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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전쟁을 품은 욕망들, 지금 당장 멈추라

등록 2022-03-05 13:23수정 2022-03-05 19:36

[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포격의 기억
<어떤 희망2>, 디지털화, 김비.
<어떤 희망2>, 디지털화, 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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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귀한 건 없다’는 문장이 요즘 시대에도 유효한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간략하게, 내 할 일만 하고, 침해하지 않고, 다가가지도 않고, 기대거나 기대하지도 않는 물러난 삶이 괜찮은 건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존중이란 삶의 위축이 아니라 성장의 방식일 텐데, 요즘 우린 한 사람이나 그가 온 힘을 다해 일구어온 삶까지 간단히 숫자 하나로 치환해버리는 데 익숙해진다.

그것이 정치고, 이 세계의 순리지. 사람인가? 사람이지. 그러나 성소수자이고 장애인이고 이주민인 우리 역시 그들에게 사람인가 자문하고 나면,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특정 집단만을 위해 별개로 존재하는 의미인 것 같아 쓸쓸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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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내가 살던 파주의 기억

전쟁이 났다. 있어서도 안 되고 이럴 리가 있나 싶은 퇴행적 전쟁임이 분명하다고 사람들은 규정한다. 나는 전쟁을 조금은 다른 개념으로 읽는다. 전쟁은 나에게 ‘아버지’였다. 그러니까 전쟁에 관한 나의 기억은 전쟁의 현재가 아니라 전쟁 이후에 가깝다. 그걸 승리라고 하든 패배라고 하든 휴전이라고 하든 어쨌든 전쟁 이후에 존재하던 전쟁의 길고 긴 그림자를, 나는 전쟁이라고 기억한다. 살아남은 사람을 더 지독하고 고통스럽게 학대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었다고.

내 아버지와 내가 살던 곳은 휴전선과 맞닿은 파주의 북쪽 끄트머리였다. 게다가 반공을 무슨 신의 계시처럼 떠받들고 살던 시대였으니 밤낮 할 것 없이 휴전선 근처에는 군사훈련 소리가 끝도 없었다. 하늘이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든, 봄비가 내리든 희고 아름다운 설경에 뒤덮이든, 그 모든 걸 뒤흔드는 포격 소리와 기관총 소리는 어떤 사람이든 단박에 공포에 질리게 했다.

다닥다닥 하늘을 뒤흔드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고 펑펑 땅을 흔드는 흔들림이 심상치 않을 때면, 마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불안한 얼굴로 뉴스를 들여다보았다. 별일 아니라고, 대통령은 맨질맨질한 맨얼굴로 시찰을 하고 격려하고 악수를 나누었지만, 그렇다고 그 모습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의 공포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런 날 밤이면, 마을 도로를 가득 채우고서 탱크들이 지나간다. 얼굴을 새카맣게 지운 군인들이 지나간다. 어렸을 적 처음 만져본 탱크의 촉감은 ‘철’이라거나 ‘쇠’의 질감과는 전혀 다른 묵직함이었다. 세상에 이런 무거움이 있다니 놀라면서도 그걸 단지 ‘무거움’으로만 기억하던 나는, 지금 그 무게가 어떤 걸 짓이기고 지나갈 계획인지 잘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몸을 찢고 그들이 꿈을 꾸며 만들어 세운 그 모든 것들을 가볍게 짓밟고 드르륵드르륵 앞으로 나아가는 그 무게가 어떤 의미인지를.

그래서 탱크 앞에 어느 사람이 맨몸으로 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그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촉감이 떠오른다. 다시 또 그 무지막지한 무게가 떠오르고, 내 어린 시절의 공포가 떠오르고, 내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평생토록 이어질 또 다른 전쟁이 떠오른다. 먹고사는 일도 깔아뭉개고, 예술이나 문학도 깔아뭉개고, 젠더 논쟁도 깔아뭉개고, 에스엔에스(SNS)도 깔아뭉갤 그것이.

