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아메리칸 반달리즘>
의외로 많은 분이 ‘인생 애니메이션 ’ 으로 꼽는 작품 중에 < 빙과 > 가 있다 . 학교 과학실은 왜 잠겨 있는 걸까 ? 도서관의 책을 대출했던 사람은 누굴까,처럼 학교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궁금증을 추리하는 과정이 탐정 수사물 버금간다 .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오티티) 티빙의 < 여고추리반 > 도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을 추리하는 예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 학교는 지금 생각하면 작은 사회였지만, 그 시절 우리가 아는 세상의 전부이자, 거대한 세상의 압축판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메리칸 반달리즘>은 학교에서 생긴 의문투성이 사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다른 말로 모큐멘터리 드라마다.
미국 어느 고등학교. 누군가 선생들 차량 27대에 남자 성기 모양을 페인트로 그려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교내 많은 이들이 사고뭉치 딜런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는 평소에도 교실에 ‘고추 낙서’(드라마 속 표현이다)를 해서 선생들과 사이가 안 좋기 때문이다. 딜런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집에서 친구들과 유튜브 영상을 찍었고, 이후 여자친구 집에 다녀왔다는 알리바이를 댄다. 하지만 동급생 알렉스가 목격자로 나타나면서 딜런은 정학을 당한다. 알렉스의 증언 말고는 딜런의 범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범인이 아니라는 딜런, 낙서하는 장면을 봤다는 알렉스. 진실은 무엇일까? 학교 방송반의 피터는 카메라를 들고 이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추적하는 드라마이지만 화면은 방송반 학생들이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된다. 증거로 확보한 영상, 수많은 인터뷰, 방송반 회의 장면들이 재기발랄하면서 신선하다. 각각의 가설들과 알리바이를 검증하는 장면,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컴퓨터그래픽은 시사다큐프로그램 못지않게 치밀하고 전문적이다. ‘낙서 사건’을 이렇게나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빠져들어 보게 된다.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것은 사건의 범인이 아니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진실을 훼손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드라마는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로 평소 이미지나 인간관계에 의해 증언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폭로한다. 인물들 사이 복잡한 관계가 하나씩 밝혀지고 딜런이 범인이라던 선생과 알렉스의 주장에 모순들이 발견된다. 작품에서는 반복적으로 말한다. “진실은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된다”라고. 딜런은 정말 범인일까? 학생들의 다큐멘터리는 과연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
제목의 ‘반달리즘’은 문화유산이나 예술품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행위를 말한다. 넓게는 낙서나 무분별한 개발로 경관을 훼손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455년 유럽에서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훈족을 피해 이동하면서 지중해 연안부터 로마까지 여러 지역에서 약탈과 파괴행위를 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드라마에서 훼손되는 것은 자동차뿐 아니라 사람들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도 포함된다. 모범생과 사고뭉치, 평판 좋은 선생과 성실하지 못한 선생. 그동안 믿고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진실이 등장한다.
시즌2는 극 중 만든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 팔려서 새로 산 방송국 장비로 또 다른 사건을 취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처럼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유쾌함이 드라마 속에 가득하다. 참고로 시즌2는 전대미문의 ‘똥 테러’ 사건이다. 더 발칙하고 더 꼼꼼하다. 음….
씨제이이엔엠 피디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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