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화 분야에 얼마의 공적 자금이 투여되는지를 헤아려보지는 않았으나 규모가 작지는 않을 것이다. 국공립 예술기관들이 제공하는 전시나 공연에 국고가 투입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립 예술기관들에서 진행되는 행사들도 포스터를 찬찬히 뜯어보면 다양한 진흥원이나 위원회의 후원이 달려 있다. 국고 지원의 흔적들이다. 내가 느끼고 즐기는 예술적 표현들이 나라의 도움 없이는 내게 도달할 수 없었다는 것에 가슴이 철렁한다. 나름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에 살고 있고, 그 덕에 취향을 저격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예술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나라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 또한 섬뜩한 일이다.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 국가의 지원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되면, 심사에 통과하는 데 골몰하게 되고 예술은 뒷전이기 십상이다. 지원의 공정성 문제 때문에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운명. 지원 기관의 입맛에 맞는 예술만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시장에서 스스로 생존이 어렵지만 문화적 수준이나 국민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국가가 어디까지 지원하는 것이 좋을까? 즐기는 사람들 스스로 돈을 내고 키우지 않으면 다양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배를 엮다>는 독자가 줄어 시장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전을 만드는 일은 출판사 안에서도 이익을 만들지 못해서 천덕꾸러기 신세. 일은 고된데 담당하는 인원은 줄고, 겨우 몇명이 모여서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전을 만들어간다. 얇지만 뒤가 비치지 않고 넘길 때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고 매끄러운 종이 위에 한 단어를 서로 보충하고 지탱하며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다른 단어로 설명한 문장을 새겨 사전을 만든다. 살아 있는 말의 뜻은 변하고, 이 사전에 실린 ‘사랑’이란 표제어는 동성과 동물에 대한 사랑을 포함한다. 사전을 만드는 세월 위에 생로병사의 이야기들이 겹쳐서 흘러간다.
늘 곁에 두던 사전을 넘기던 손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지만, 말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방법을 담은 사전은 언어와 문화의 근간이라 포기하기 어렵다. 이젠, 누가 사전을 만들어야 할까? “<옥스포드 영어 대사전>이나 <강희자전>을 예로 들 것까지도 없이, 외국에서는 자국어 사전을 국왕의 칙령으로 설립한 대학이나 시대의 권력자가 주도하여 편찬하는 일이 많습니다. 즉 편찬에 공금이 투입되는 거죠.” 출판사 안에서 구박받으면서 어렵게 사전을 완성한 편집자들에겐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국가가 국어사전에 돈을 쓰고 힘을 쏟는 것은 나라를 통합하기 위해서 언어를 통일하고 장악하기 위해서다. “자금이 조금만 더 윤택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금이 투입되면 내용에 간섭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요. 생각을 전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권위와 지배의 도구로서 말을 이용할 우려도 있습니다. 말이란, 말을 다루는 사전이란, 개인과 권력, 내적 자유와 공적 지배의 틈새라는 항상 위험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설령 자금이 쪼들리더라도 국가가 아닌 출판사가, 일반인인 당신이나 내가, 꾸준히 사전을 만들어온 현 상황에 긍지를 가집시다.” 어려워도 문화와 예술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도 같다.
만화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