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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를 낳고 몇 해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시골이라 마당이 제법 넓었다. 넉넉지 않던 때라서 세를 얻고 집 상태를 살필 겨를도 없었는데, 마당에 들어서서 입이 떡 벌어졌다. 마당 가득 가을걷이를 앞둔 논처럼 벼가 가득했다. 아니, 전에 살던 사람들은 마당에 곡식을 키워 자급자족이라도 했단 말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벼는 벼인데 무릎 위에서 찰랑찰랑, 제대로 쌀알이 맺히지도 않았다. 주변에 물어물어 마당 가득한 식물이 벼가 아니라 잔디가 웃자란 것이라는 걸 알았다.
잔디는 사람들이 늘 빡빡 깎으니 씨앗을 맺을 겨를이 없지만, 돌보지 않으면 벼 모양으로 씨를 내는 벼과 식물이란다. 마당을 가진 아저씨가 되었으니 정원사가 되어봐야겠다 마음을 먹고 동네 형님에게 예초기를 빌려왔다. 허름한 예초기는 마당의 웃자란 잔디 머리를 쳐내다가 과열로 사망. 음, 어쩌지? 남은 곳은 나뭇가지 자르는 가위로 바닥에 엎드려 겨우 잘랐다. 이제, 다듬어야 하는데 다행히 헛간에서 발견한 수동식 잔디깎이. 무거운 이 녀석을 끌고 한참을 걸려 잔디다운 길이로 잘라 놓으니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그런데 저 구석의 고슬고슬한 키 작은 녀석들은 무얼까? 웃자란 잔디 아래 그늘이 져서 이끼가 잔뜩 자랐다. 며칠 지내보니 그늘이 없어진 이끼는 햇볕에 타서 짚처럼 노랗게 되어 수명을 다했다. 이끼를 거둔 빈 땅에 다시 잔디가 채워지기까지는 또 시간이 필요했다. 그 마당에서 튜브를 불어 간이 풀도 만들고 모래를 채워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짧은 정원사 생활이 가끔 그립지만, 서울에 와서는 아파트살이를 한 터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양한 방법으로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열광적인 정원사, 식물 집사를 자처하는 인구가 많다고 한다.
<크레이지 가드너>는 식물 집사의 분투기. 가드너, 그러니까 정원사라면 마당을 꿈꿀 것인데 마일로 작가는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다 보니 화분마다 식물을 하나씩 심고, 세심하게 돌본다. 서툰 정원사였던 나는, 마당의 식물들 하나하나를 돌보진 못했다. 하지만, 화분이야 늘어보아야 100개 넘기가 쉽겠는가? 어렵게 고르고 고달픈 물시중도 마다하지 않는다.
더구나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일이니, 우리 날씨에 맞는 우리 식물을 키울 필요는 없고, 보기에 아름다운 외국 식물들을 많이 키운다. 문득, 몬스테라, 칼라테아 퓨전화이트, 게발선인장, 스파티필룸, 스킨답서스, 모스볼, 리톱스, 코노피튬 칼큘러스, 옵투사, 하월시아 같은 식물에 관심이 생겼다면 이 책은 훌륭한 가이드가 된다. 한 포기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녀석들부터 값싼 녀석들까지 요즘 인기 있는 반려식물들을 위한 팁이 망라되어 있다.
어찌 보면, 요즘의 반려식물들은 그냥 식물이라기보다는 효용의 측면에서 보면 꽃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꽃을 들고 가는 것이 부끄러워 애인에게 꽃 선물도 못했는데, 요즘 같았으면 당당히 예쁜 식물을 들고 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식물을 키우다 보면, 마당에 대한 꿈이 생기기 마련이다. 작가가 고구마도 키워보고 도토리도 심어 싹을 틔우는 것은 그런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크레이지 가드너>는 식물들이 가진, 동물과는 다른 놀라운 능력과 그것이 주는 기쁨이 가득한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