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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백성이자 귀족’ 좌충우돌 농촌살이

등록 2021-10-30 12:12수정 2021-10-30 12:15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백성귀족

한국 사람들이 집 떠나 살 때, 가장 많이 생각나는 음식은 김치가 아닐까? 음, 옛날 사람 인증일지도. 적어도 내겐 지역마다 맛이 다른 김치는 나라 안에서도 향수를 부르는 마법의 음식인데, 나라 바깥으로 떠나면 만들어 먹는 것도 여의치 않다. 적당한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어렵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살 때, 주변을 보면 손수 텃밭을 일궈 배추도 심고 고추도 심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정도로 김치에 진심은 아니지만, 집 안의 화분에 총각무를 키워본 적은 있다. 씨를 공수해서, 정성껏 키웠더니 모양이 그럴싸한 무를 캐낼 수 있었다. 아뿔싸, 칼로 썰어보니 무에 바람이 들어 맛이 나지 않았다.

무가 얼었다 녹았다 하는 바람에 물기가 빠져 푸석푸석하게 된 것을 바람 들었다고 하는 것이니,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다른 땅에서 자라 푸석한 총각무를 바람 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다. 식물은 원래 대기 중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햇빛의 에너지로 분해해서 산소를 내놓고, 남은 탄소로 영양분을 만든다. 화학식으로 보면, 세상 어디서든 같은 산소와 탄소가 오가는 반응인데, 그 영양분을 쌓아 만드는 총각무의 생김새와 맛은 왜 다른가? 땅에서 물과 함께 흡수한 어떤 것이 총각무의 맛을 다르게 만드는 오묘한 과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다.

<백성귀족>의 작가가 도쿄 인근에서 기른 홋카이도 감자를 발견하고 탄식을 한다. “홋카이도산 씨감자라고 해도 도쿄에 심으면 홋카이도 맛은 안 난다”라고. 심지어 털이 짧은 고양이, 아메리칸 쇼트헤어를 홋카이도에서 키우면 털이 길어, 아메리칸 롱헤어가 된다는데.

서울내기라 전원살이에 대한 동경을 늘 가지고 있지만, 농촌살이가 어렵다는 것도 책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소설가 오영수의 <산 산 산>이라는 소설이 머릿속에 박혀서 자연과 마주하고 사는 농촌의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간파하고 있던 터. 풀벌레도 심상하게 대하지 못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쫄보라 농촌에서 잠시 쉬러 다녀오는 곳 이상의 매력을 발견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작가는 농촌에 사는 장점을 꼽아본다. 무엇보다 대자연을 벗하면서 살 수 있다. 키우는 동물들과 정을 나누며 지낼 수 있고, 뚜렷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농기계를 마음껏 타면서 즐길 수 있고, 신선한 채소도 잔뜩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내 자학 개그를 펼친다. 대자연은 개뿔, 가끔 곰의 공격을 받거나 폭설에 길을 헤매보면 얼른 도망가고 싶을 텐데. 동물을 좋아해도 소한테 명치를 한번 걷어차이면 무서워서 주변에 얼씬이나 하려나. 가을을 즐기다 느닷없이 들이친 태풍에 키우던 농작물을 다 잃고 나면 피눈물이 날 텐데. 농기계도 기계라 눈이 없다. 아차, 하다 기계에 휘말려 크게 다치는 일이 다반사야. 신선한 채소야 먹을 수 있겠지. 집에서 먹는 채소엔 농약도 뿌리지 않고 유기비료로 정성껏 키우니까. 하지만 팔려는 채소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안 쓰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 마트에서 벌레 먹은 사과나 못생긴 수박을 고르는 소비자는 없으니까. 연중무휴인 농사꾼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쩌라는 것인지 싶다가도 우리가 화성으로 이주할 때, 개척 농민이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설득당해 다음 권의 책장을 연신 넘긴다.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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