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강수연씨가 지난 7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22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강수연씨. 연합뉴스
“40년은 더 연기하고 싶다”던 그의 꿈은 멈췄지만, 그의 발자취는 한국 영화사에 깊고도 영원한 흔적으로 남았다.
지난 5일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7일 오후 끝내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향년 55)씨는 아역배우와 청춘스타를 거쳐 한국 최초의 ‘월드스타’가 되기까지, 삶 자체가 한국 영화사와 고스란히 겹친 독보적 영화인이었다. 한국 영화의 상징이자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고인의 비보에 영화계 인사들과 팬들은 깊은 슬픔과 애도를 나타내고 있다.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이른 시간부터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영화인장을 치르는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빈소를 찾아 전날 임권택 감독 부부, 배우 문소리, 연상호 감독 등이 장례식장을 찾았다고 밝히며 “너무 갑작스러운 비보라서 안타깝고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고인에 대해 “영화계 최초의 ‘월드스타’로서 전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했고, 그 뒤에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영화계와 한국 영화산업에도 크게 기여한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조문이 시작된 오전 10시께부터는 전날에도 빈소를 찾았던 배우 문소리를 비롯해 봉준호 감독, 배우 예지원·박정자 등 영화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류승완 감독, 배우 봉태규·김규리·양익준 등 연예계 선후배를 비롯해 팬을 자처하는 이들의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오는 11일 치러지는 영결식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영화배우 강수연의 빈소가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연합뉴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3살 때 아역배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영화 <깨소금과 옥떨메>와 같은 하이틴물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다, 1983년부터 3년 동안 방영된 한국방송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통해 청춘스타가 됐다.
1987년은 그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해였다. 박중훈과 함께 출연한 이규형 감독의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26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그를 월드 클래스급 배우로 만든 것은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씨받이>(1987)였다. 이 영화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고인은 한국 배우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의 나이 21살 때였다. 임 감독과 다시 작업한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명실상부한 ‘월드스타’가 됐다.
이후 고인은 <베를린 리포트>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등의 영화에서 도회적이면서 세련된 개인주의적 인물을 연기하며 영화 세계를 확장했다. 솔직발랄한 현대 여성의 이미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녀들의 저녁식사> 같은 작품에서 당당하고 주체적 여성 캐릭터로 이어졌다.
영화 <송어>로 도쿄국제영화제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등을 받았던 고인은, 2001년에는 에스비에스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주인공 정난정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전인화와 함께 ‘에스비에스 연기대상’ 대상을 받았다.
임권택 감독이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영화배우 강수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고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제공
2011년 임 감독과 20여년 만에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작업했던 고인은 당시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50·60대가 되면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 최소한 40년은 더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열정을 내보였다. 하지만 10여년 만에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바람은 여기서 멈췄지만, 그의 영화들은 우리 곁에 남아서 오래도록 그를 추억하게 할 것이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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