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이 연출한 <반장선거>의 한 장면. 왓챠 제공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를 했다. 누구나 카메라를 갖고 있고, 심지어 일회용 카메라를 파는 시대에 ‘사진이란 무엇일까’ 고민했다. 휴대폰으로 쉽게 사진 찍는 오늘을 생각하면 그냥 웃음만 나오지만, 그 시절 우리는 꽤 심각했다. 그 고민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진은 우리의 일상 속 ‘결정적 순간’을 프레임으로 포착하기에 예술이 된다”고.
그런데 여기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단편 영화 네편이 있다.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오티티) 왓챠가 직접 만든 <언프레임드>다. 지난해 12월 공개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다.
<언프레임드>를 소개하는 이들은 대부분 감독을 먼저 말한다.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배우들이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쓰고 연출했다. 유명 배우가 연출했다는 것이 오히려 집중에 방해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그렇다면 이 배우들이 프레임에 담은 ‘결정적 순간’들은 언제일까?
왓챠 <언프레임드>에서 단편 영화 연출한 배우들. 왼쪽부터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왓챠 제공
박정민이 연출한 <반장선거>는 어느 초등학교 5학년 2반의 반장선거를 포착했다. 지금 대통령 선거판을 능가할 정도로 폭로와 흑색선전, 회유와 협박이 난무한다. 온라인에서는 ‘급식 범죄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제점을 잘 포착했다. 하지만 영화는 어두운 느낌보다는‘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마지막 반전도 멋지다. 박정민이 직접 섭외했다는 마미손이 음악 감독을 맡았다.
손석구가 연출한 <재방송>은 걸음이 불편한 이모를 데리고 결혼식장에 가야 하는 조카의 하루를 포착했다. 서로 상처 주는 대화만 나누는데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딸을 잃은 아픔이 있는 이모와 불러주는 곳 없는 배우인 조카가 어느 순간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최희서가 연출한 <반디>는 최희서가 직접 싱글맘으로 등장한다. 딸 반디와 함께 죽은 남편의 마지막 짐을 가지러 시가에 간 날의 이야기다. 아련함과 풋풋함 속에 과거와 현재, 추억과 현실이 교차한다. 모녀가 숲길을 걷는 모습은 일본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이제훈이 연출한 <블루 해피니스> 는 취업준비생이 어느 날 주식 투자를 하면서 생긴 일상의 변화를 따라간다. 40만원으로 시작한 주식 투자로 인생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서글프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블루 해피니스>에는 정해인과 이동휘가 나오는 등 네편 모두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특히 <재방송>에서 조카를 연기한 임성재와 <반디>의 아역배우 박소이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공통으로 흐르는 느낌도 있다. 모든 날이 특별하고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배우는 누군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화면으로 감독, 작가의 의도를 시청자와 관객한테 전달한다. 카메라 앞에서만 있던 배우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카메라 뒤로 간 도전은 그 자체로 놀랍다. 그들의 재능이 부럽기도 하다. 모두 연기와 공연예술을 전공했다.
제작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카메라 감독이 알고 보면 영화를 연출했고, 웹소설을 쓰고 있는 조명 감독도 있다.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된 행정팀 직원도 있다. 지금 필자가 제작 중인 드라마 대본도 피디가 직접 썼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이 바닥에는 은둔 고수들이 많다. <언프레임드>를 보면서 다른 배우들의 도전도 기대하게 됐다. 물론 이 배우들의 다음 이야기도 목이 빠지라 기다릴 테다. 역시 프레임이란 깨라고 존재하는 것이었다.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