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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몸은 중년인데, 마음은 중3이다

등록 2021-12-25 09:08수정 2021-12-25 09:47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한해의 끝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올해도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묻겠군. “저희들은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끝나는 뉴스쇼가 있었다. 착 감기는 멋있는 말인데, 무엇을, 얼마나 해야 최상급 표현으로 자신이 한 일을 수식할 수 있을까? 그래도 흉내 내서, 여기저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썼다. 하지만 나도 안다. 내가 최선을 다하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도 내가 최선을 다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렵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사람들에겐 진심을 담은 존경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공감을 실은 위로를 바치고 싶은 성탄절이다.

올해의 마지막 만화책으로 고른 것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취직했다가 직장을 때려치운, 마흔살 아저씨의 이야기. 다섯권의 책에 7년이 담겨 있다. 학창 시절 미술에서 낙제했던 그가 갑자기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젠 햄버거 집에서 알바를 하는 만화가 지망생이 되었다. 일흔 넘은 아버지는 평생 열심히 무얼 한 적이 없는 아들을 타박할 수밖에 없다. “너는 몇살까지 살 생각이냐?” 주인공은 습작으로 그린 만화의 제목을 ‘300살’로 정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300살까지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마흔은 어린 나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 300년이 지나도 무얼 할 것 같지 않은 아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이러다 괜찮겠니? 그러다 인생 끝난다.”

햄버거 집에서 나이 때문에 동료들이 붙인 별명은 ‘점장’이지만, 그 안에서조차 승진을 못 한다. 회사 생활 하면서 명색이 계장까지 지냈는데 알아주는 이가 없다. 알바 생활이 그렇듯 급한 돈 융통도 쉽지 않다. 고등학생인 딸이 알바로 번 돈을 빌려야 하다니. 딸은 쿨하게 돈을 빌려주었지만 딸이 실은 돈을 모아 핀란드로 유학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만화가로 데뷔만 하면 당당하게 아비 노릇은 할 수 있을 거야. 출판사 담당 편집자가 밀어주어서, 데뷔의 문턱을 넘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넘어가질 못하네. 주인공은 탄식한다. “나는 대기만성할 인물일까?” 조금 더 큰 그릇이 되기 위해서, 더 기다려야 하는가? 몸은 중년인데 마음은 중3이다. 자꾸 떨어지니 자신감도 떨어진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일까?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만화 그리는 데 제법 진심인데도 데뷔는 여전히 멀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살아간다는 것. 쥐뿔도 없는 주인공은 무너진 가정 때문에 함께 무너진 친구에겐 든든한 버팀목이다. 어디 가든 싸움질을 하고 어울리지 못하던 젊은 친구는 주인공 때문에 인연을 얻어 몸을 의탁할 곳을 찾았다. 쿨한 딸은 평생 어설픈 아빠에게 남모르게 심술을 부리는 중이지만, 주인공의 진심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버지는 마흔 넘은 아들이 헛된 꿈을 좇으면서 착실하게 살지 않으니 속이 타고 잔소리를 멈출 수 없다. 그래도, 주인공 없이 아버지의 삶은 좋았을까? 나는 의심한다. 최선을 다한, 혹은 다했다고 하는 친구들도 실제로는 그냥 살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해의 끝에서 수고한 우리 모두에겐 따듯한 ‘위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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