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덕분에, 동창이고 교사고 그 친구를 닮은 사람들 덕분에, 혹독한 시절을 버텼다. 덕분에 이만큼 잘 살고 있다고 손 들어 인사하고 싶다. 그림 박조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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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했던 1980년대의 내 학창 시절, ‘좋은 친구’라고 하면 가장 먼저 한 사람이 생각난다. 남자일 수 없는 내가 남자중학교, 남자고등학교를 다니며 겪어야 했던 일들은 지옥이었는데, 그런 나에게도 길잡이별 같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나와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예순세명이나 되었던 같은 반 동창 중 이름마저 흐릿한 사람이었다. 운동장에서 만난 그때도 같은 반이긴 했나, 확실하지 않다.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농구공을 들고 거의 날마다 운동장을 뛰던 날, 그는 방과 후 책가방을 던지고 농구장에 뛰어든 아이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날 나는 공을 쫓아 뛰다가 근육 경련으로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죄어 오는 다리 근육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뛰어왔다. 망설임도 없이 내 운동화를 벗기고, 바지를 밀어 올렸다. 손으로 내 발목을 꺾어 다리를 폈고, 내 발을 제 턱 밑에 받치고서, 뭉친 다리 근육을 열심히 주물렀다.
그 친구는 손으로 내 발목을 꺾어 다리를 폈고, 내 발을 제 턱 밑에 받치고서, 뭉친 다리 근육을 열심히 주물렀다. 김비 제공
나는 더럽고 냄새나던 몸이었는데, 그 시절의 가난이란 그렇고, 내 몸을 향한 혼란이란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깨끗하고 하얀 얼굴을 지닌 그 친구는 내 더러운 발을 턱 밑에 붙인 채 내 뭉친 근육을 열심히 주물렀다. 얼마나 심하게 뭉쳤는지 다리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 종아리와 허벅지를 열심히 매만졌다.
한참 후 간신히 경련이 잦아들고서, 그는 말없이 돌아서서 가버렸다. “더러운 새끼, 좀 씻고 다녀라” 하고 나를 타박하지도 않았다. 때와 땀이 범벅인 내 다리를 한참 동안 주무르다가 사라진 게 전부였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누구에게 무어라 말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내 앞에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열대여섯살짜리 사춘기 아이였던 그가 내 혼란이나 가난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는 이해받은 느낌이었다. 그 후로도 우린 친해지지 않았지만, 나는 이따금 복도에서 교실에서 그 아이를 봤다. ‘고맙다’고 말해야 했는데, 그런 말조차 나는 할 줄 몰랐다. 성별을 떠나서, 나 역시 ‘관계’를 배우지 못한 철없는 사람이었다.
‘학교가 지옥이었다’고 쓴 학교폭력 피해자의 문장을 최근에 읽었다. 2023년 지금까지도 너무 여러 청소년의 손으로 몇번이고 되풀이되어 적힌 문장이다. 그 문장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또한 그 지옥을 아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아이들은 ‘장난’이었고, 어른들은 ‘그럴 때’라고 뭉뚱그려버린 폭력은 성소수자인 내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빼곡했다. 가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고, 피해자들에게는 도저히 지워버리기 쉽지 않은 ‘치욕’인 시간들이.
성공해서 복수하라거나 살아남아서 갚아주라는 드라마 속 또렷한 조언들마저 이제 그 효용을 다해 간다. 성공하는 삶들은 이미 정해졌고, 이름을 바꾸거나 얼굴을 바꾸어, 부모나 지인의 조력으로 얼마든지 그 죗값을 뒤로 미룰 수 있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부모 사랑 아래서, 그들은 근사하고 자랑스러운 ‘미래세대’라는 옷을 입고, 자신이 저질렀던 폭력들을 추억 삼아 술잔처럼 돌릴 것이다. 간신히 살아남아 주어진 삶에 성실하려 노력하는 어떤 삶을, ‘애쓴다’고 조롱하면서.
