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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나를 위해 울어주는 책이 있다면

등록 2022-07-15 19:00수정 2022-07-15 19:36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있으려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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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점점 모호해져 간다.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펄프로 만든 종이 위에 인쇄한 것을 묶어서 표지를 붙인 책. 거실의 책장에서, 혹은 도서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책들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을 보고 있다.

전자책은 책인가? 대부분은 엄연히 국제표준도서번호를 발급받아서 발행되는 책이다. 아, 그래. 그렇다면 브라우저를 통해서 보는 웹소설과 웹툰은 책일까? 만화를 종이 위에 옮기면 책이고 모니터로 보면 책이 아니라고 하면 어색한데. 요즘은 소리로 듣는 책도 인기가 있다던데, 오디오북도 책으로 분류하는 것 같고. 그림책이 책이라고 영화까지 책이라고 하면 100년 넘게 만들어온 분야의 전통을 무시하는 것이겠지. 이쯤에서 멈추자.

종이책은 아날로그이고 여러 형태의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은 디지털인 것도 아니다. 실제의 제작 공정을 보면 종이 위로 옮겨질 데이터도 모두 디지털 형태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리 데이터를 종이 위에 인쇄해서 창고에 쌓아두지 않고 주문받을 때마다 찍어서 바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구상하는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같은 데이터를 전송해서 전자책도 서비스한다. 그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읽어서 바로 소리로 들려주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젠 하나의 데이터를 여러 매체에 서비스하는 시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글과 이미지로 이루어진 이야기나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라는 오래된 정의에 잘 맞는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책’의 범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책’만 곰곰이 들여다보면서 궁리했을 텐데, <있으려나 서점>의 귀여운 상상들에 ‘책’의 유연성과 가능성이 모두 담겨 있어 놀랍다. 변두리, 한 귀퉁이에 있다는 이 서점은 ‘책과 관련된 책’ 전문점이다. 서점에 꽂혀 있는 책 중에 어떤 것을 뽑아봐도 놀랍지 않은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있으려나 서점에 등장하는 <세계의 팝업 그림책>은 ‘튀어나오는 책’, ‘녹아내리는 책’, ‘달리는 책’, ‘먹는 책’, ‘뛰어드는 책’, ‘우는 책’, ‘칭찬하는 책’, ‘기침하는 책’, ‘자라는 책’, ‘콧물 흘리는 책’을 소개하고 있다. 책이 얼마나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고 그에 따라서 형태도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이다.

<책, 그 후>에는 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 읽고, 낡은 책은 ‘책 재활용 센터’로 간다. 거기서 책은 종이, 색, 문자, 이야기, 감수성 등으로 분해되고, 이야기는 다시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등으로 더 잘게 나뉜다. 이 감정들은 하늘에 뿌리거나 길가의 틈에 놓거나 조미료에 섞어서 다시 사회 속으로 녹아든다. 디지털 시대에 책에 담긴 내용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훌륭한 오마주. 이런 상상 앞에서 산업적인 지원이나 규제 때문에 책의 정의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이 덧없다. 우리는 책을 사랑한 사람들이니 <무덤 속 책장>에 나오는 책장을 내 무덤에 세운다면 어떤 책을 꽂아둘지가 더 고민되겠지. 이 책장엔 그 사람이 자주 읽은 책, 영향을 받은 책, 소중한 사람이 꼭 읽기를 바랐던 책들이 꽂혀 있다. 무슨 책을 두어, 내가 죽어도 찾아와 애도를 해줄 이에게 권할 것인가.

만화애호가

주일우 _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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