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다!” “셰어하우스라서, 방은 따로 있고 공간을 같이 쓰는 공용공간이 있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재미있겠다!”
가슴에 품은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으로 셰어하우스에 모인 네 쌍의 청춘남녀를 관찰하는 일반인 연애 예능 〈다시, 첫사랑〉(엠비시에브리원·2022) 1화의 한 장면이다. 방송을 촬영하는 동안 청춘남녀가 지낼 공간을 카메라는 꼼꼼하게 비춘다. 패널들은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뷰에 감탄하고, 공용공간을 제외하고는 각자 고시원 방 한칸 크기의 좁은 개인공간에서 지낸다는 설정을 듣고도 “괜찮다!”고 탄성을 지른다. 아마 며칠 같이 지내면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촬영하기엔 그리 나쁜 구성은 아닐 것이다.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며칠이 아니라 최소 몇개월을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또다른 방식의 PPL ‘방송 공간’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을 담아내는 일만으로도 바쁠 카메라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공간을 최대한 화사하게 담아낸다. 패널들의 호들갑과 공들인 카메라워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장면은 간접광고다. 출연자들이 지낼 만한 공간으로 제작진이 빌린 이 공간은 모 건설사의 기업형 민간임대주택이다. 서울 성수, 수유, 신촌, 강남 등지에 같은 브랜드로 속속들이 오픈하고 있는 이 기업형 민간임대주택은 다양한 방 크기와 넉넉한 공용공간을 앞세워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침 일반인 연애 예능을 찍을 만한 공간이 필요했던 방송사와 자사의 임대주택 브랜드를 홍보할 만한 창구가 필요했던 건설사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았고, 그 결과 그 민간임대주택은 젊은 선남선녀가 로맨틱한 관계를 이어 나갈 힙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묘사되어 화면에 담겼다. 근사한 피아노가 놓인 공용공간에서, 소파에 둘러앉아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나누는 젊은 남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편의 광고가 되었다.
사정을 잘 몰랐다면 아마 “나도 저런 곳에서 멋진 청춘들과 어울려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방송이 말해주지 않은 점들까지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해당 민간임대주택은 주변 시세보다 20~30%가량 임대료가 높아서 강남점의 경우 가장 저렴한 방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40만원으로 책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나,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특히나 방송에 나온 브랜드의 민간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적잖이 불쾌한 순간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라운지 화장실 변기에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누군지 몰라도 공공기물 멋대로 사용하지 마라”부터 “헬스장에서 상의 탈의하고 음악 크게 틀어놓고 운동기구 쾅쾅 내려놓으며 운동하는 사람들 있는데, 제발 좀 옷이랑 매너를 챙겨라” 같은 호소까지, 입주자 커뮤니티에는 서울 시내에서 월세를 100만원 이상 내면서 겪고 싶지 않은 온갖 불쾌한 일들이 올라온다. 아마 나도 지인이 해당 브랜드에 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들이었으리라.
사실 예능 방송이 부동산 시장의 광고판이 된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각종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자신이 사는 집을 공개하고 난 뒤, 그리 오래지 않아 해당 주택이 매물로 올라오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다. 제작진은 간접광고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문화방송 〈구해줘! 홈즈〉(2019~)와 같은 부동산 예능은 그 존재 자체로 훌륭한 광고판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에 한차례 소개된 매물들은 출연자의 최종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방송 직후 문의가 폭증하니, 간접광고를 받지 않는 제작진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알아서 부동산 업계의 이해관계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급기야 연예인 개인이나 부동산 업자 좋은 일을 해주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거대자본을 지닌 대기업 건설사의 브랜드 임대주택을 협찬받아 촬영을 진행하면서 해당 매물을 적극 홍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럴싸한 뷰는 힘주어 보여주고, 공용공간의 화려하고 쾌적한 면은 최대한 강조하고, 개인공간의 면적이 고시원 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동안, 많은 공간을 공유해서 사용해야 하는 탓에 입주자들 사이에서 자주 분쟁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나 시세보다 20~30% 비싼 월세의 문제는 근사하게 은폐된다.
이게 〈다시, 첫사랑〉만 겪는 일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한 공간에 모여 동거하며 느끼는 미묘한 감정 변화에 주목하는 연애 예능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니, 〈다시, 첫사랑〉처럼 민간임대주택을 협찬받아 촬영을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반인 연애 예능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작년에 방영된 <제이티비시>(JTBC) 〈내가 나로 돌아가는 곳―해방타운〉(2021~2022) 또한 모 건설사의 민간임대주택을 협찬받아 촬영을 진행했다. 기혼 연예인들이 자신의 집을 떠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육아와 가사로부터 해방된 순간을 만끽한다는 테마로 꾸려진 프로그램이니, 연예인들이 지낼 만한 공간을 협찬받는 일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임대주택을 협찬해준 건설사는, 집 구조와 집안 곳곳에 비치된 가구, 빌트인 가전 등을 전국에 꼼꼼하게 홍보하는 효과를 알뜰살뜰하게 챙겨갔다.
‘홍보’ 아니고 ‘방송’ 맞아?
간접광고가 무조건 나쁘다거나, 부동산 자본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방송을 통한 간접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단독 공간으로는 고시원 방 한칸짜리 공간을 간신히 허락받고 매너 없는 이웃들과 부대끼면서 월세는 100만원 넘게 지출하는 삶을 애써 ‘공유와 연결, 교류로 이어지는 새로운 어반 라이프 스타일’로 포장하는 일에 방송이 제 전파를 소모하는 일이 옳은지 묻고 싶은 것이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온갖 근사한 가구와 빌트인 가전이 마련된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일이 맞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제작비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이 정주하며 삶을 꾸려가는 주거공간을, 간접광고 수준을 넘어 자본의 호들갑을 고스란히 반복하며 홍보한다면, 그걸 더이상 방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냥 광고가 아니고?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