집요하고 지독한 폭력의 피해 경험은 완납된 고지서처럼 찢어버릴 수 없다. 아무리 잘게 찢고 불태워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겨냈다고 믿는 사람마저 ‘극복’을 떠올리는 순간 붙들린, 헝클어진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유난히 예민한 특정한 몇몇 아이의 부풀린 경험이 아니다. 유난히 폭력에 무감각한 ‘정상 사회’의 반복된 2차 가해일 뿐이다. 미래가 있고 앞날이 창창하다는 수사는 제일 먼저 피해자의 몫이어야 한다. ‘철없을 적’ 저지른 폭력이란 말조차 이젠 삭제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폭력을 용서받아야 할 만큼 한 인간이 철없을 시절이란, 2023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손가락만 까딱하면 알 수 있고, 글자만 읽는다면 이해할 수 있고, 그 죗값이 어떨지조차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어린 나이를 핑계로 죄의 경중을 달리할 시대가 아님을, 우리 사회는 이제 승인해야 한다. 감싸고 품어 안는 것만이 사랑이 아님을, 오히려 언제든 빠져나갈 방법을 알려주는 것임을, 미래세대를 망치고 자식을 망치는 길임을, 우리 사회는 형편없었던 후세 교육의 성적표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자일 수 없는 내가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다니며 겪어야했던 일들은 지옥이었는데, 그런 나에게도 길잡이별 같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김비 제공
그럼에도 나는 ‘좋은 친구’를 먼저 적었다. 가해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가해 사실을 낱낱이 적을 수 있었지만, ‘좋은 친구’를 먼저 기록한다. 나를 위해서다. 가해자들을 감싸자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어떤 고난 속에도 극복하려는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따위의 폭력적인 충고를 첨언하려는 게 아니다. 또 한번, 나를 위해서다. 도저히 추억이 될 수 없는 피해 경험을 지우지 못한 채, 돌아볼 때마다 그 시절을 다시 목격해야 하는 나를 위해. 붙들리지 말라고, 너도 숨을 쉬고 살라고.
학교가 평등을 실험하는 곳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최초의 학교는 궁지에 몰린 모두를 위해 유일하게 평등한 꿈을 가능하게 했던 곳이었다. 어느 집에서 태어났든 어떤 몸을 지녔든, 같은 걸 배우고 같은 깨우침을 얻는다. 서로의 몸이나 부모나 외모가 다르면 다를수록 더 많이 배우는 곳이 바로 학교였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표현은 반추하기 위한 비유였을 뿐, 현실 사회와 학교가 거울처럼 같아야 한다는 의미일 리 없다. 오히려 현실 사회가 이루지 못한 많은 이상을 실험하기 위한 의미는 아니었을까? 아이는 부모를 닮고 학교는 사회를 닮을 때, 우리가 해줄 말은 수십년이 지나서도 고작 ‘어른들을 닮지 말라’여야 하는 걸까?
어느새 학교에서 이상을 꿈꾸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성공하는 사람은 정해졌는데 뭐 하러 학교에 가냐고 아이들이 물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인간과 삶을 공부하고 배우는 인문학을 경시하고 폐기해 버린 채, 눈앞의 효용과 효율성만 따진 우리 사회의 교육은 어떤 미래를 결과물로 낼까? 혹시 잔혹해지고 집요해진 학교폭력은 그 틈바구니에서 쑥쑥 자란 게 아닐까? 돈과 권력이면 뭐든지 해결된다는 어른들의 철칙을 조기 교육의 자양분으로 삼아서.
그때 그 ‘좋은 친구’는 잘 지낼까,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었을까? 혹시 혼자일까, 성소수자였던 건 아닐까? 나는 친하지 않았지만 기억에 남은 그 친구 덕분에, 동창이고 교사고 그 친구를 닮은 사람들 덕분에 혹독한 시절을 버텼다. 학교가 나에게 선물했던, 제일 귀한 교육이었다.
도저히 추억이 될 수 없는 피해 경험을 지우지 못한 채, 돌아볼 때마다 그 시절을 다시 목격해야하는 나를 위해. 붙들리지 말라고, 너도 숨을 쉬고 살라고. 김비 제공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