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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함께여서 단단해졌다” 40여년 전 소녀 미싱사들을 만나다

등록 2022-03-12 18:03수정 2022-03-13 14:41

[한겨레S] 살롱 드 여울 | ‘미싱타는 여자들’ 감독·출연진
1970년대 평화시장 노동교실 소녀 미싱사들
어린 여성이라 소외된 기록, 꾸밈없이 스크린에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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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정을 나는 결코 가져본 적이 없구나.”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을 보고 난 뒤 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던 뼈아픈 속삭임이었다. 한 사람을 이만큼 사랑할 순 있다. 두 사람을 이만큼 사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이토록 강렬한 열정으로 사랑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에서 만난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10대 시절 ‘시다’(미숙련 노동자)로 만나 60대가 넘은 지금까지도 서로를 마치 피붙이처럼 아끼고 보살펴준다. (청계피복노조 출신의 ‘청우회’ 회원은 100명 내외고, 자주 활동하는 분들은 50명 가까이 된다.) 어떤 계산도 없이, 어떤 의심도 없이. 누구도 누군가에게 군림하지 않고, 완전히 평등한 우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우정에도 필연적으로 권력이 존재하기 마련인데(그럴 때마다 나는 우정 자체를 포기하곤 했다), 이들의 눈빛에선 어떤 권력이나 억압의 기미도 찾아볼 수 없다. 평생 아픔을 견뎌온 서로를 향한 온전한 믿음과 사랑, 그것이야말로 <미싱타는 여자들>의 주춧돌이다. 영화 초반에는 그들이 견딘 아픔이 애틋해서 울고, 중간쯤에는 그들이 나눈 짙은 연대의 시간이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러워 울고, 끝날 때쯤엔 그들이 머나먼 역사 속 타인이 아니라 우리 엄마, 누이,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함께 울게 된다.

1970년대 평화시장 각종 의류공장에서 ‘공순이’라 불리며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옷을 만들었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태일 같은 남성 노동자들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 또한 많았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미싱타는 여자들>은 바로 그들의 따스하고도 절절한 안부를 전해준다. 고향도 나이도 저마다 다른 그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것은 ‘노동교실’이었다. 노동자들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노동교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하나라도 더 권리를 찾아,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꿈꾸었던 소녀들. 그들은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너무도 중요한 사건, 1977년 9월9일 노동교실 투쟁을 이끈 용감한 전사였다. 김정영 감독, 이혁래 감독,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5인을 한꺼번에 인터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아이디어였다. 과연 이분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까, 과연 허락해주실까. 다행히 제작진뿐 아니라 배급사인 영화사 진진 식구들까지 따스하게 맞아주셔서, ‘살롱 드 여울’은 <미싱타는 여자들>과 어우러져 비로소 소담스러운 ‘우정의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lt;미싱타는 여자들&gt; 출연진과 연출자들이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승원 사진작가
<미싱타는 여자들> 출연진과 연출자들이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승원 사진작가

턱없이 부족했던 여성 노동자의 기록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먼저 이 모든 일의 출발점에 있는 김정영 감독님께 질문드릴게요. 영화를 처음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신다면요?

김정영 “2017년 12월에 봉제역사관 구술 생애 영상 아카이브 제작을 의뢰받아 2018년 1월에 32인의 봉제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못다 한 공부를 늦은 나이에 계속하고 있고, 추운 겨울 지하에 위치한 공장에서 만났을 때 따뜻한 삼박자 커피(이숙희님이 ‘믹스커피’를 가리키는 말)를 마시며 열심히 일하는 봉제 기술자로서 자부심도 있었지만, 가정경제를 지금까지도 책임지는 모습이었기에 저로서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봉제역사관 영상을 완성한 뒤, 곧바로 다큐를 기획하며 청계피복노조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기록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어요. 전태일과 이소선 어머니, 청계피복노조를 만든 전태일의 친구들 이야기는 기록들이 많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기록은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여성 노동자의 삶을 꼭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에게 미싱 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도록요. 왜 이렇게 기록이 없을까요. 어려서 소외되고, 여자라서 소외된 것이 아닐까요.”

―어리기에 소외되고 여성이기에 한번 더 소외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당시 미싱을 타며 매일 초과근무를 하던 여성 노동자들 상당수의 나이가 열두살, 열세살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지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공장에 취직을 한 거예요. <열세살 여공의 삶>의 저자이신 신순애 선생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1977년 체포 당시 경찰의 구타와 멸시를 당했던 기억을 묘사하실 때 그 고통이 너무도 생생히 전해졌습니다. 그때의 구타 때문에 아직도 한쪽 귀가 잘 안 들리신다고 하셨고요. 그 생생한 느낌을 들려주신 덕분에 머나먼 역사 속 노동 현장의 이야기로 대상화되었던 청계피복노조의 이야기가 ‘그냥, 꾸밈없는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가깝게 느껴졌어요. 출연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셨던 순간이 언제인지요?

