군 생활을 했어요.”
아버지가 암과 싸우는 시간에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3차를 갔다
사표 쓰고 불면의 밤을 보냈다
우연히 시작한 첫 만화 ‘아만자’
2014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 폭력에 전염된 군대 경계인으로
탈영병을 쫓는 군탈체포조였다
전염되는 폭력과 순응하는 청춘
김보통의 두번째 만화 ‘D.P’
군대는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탈영은 과연 나약한 청춘의 문제일까 -윤 일병 사건 등 군대 문제가 끊임없이 수면 위에 드러나지만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군대는 왜 바뀌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이게 잘못된 걸 알면서도 침묵해요. 왜 침묵하느냐. 편하니까요. 폭력이 있고 위계질서가 있어야 청소가 잘되고, 깨끗하고, 말을 잘 듣고, 빠릿빠릿해요. 고참들은 이렇게 돌아가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기가 싫죠. 무서운 게 뭐냐면요. 무너뜨리면 또 재건이 되어요. 소름끼치는 광경이지요. 무한 증식하는 생물 같은 것이죠. 생물학적으로 20대 수컷들을 가둬 놓으면 자연발생적으로 규칙을 정하고 기수, 서열을 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인지. 수컷들은 그런 존재인 건지. 제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한 뒤 회사에 들어갔어요. 눈이 떠지는 느낌이었어요. 아, 여기가 또다른 군대구나. 그 군대를 나온 사람들이 다시 나와서 세운 조직이 여기구나. 학교와 군대, 사회가 일맥상통한 것이죠.” -사람들은 왜 폭력을 묵인하거나 폭력에 전염될까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후임을 데려다 놓고 애들을 때리지 말라고 하니까 폭탄선언이 이어졌어요. ‘당신은 (주로 밖에 있으니까) 안 맞지 않았냐. 맞지 않는 자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왜 때려야 하는지 모른다.’ 폭력의 피해를 받은 자가 그걸 납득하고 정당한 폭력이라고 말해요.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위치가 되니까 그제야 폭력을 반대하지 않아요. 왜? 내가 당할 일이 없거든. 군대에서 폭력은 일방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한테 위해를 입힐 수 없는 오락이에요. 폭력을 가했을 때의 편리함과 우월감, 엄청난 쾌감을 하지 말라니까 싫은 것이죠. 부대에서는 폭력의 전이를 보고, 밖으로 나가면 도망다니는 탈영병들 보고. 탈영은 과연 나약해지는 젊은이들의 문제일까, 가학적 조직의 문제일까. 그런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잘 모르니까 질문하는 것이죠. 누군가 뭘 주면서 ‘이게 제일 맛있는 거다’ 말했을 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삶이 훨씬 단순하고 만족스럽지 않았까 생각해요. 그게 정말 맛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질 때 삶이 괴롭고 피곤해지겠죠. 하지만 제 직업의 좋은 점은 그런 질문을 던져 놓고 만화로 풀어간다는 거죠.” -전작 만화 <아만자>를 보면 그림이나 구성에서 여백이 많아요. 그런 점이 더 여운을 줬어요. “능력 부족인 것도 있겠지만 일부러 설명을 안 해요. 만화에서 주인공이 다 설명할 때가 있잖아요. 악당이 나타나서 나의 의도와 약점, 지금의 상황과 의미, 총체적인 배경을 다 설명하는 거죠. 그런데 전 뭘 설명해 주고 싶지 않아요. 저는 질문이 될 수 있는 만화, 사람들이 생각한 걸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만화가 김보통은 말을 할 때 힘주어 주장하거나 논리의 장황함을 떠벌리지 않았다. 조금 눌변이었음에도 듣게 하고 곱씹게 하고 뒤돌아보게 했다. 김보통이 군대와 20대 수컷에게, 사회를 떠받치는 조직의 당위성에 대해 던지는 조용한 질문이 다음주 독자를 찾아갈 것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3차를 갔다
