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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다큐 ‘뎁 vs 허드’가 보여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OTT 충전소]

등록 2023-11-18 09:00수정 2023-11-18 11:31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 조니 뎁. 영원한 해적왕, 매혹적인 가위손, 팀 버튼의 페르소나. 그러나 2016년 배우 앰버 허드와 이혼 과정에서 이미지가 추락한다. 이혼 뒤에도 허드는 뎁의 가정폭력을 고발하는 인터뷰를 계속한다. 뎁은 허드가 거짓말을 한다며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고 허드도 맞소송한다. 미투 운동과 여성혐오, 언론 자유와 디지털 사회의 문제점들이 이 사건에서 첨예하게 부딪친다. 이 모든 과정을 영국 ‘채널4’와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뎁 vs 허드’가 담아냈다.

연예인 스캔들을 다룬 흔한 다큐가 아니다. 뎁에게 이 재판은 배상금이 아닌 명예 회복을 위한 것. 그래서 뎁은 재판 과정을 대중이 볼 수 있게 법정에 카메라 설치를 요청하고 판사는 이를 허락한다. 이 결정으로 역사상 최초로 가정폭력 혹은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자신의 피해 상황을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밝히고 가해자가 이를 반박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대중들은 뎁과 허드를 지지하는 쪽으로 나뉘고 서로에게 혐오와 조롱을 쏟아낸다. 여론 전쟁에서는 인기가 더 많은 뎁이 조금 유리하다. ‘조니를 위한 정의’라는 해시태그는 수백억개로 늘어난다. 기존 미디어뿐 아니라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들은 200시간 넘는 재판 영상을 편집해 엄청난 양의 콘텐츠를 쏟아낸다. 그들은 뎁과 허드의 법정 다툼으로 수백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

두 사람이 법정에서 처음 만나 서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증언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뎁은 허드를 보고 첫 눈에 반해 “왜 나타난 거야. 지금까지 저 사람 없이도 잘 살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억이 같은 순간은 여기까지다. 다툼과 이혼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좀처럼 맞춰지지 않는다.

다큐에 등장한 증거들을 보면 뎁은 금지 약물과 마약에 중독되어 있다. 언어폭력도 분명하다. 그러나 뎁이 허드를 물리적으로 때렸다는 확실한 증거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뎁이 허드에게 맞았다는 증거들이 공개된다. 허드는 증인석에서 말실수하고 거짓말이 들통나기도 한다. 이제 대중은 일방적으로 뎁의 편을 든다. 이것은 마녀사냥일까, 사필귀정일까?

이 다큐에서 새롭게 촬영한 부분은 거의 없다. 공개된 재판 영상과 증거로 제출된 녹취, 유튜브 등에 가득했던 관련 영상들을 재구성했다. 비슷한 기법을 사용한 영화 ‘서치’처럼 화면은 단순한데 매 순간 긴장감을 자아낸다.

최종 판결 뒤에도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남긴다. 양쪽 지지자들은 비공개 처리된 자료까지 열람하려고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새로운 자료 6000개가 공개된다. 거기에는 각자 믿고 있던 진실과는 다른 팩트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법정 밖에서 여론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판사와 배심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뎁과 허드의 법정 싸움은 2022년 미국의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몇십배 많은 영상과 해시태그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상대편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 구현의 한 형태’를 실행했다고 믿으며 도덕적 위안을 얻는다. 반대편의 증거들은 축소하고 무시한다. 알고리즘이 만들어주는 이런 확증편향은 결국 중우 정치와 우민 정치를 만들어내는 토양이 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눈치챘을 것 같다. 이 다큐가 먼 나라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의 이야기라는 것을.

씨제이이엔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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