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는 실화이다. 스테퍼니 랜드의 에세이가 원작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숨 막히게 느껴진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이런 추천사를 썼다. “미국 사회의 계급 격차를 단호한 시선으로 관찰한 싱글맘 이야기다. 많은 가족들이 지금도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쳐 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대한 묘사는 삶의 존엄성을 일깨워준다.” 지난 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미국 드라마 <조용한 희망>이다.
드라마는 알렉스가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을 피해 3살 딸을 데리고 집을 나오면서 시작한다. 가진 돈은 18달러(약 2만원)뿐. 알렉스는 복지기관에 도움을 청하지만 폭력의 희생자라는 명확한 증거 없이는 도움받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남편은 양육권 소송까지 건다.
“이 집을 나가는 순간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 남편의 대사 속에 드라마가 던지는 문제의식이 묻어난다. 폭력으로부터 아이를 지킨 것은 알렉스인데,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증명해야 하는 것 또한 알렉스다. 증명하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해도, 일하지 않는 그의 아이를 맡아주는 곳은 없다. 참, 황당한 세상이지 않나.
<조용한 희망>은 이렇듯 사회적 불평등, 편견과 차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의 모순, 페미니즘 등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가득하다. 마음이 먹먹해지는 와중에 긴박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지고, 후반부에는 등장인물들의 비밀이 공개되면서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극의 전개, 연출 등 드라마의 완성도도 좋다.
원제는 <메이드>(Maid). 극에서는 파출부, 가정부로 번역된다. 알렉스는 미국 부촌에서 가정부로 일하는데, 가벼운 집 청소가 아니고 엄청난 노동이다. 현실이 시궁창이지만 더 시궁창 같은 집들을 정말 꼼꼼하게 청소하는 알렉스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힐링이 된다. ‘할리 퀸’으로 유명한 배우 마고 로비가 제작자로 참여했고, 마거릿 퀄리가 주연을 맡았다. 마거릿 퀄리의 엄마 앤디 맥도월이 극 중 엄마로 나와 눈길을 끈다. 앤디 맥도월은 <사랑의 블랙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그린 카드> 등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나왔던 1990년대 최고의 로맨틱 배우였다. 세월이 흘러 모녀가 함께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렇다고 내내 심각한 건 아니다. 추수감사절, 텅 빈 부잣집에서 청소일을 하다가 슬쩍 부자의 삶을 즐겨 보는 알렉스와 그때 갑자기 들이닥치는 집주인의 모습은 우리 영화 <기생충>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혼자 쓸쓸하게 집에서 ‘신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진 돈이 차감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자막이나, 알렉스가 소개팅 앱에서 남자들을 찾는 장면에선 재기발랄한 연출도 펼쳐진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저자의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서비스)를 찾아가고 있다. 그곳에는 드라마에서 묘사된 지난 시간의 실제 기록들이 가득하다. 현실이 더 드라마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세상 모든 ‘알렉스’를 응원한다.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