신순애 “영화가 마침내 완성되었을 때였어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때의 아쉬움이 한꺼번에 사라진 느낌이었지요. 그 영화는 전태일의 영화가 아니라 전태일을 돕고 싶었던 엘리트 지식인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미싱타는 여자들>을 보면서, 이제야 우리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결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은 가능해졌어요. 당시 어떤 노동자가 이런 희망사항을 말했거든요. “기차가 멈췄으면 좋겠다! 보너스 1000%!” 당시엔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정말 기차가 멈추는 파업이 가능해졌고, 보너스 1000%가 넘는 회사도 있어요. 우린 알게 되었지요. 노동자들이 모이면 정말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여전히 의료보험과 연금보험 혜택을 못 받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잘못된 노동 관행이 너무 많아 한숨이 나오지만, 여전히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기억해주시고, 동참해주세요. 출산휴가 보장이 확실히 안 되니까 주변의 눈치가 보여서 아이를 못 낳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공적기금을 투입해야 합니다. 노조 활동 전에는, 부디 돈 벌어서 내 가족의 가난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젠 타인의 아픔과 함께하는 삶이 소중합니다.

청소년센터 자원봉사를 10년 넘게 하면서, 전국의 소년원 아이들을 다 만나는 게 꿈이었어요. 그 친구들이 저랑 코드가 잘 맞거든요.(웃음) 그 아이들의 아픔이 내 아픔과 너무 똑같아서요. ‘그래도 내가 참 잘 살았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노조 활동을 통해서였고, 국가폭력 피해에 대한 소송 끝에 저희 부부가 받은 배상금 8300만원을 김근태기념치유센터에 장학금으로 몽땅 내놓았던 것도 ‘함께하는 삶’만이 의미 있기 때문이에요. 제 장학금을 받는 청년의 외할아버지가 간첩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었다고 해요. 아이는 평생 외할아버지 탓을 했는데, 우리 영화를 보고 펑펑 울면서 ‘저렇게 고생하신 분 돈을 어떻게 받냐’며 미안해한다고 해요. 아이가 더 이상 운명을 탓하지 않고 용기 내어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 정말 기뻐요. 노조 활동으로 인해 제 삶이 바뀌었고, 이젠 제 삶의 기쁨을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1977년 9월9일 노동교실 투쟁을 함께 했던 15살 소녀들은 60살이 넘어서도 서로를 피붙이처럼 아낀다. 영화사 진진 제공
1977년 9월9일 노동교실 투쟁을 함께 했던 15살 소녀들은 60살이 넘어서도 서로를 피붙이처럼 아낀다. 영화사 진진 제공

울면서 건져올린 개인의 시간

―타인의 아픔과 온전히 함께하는 삶, <미싱타는 여자들>이 우리에게 선물한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혁래 감독님이 연출하시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요?

이혁래 “우리 영화가 ‘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되길 바랐어요. 오래된 시대의 증언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담고 싶었어요. 출연진의 이야기가 유신시대의 한 풍경으로 환원되면 안 된다고 믿었고요. 당시 일반적인 자료화면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사적인 자료들로 화면을 구성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어요. 아픈 과거를 다루는 다큐가 가져야 할 윤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개인을 역사의 희생자로 그리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거예요.

<전태일 평전> 이후 노동자들은 수십년 동안 희생자로만 그려져왔어요. 그걸 반복한다면 다시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죠. 임미경 선생님이 “누가 시켰냐”며 자신을 탄압하는 경찰과 판사를 보며 ‘저들은 누가 시켰길래’ 하면서 연민을 느끼는 장면을 보면서 확신이 생겼어요. 개인이 역사를 뛰어넘는 순간을 포착했던 것이지요. 그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가치 있는 작업이 될 거라고 믿게 됐어요. 출연진은 오랫동안 평화시장 소녀 미싱사 시절을 꽁꽁 숨겨왔어요. 억울하고 아픈 기억이니까요. 그런데 그걸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이잖아요. 촬영하는 동안 출연진도 울고 제작진의 가슴도 무너졌어요.

40여년 전 소녀 미싱사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었어요. 오랫동안 숨겨온 과거의 나를 마주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 나 자신이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웠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과거와 현재의 내가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를 영화를 통해 만들고 싶었어요.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리는 과정 중간중간에 친구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고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는 등 과거 노동교실에서 누렸던 일상을 다시 체험하도록 했던 것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어요. 이 영화를 시작할 때 처음 다짐한 게 딱 두 문장이었거든요. 지루하면 안 된다! 울려야 한다!”