아버지의 전쟁은 그 몸이 평생토록 고통에 살다가 죽고 화장이 된 뒤에야 끝이 났다. 화로에 들어가 삽시간에 재로 변한 아버지의 유해를 네모난 국자 같은 것으로 끌어모아 작은 항아리 앞에 쏟아놓았는데, 타당타당 쇳소리가 철판 위에 떨어졌다. 전쟁의 과거로부터 아버지의 몸속에 박혀, 평생토록 아버지를 괴롭혔던 총탄 조각들과 파편 조각들이 생생하게 우리 앞에 떨어졌다. 전쟁은 파편이 되어서도, 작은 조각 하나로도 끝내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아버지를 이겼다.

사람이 일으킨 전쟁은, 어떤 신념 어떤 대의를 목표로든 합리화하든 말도 안 되는 그 전쟁은, 끝내 사람을 이겨낼 것이다. 어느 쪽이 승리하고 어느 쪽이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시작하는 순간, 전쟁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 사람은 패배를 약속받는 셈이다. 전쟁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그자야말로 인류 역사를 망치겠다고 나서는 가장 선명한 악이며, 반드시 사람에게 패배를 약속하는 패배의 장본인이다. 승리하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반드시 패배한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건, 어디선가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건, 무수히 많은 사람의 생이 패배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 어떤 전쟁으로도 승리하는 인간은 없다. 사람은, 패배한다.

그 사람도 사람을 위한 꿈을 꿀까 생각한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 말이다.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한 사람들 말이다. 이번 전쟁으로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겠지, 내 권력이 지켜지겠지, 영토를 저만큼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겠지, 그 땅 위에서 자신만의 국민들이 새로운 나라를 짓고 평화로운 꿈을 꾸며 나날이 발전하고 불안에 떨지 않는 삶을 이어가리라고, 그들에게도 그런 꿈이 있을까 생각한다. 어떤 실패나 패착이 진실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우리는 말하곤 하는데, 전쟁을 위한 심판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온 평화는 과거의 무수한 전쟁을 겪은 반성 위에 이루어진 것이며,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란 무수한 희생자의 넋에 빚지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영토나 지리적 관점이 아니라, 사람 관점의 심판이라면 거듭된 전쟁이란 심판이랄 것도 없이 무조건 패배고 오점이다.

거실 탁자에 놓인 아버지 사진과 김비 부부의 캐리커처. 김비 제공
거실 탁자에 놓인 아버지 사진과 김비 부부의 캐리커처. 김비 제공

2017년 유럽 여행 때 독일 하노버에서 찍은 에기디엔 교회 모습. 2차 세계대전 폭격에 그을려 있다. 김비 제공
2017년 유럽 여행 때 독일 하노버에서 찍은 에기디엔 교회 모습. 2차 세계대전 폭격에 그을려 있다. 김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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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어떻게 끝날까

살아남았다면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신의 조부모들은 전쟁의 곁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공포에 질리면서도 그럼에도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썼던 의지의 주인공이다. 어느 때고 전쟁을 다시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 공포와 참혹으로부터 다음 세대를 지켜내고 말겠다는 그 의지를 품었던 사람이다. 우리의 평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걸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어떤 보통 사람들의 비범한 노력의 산물이다.

너무도 안타깝고 한스러운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까, 나는 모른다.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 곳곳에 사람의 패배가 쌓일 테니, 비로소 잊고 있던 사람의 귀함을, 전쟁의 참혹을 우리 이제나마 생생한 실제의 일로 알게 될까? 어떤 전쟁의 미래를 가장 가까운 곁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또한 편가르기의 폭력을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는 소수인 국민으로서, 나는 우리가 품었던 혐오와 이기심, 그리고 탐욕스러운 승리와 패배를 논하는 그 어리석음이, 이제라도 자책하고 반성할 수 있길 바란다. 내가 아주 멀리에서 버튼을 눌렀구나, 누르고 있구나, 오히려 나와 나의 일상을 죽이고 있구나, 비로소 깨닫기를. 전쟁, 전쟁을 품은 욕망들, 멈추라. 지금 당장 멈추라.

소설가.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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