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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빌어먹을, 제발 평화롭게 삽시다!”

등록 2022-04-08 18:59수정 2022-04-08 19:06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에델과 어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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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추억을 자극해서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지난 일요일에 끝났다. 꼼꼼하게 기록한 엄마의 일기를 딸이 들춰 보면서 그 추억을 따라가는 설정. 펜싱, 친구들, 그리고 첫사랑을 뜨겁게 사랑했던 엄마의 고교, 대학 시절에서 용기를 얻은 딸도 지친 마음을 털어내고 힘을 얻는다. 엄마의 시절을 엿보는 것은 그 시대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20년 전인데 휴대전화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삐삐’와 공중전화로 겨우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나 어긋나는 장면은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실직, 부도, 그리고 생활의 곤궁함…. 하지만 주인공들은 성장한다.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빠른 성장을 하던 시기를 지났던 엄마와 친구들의 성장기가 힘이 되었다니 다행이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을 겪으면 상실감이 더 클지도 모른다.

아들의 입장에서 부모의 일생을 담담하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낸 만화가 <에델과 어니스트>다. <스노우맨>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가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그렸다. 에델이 묻는다. 왜 당신은 나를 집에 초대하지 않는가? “집이 누추해서 그래요. 말과 마차들이 길에 늘어서 있고 사방에 과일과 채소 좌판이 널려 있어요. 고물 장수와 넝마주이들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길바닥에 앉아 노름하고. 사방이 말똥 천지예요. 술집 앞에서 툭하면 싸움이 벌어져요.” 어니스트는 로열 아스널 낙농조합의 우유배달부. 에델의 집이 좋은 것은 부잣집의 가정부이기 때문이다. 부잣집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버리고 우유배달부와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 에델을 이해할 수 없다.

1930년에 결혼한 둘은 825파운드짜리 집을 사서 입주한다. 25년간 갚아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소박하게나마 영국에 몇년 살아본 깜냥으로 보면, 윔블던이라는 지역에서 이 정도 크기와 설비라면 서민 표준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연철대문, 대리석 기둥, 프랑스식 창문, 욕실과 침실, 창고와 정원, 화덕과 보일러. 입주하는 날, 부부가 끌어안고 만세를 부를 만했다. 침대와 옷장을 들이고, 중고로 식탁과 소파, 장식장까지 차근차근 마련했다. 오래된 화덕을 가스레인지로 바꾸고 스테레오로 음악도 듣는다. 막 발명된 텔레비전도 들였고 자가용도 갖춘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한 시기에 가장 잘사는 나라의 덕을 본 셈이다.

성장의 과실을 나눈 시기였지만, 세계대전을 지나는 분쟁의 시기였고, 나치의 만행과 같은 인류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런던에 폭격이 다반사였고 등화관제를 한 채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폭격으로 집의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먼 곳에서 떨어진 원자폭탄 이야기도 들으면서 노동당을 지지하는 어니스트와 보수당을 지지하는 에델은 늙어간다. 그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나누던 말은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빌어먹을 아랍인들과 유대인들하고 똑같아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또 어떻고, 그들도 똑같이 못됐어.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도 그렇고. 왜 다들 그냥 우리처럼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우리의 부모들보다 더 나은 세상을 살고 있는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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