―다큐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확실히 깬 영화였습니다. 결코 지루하지 않고,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고,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은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임미경 선생님이 울면 저도 따라서 펑펑 울게 됩니다. 체포 당시 열다섯살이었기에, 감옥에 갇힐 수 없는 나이였잖아요. 그런데 경찰이 주민등록번호를 위조해서 열다섯살이었던 임미경 선생님을 감옥에 끝내 가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서 한동안 멍해졌어요. 이 참담한 국가폭력의 억울함을 어떻게 호소해야 할까요?

임미경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너무 억울해서 백방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억울함을 풀 수가 없었어요. 아들을 법대로 보내서 정의로운 판사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안 되었고요.(웃음) 무엇이 열다섯살 소녀를 끝내 감옥으로 집어넣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다급하게 만들었는지. 그래도 영화를 본 분들이 제 이야기에 공감해주신다는 것이 참 기뻐요. 지인들이 전화해서, 너를 40년이나 알았는데 이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참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었지요. 딸은 영화를 보고, 예전에는 간단하게 알고 있었지만 이젠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엄마가 무척 자랑스럽다고 했어요. 아들은 엄마가 영화에서 너무 많이 울어 가슴 아프다고, 아들도 엄마 따라서 열심히 울었다고 이야기했지요.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재판을 받으며 본 판사들의 표정과 행동입니다. 판사들은 열다섯살 소녀 임미경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토록 가혹한 판결을 내린 걸까요. 그 순간이 너무 억울해서, 저라도 법을 배우고 싶어서, 제가 직접 늦은 나이에 법학과에 입학하여 졸업도 했습니다. 지금은 판사들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거나 명령을 받아서 판결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간절하게,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나를 지금 다시 만난다 해도, 그때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열다섯살의 임미경, 파이팅!(웃음)”

농성, 성취, 인생의 전환점

―끝까지 정의롭게 살고 싶은 열다섯살 소녀 임미경을 격하게 응원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숙희 선생님 광팬’이 되었는데요. 무엇이든 막힘없이 척척 대답하시는 모습, 수십년 전 사건들에 대한 미세한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기억하는 모습에 감탄했어요.

이숙희 “열심히 노조 활동을 했던 많은 동료, 후배들의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영화를 통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과연 영화 한 편이 우리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그려주어서 좋았습니다. 수십년간 꽉 막혀 있던 속이 이제야 후련해지는 느낌이지요. 며느리들이 영화 보고 많이 울었다고 말해주었어요. 가족들은 제 과거를 잘 모르고 있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만약 전태일을 몰랐다면, 전태일을 알게 되어 나 자신의 자아를 찾아 노조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는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노조 활동을 하면서 저만이 아니라 주변 세상을 둘러볼 줄 아는 마음의 눈을 갖게 되었거든요.

1975년 2월9일 노동교실 찾기 첫번째 싸움에서 처음으로 농성을 하여 승리하고, 그 후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해서 여러 노동조건이 개선된 것이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었어요. 내가 뭔가를 해낼 수 있구나, 그날 9·9 사건 때 내가 교실 안에 남아서 한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의 목숨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영화를 보며 ‘내가 그때는 저렇게 활짝 웃었구나’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노조에 처음 다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 힘들고 피곤해도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거예요. 지금은 제 표정이 딱딱한 편인데, 예전 사진들 속에서는 제가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네요.”

김정영 감독. 영화사 진진 제공
김정영 감독. 영화사 진진 제공

6. 이혁래 감독. 영화사 진진 제공
6. 이혁래 감독. 영화사 진진 제공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그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이제 다 지나간 신화 속 인물들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본 것은 아닐까. 1977년 9월9일의 노동교실 투쟁에서 잡혀간 만 열다섯살 소녀는 기억한다. “어린애가 여긴 왜 잡혀왔어?” “응, 내가 좀 ‘쎈가’ 봐!” 씩씩하게 말했던 임미경. 판사들이 열다섯살 소녀를 재판하려 했을 때, 그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열다섯살 소녀를 북한의 앞잡이라는 명목으로 불법 감금하는 판사가 지성인인가, 어린 소녀들을 잠도 못 자게 하고 일만 시키는 공장주의 만행을 막기 위해 노동교실에서 잘못된 현실과 끝까지 싸운 열다섯살 소녀가 지성인인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 소녀 미싱사들이야말로 참된 지성인이 아니었을까.

김정영 감독은 언니·오빠가 없는 맏딸이라 외로웠는데, 청계피복노조를 통해 ‘평생의 언니들’을 우르르 만나서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한다. 십대 시절 만나 가장 힘들고 아픈 시절을 함께하고, 엄혹한 시절일수록 더 따스하게 서로를 보듬어주는 그들의 우정은 오늘도, 이 아프고 힘든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그들의 눈부신 합창, ‘흔들리지 않게’처럼. “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흔들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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