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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감독, 이름만 바꿔 슬쩍…이런 기만적인 복귀라니

등록 2021-10-02 17:12수정 2021-10-02 23:20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성폭력’ 조현훈 감독 복귀 논란

과거 성폭력 드러난 이후 활동 중단
드라마 ‘홈타운’ 필명 작가로 돌아와
티브이엔(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홈타운> 촬영 현장. 티브이엔 누리집 갈무리
티브이엔(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홈타운> 촬영 현장. 티브이엔 누리집 갈무리

2016년 영화 <꿈의 제인>으로 수많은 영화 팬들의 지지를 받았던 조현훈 감독은, 2018년 과거 자신이 저지른 성폭력 전력이 밝혀지자 “앞으로 일체의 공식 활동과 작업을 중단하고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을 남긴 채 공개적인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사이, 그는 ‘주진’이라는 필명으로 드라마 각본을 작업했다. 티브이엔(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홈타운>이다. 드라마가 2부까지 방영된 시점에서 ‘주진’이 조현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조현훈은 “당시에도 지금도 그 일을 부정하거나 숨기려고 하는 의도는 없었고 여전히 반성하며 피해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 하나 없이 작가로 ‘우회 복귀’

과연 숨기려는 의도도 없고 여전히 반성하고 있으며 무엇이든 하려고 하고 있을까? <씨네21>의 기사에 따르면, 조현훈은 3년 전 그에게 조합원 자격 정지 징계 처리를 내리기 전 당사자의 입장을 듣기 위한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의 연락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무응답은 자격 정지 기간이 끝난 뒤 감독조합 성폭력방지위원회에서 중·지·신(중지, 지지, 신고) 행동강령 서명 및 교육을 권유하기 위해 연락했을 때에도 이어졌다. 감독조합은 “영화계 복귀는 확실한 반성과 재발 방지 약속이 이행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원칙”을 중시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나아가 “특정 단체일 뿐인 조합의 징계가 면죄부로 사용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미투’ 논란 후 3년 만에 이름 바꾸고 드라마 ‘홈타운’ 작가로 복귀’, 2021년 9월27일, <씨네21> 남선우·임수연·김성훈 기자) 즉 그 자체로 활동을 재개해도 좋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감독조합의 징계와 교육에 임하는 태도조차 극히 불성실했다는 이야기다.

논란이 불거지자 <홈타운>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자신들은 편성이 확정된 이후에야 주진 작가가 조현훈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피해자가 조현훈의 사과를 원만히 받은 줄 알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송사 티브이엔은 남은 방영분에서는 작가의 이름을 크레디트에서 빼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노라 말했다. 그러나 작가의 이름을 크레디트에서 빼겠다는 이야기는, 방영은 계속하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 12부 중 11부까지 후반부 촬영이 끝난 상황에서, 방송사가 기촬영분을 전면 폐기하고 작가를 교체해 재촬영을 한다거나, 드라마 방영 중단을 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참여한 다른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의 노력을 이야기하며 방영을 강행하다 보면, 이렇게 어영부영 복귀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게 생겼다. 자칫 이것이 복귀를 꾀하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례, 검증된 우회로가 될지도 모른다. 반성도 학습도 피해자가 납득할 만한 사과도 없이, 은근슬쩍 복귀하고 싶은 이들이 조현훈 하나는 아닐 테니까.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이런 식의 반성 없는 복귀는 딱히 새로운 일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한 몇년 몸 사리고 있다가, 적당히 초췌해진 얼굴로 토크쇼나 유튜브 같은 데 나와서 깊이 반성했다고 주장하며 복귀를 시도하는 사례들은 이미 많지 않은가? 자숙하는 기간 동안 어떤 고민과 반성을 했는지 진정성을 확인할 방법은 없고, 그저 오랜 시간 활동을 안 한 것을 두고 “이만하면 충분히 반성했다”는 식의 면죄부를 발급하려는 이들은 많다. 진지한 표정으로 ‘영구 출연 정지’를 외치는 방송사들조차, 해당 연예인의 인기가 오르면 은근슬쩍 출연 정지를 풀어버리고 말이다.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가와 별개로, 산업 안에서 인기를 얻고 지지를 모으는 사람에게는 반성과 학습 없는 복귀를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쉽게 열린다.

한국 사회에 미투 운동(#MeToo, ‘나 또한 침묵을 깨고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다’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 운동. 혼자서 피해를 당했다는 고립감과 수치심을 겪을 이들을 지지하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연대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반성폭력 운동의 중대한 기점으로 평가된다)의 바람이 분 이후 상황은 조금 달라지긴 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요구가 시대의 화두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태를 주시하던 세간의 이목이 조금 가시는 순간을 노려 상대를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신고하는 사례, 아예 사건의 여파를 덜 입은 해외 시장에서의 활동에 집중하는 사례, 저예산 독립영화 등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우회적인 복귀를 노리는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남성의 성범죄에 대한 판결이 극히 소극적인 한국 법정의 판단마저 끝났음에도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라는 주장만 강화하는 사례, 판결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제 책임을 축소하는 사례까지 셈하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의 반성 없는 복귀 시도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제작사 ‘이름 빼고 방영’ 방침도 논란
엔터산업 전체가 제도 개선에 나서야

복귀 기회 주는 엔터산업 구조 고쳐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본은 산업 안에서 유의미한 인기를 거둔 이에게는 복귀의 기회를 더 쉽게 열어주는 경향이 있다. 티브이엔이나 스튜디오드래곤이 ‘주진’이 ‘조현훈’인 줄 알면서도, 그가 재발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교육 이수도 하지 않은 상황인 걸 알면서도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조현훈이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얻었던 전작 <꿈의 제인>의 공동배급사가 같은 씨제이(CJ)를 모기업으로 둔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였다는 사실은, 자신들은 몰랐다는 티브이엔과 스튜디오드래곤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게 만든다.

감독조합이 아무리 열의를 가지고 행동강령을 만들고 안전한 콘텐츠 제작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조합에 부여된 권한은 결국 조합의 테두리 안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안전과 일상 회복을 지원하는 일, 가해자에게 분리 처분과 엄격한 처벌, 철저한 반성과 재발 방지 교육을 가하고 나아가 반성 없는 복귀를 막는 일은, 결국 산업 전체가 함께 원칙을 만들고 제도화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그 논의,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너무 늦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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