사표 쓰고 불면의 밤을 보냈다
우연히 시작한 첫 만화 ‘아만자’
2014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 폭력에 전염된 군대 경계인으로
탈영병을 쫓는 군탈체포조였다
전염되는 폭력과 순응하는 청춘
김보통의 두번째 만화 ‘D.P’
군대는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탈영은 과연 나약한 청춘의 문제일까 -윤 일병 사건 등 군대 문제가 끊임없이 수면 위에 드러나지만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군대는 왜 바뀌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이게 잘못된 걸 알면서도 침묵해요. 왜 침묵하느냐. 편하니까요. 폭력이 있고 위계질서가 있어야 청소가 잘되고, 깨끗하고, 말을 잘 듣고, 빠릿빠릿해요. 고참들은 이렇게 돌아가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기가 싫죠. 무서운 게 뭐냐면요. 무너뜨리면 또 재건이 되어요. 소름끼치는 광경이지요. 무한 증식하는 생물 같은 것이죠. 생물학적으로 20대 수컷들을 가둬 놓으면 자연발생적으로 규칙을 정하고 기수, 서열을 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인지. 수컷들은 그런 존재인 건지. 제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한 뒤 회사에 들어갔어요. 눈이 떠지는 느낌이었어요. 아, 여기가 또다른 군대구나. 그 군대를 나온 사람들이 다시 나와서 세운 조직이 여기구나. 학교와 군대, 사회가 일맥상통한 것이죠.” -사람들은 왜 폭력을 묵인하거나 폭력에 전염될까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후임을 데려다 놓고 애들을 때리지 말라고 하니까 폭탄선언이 이어졌어요. ‘당신은 (주로 밖에 있으니까) 안 맞지 않았냐. 맞지 않는 자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왜 때려야 하는지 모른다.’ 폭력의 피해를 받은 자가 그걸 납득하고 정당한 폭력이라고 말해요.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위치가 되니까 그제야 폭력을 반대하지 않아요. 왜? 내가 당할 일이 없거든. 군대에서 폭력은 일방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한테 위해를 입힐 수 없는 오락이에요. 폭력을 가했을 때의 편리함과 우월감, 엄청난 쾌감을 하지 말라니까 싫은 것이죠. 부대에서는 폭력의 전이를 보고, 밖으로 나가면 도망다니는 탈영병들 보고. 탈영은 과연 나약해지는 젊은이들의 문제일까, 가학적 조직의 문제일까. 그런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잘 모르니까 질문하는 것이죠. 누군가 뭘 주면서 ‘이게 제일 맛있는 거다’ 말했을 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삶이 훨씬 단순하고 만족스럽지 않았까 생각해요. 그게 정말 맛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질 때 삶이 괴롭고 피곤해지겠죠. 하지만 제 직업의 좋은 점은 그런 질문을 던져 놓고 만화로 풀어간다는 거죠.” -전작 만화 <아만자>를 보면 그림이나 구성에서 여백이 많아요. 그런 점이 더 여운을 줬어요. “능력 부족인 것도 있겠지만 일부러 설명을 안 해요. 만화에서 주인공이 다 설명할 때가 있잖아요. 악당이 나타나서 나의 의도와 약점, 지금의 상황과 의미, 총체적인 배경을 다 설명하는 거죠. 그런데 전 뭘 설명해 주고 싶지 않아요. 저는 질문이 될 수 있는 만화, 사람들이 생각한 걸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만화가 김보통은 말을 할 때 힘주어 주장하거나 논리의 장황함을 떠벌리지 않았다. 조금 눌변이었음에도 듣게 하고 곱씹게 하고 뒤돌아보게 했다. 김보통이 군대와 20대 수컷에게, 사회를 떠받치는 조직의 당위성에 대해 던지는 조용한 질문이 다음주 독자를 찾아갈 것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