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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서답 ‘고요 속의 외침’에 터졌나요, 누군가에겐 일상인데

등록 2022-09-17 17:28수정 2022-09-18 13:50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예능프로그램에 숨은 장애혐오

과장된 몸짓·입모양에 포복절도
장애 고통 모른 채 희화화 지적
비하할 의도 없었다고 하더라도
불편 호소하는 상대방 헤아려야
티브이엔(tvN) <신서유기> 화면 갈무리
티브이엔(tvN) <신서유기> 화면 갈무리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때 이야기다. 멕시코 국민들의 시선은 연장전에 돌입한 한국 대 독일전에 쏠렸다. 같은 시간 열린 멕시코 대 스웨덴전에서 스웨덴에 패배한 탓에, 멕시코로서는 한국이 독일을 꺾는 이변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16강 진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각 한국 대 독일전은 한국의 김영권 선수가 연장 3분쯤 선제골을 기록한 상태, 멕시코 국민들은 온 마음으로 한국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연장 6분께 손흥민이 쐐기골을 넣는 순간, 온 멕시코는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한국 대사관 앞으로 몰려들어 환호성을 질렀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한국인이 있으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끌어안았다.

그러던 와중, 소셜미디어에 ‘한국 고맙다’는 메시지를 올리는 젊은 멕시코인들 중 일부가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잡아당겨 올리는 이른바 ‘기울어진 눈’(slanted eyes) 제스처를 취한 것이 논란이 됐다. 온라인에서는 말로는 고맙다면서 몸으로는 아시아인들을 조롱할 때 쓰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기만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반응이 번지기 시작했다. 상황은 현지 방송사 ‘텔레문도’의 모닝쇼 <운 누에보 디아>(Un Nuevo Dia)의 진행자 제임스 타한과 재니스 벤코스메가 ‘기울어진 눈’을 하며 낄낄거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험악해졌다. 텔레문도는 두 진행자를 즉시 출연정지 시켰고, 타한과 벤코스메 역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해야 했다.

웃음 뒤에 숨은 장애혐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멕시코인들 중에는 이 ‘기울어진 눈’ 제스처가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맥락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셜미디어에 ‘기울어진 눈’ 사진을 올린 멕시코인은, 사과하면서 “그냥 아시아인들의 외모적 특징을 따라 한 것이고, 이게 그런 맥락이 있는 줄은 몰랐다. 모욕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첨언했다. 하긴, 한국인들에게 고맙다고 사진을 올리면서 굳이 비하의 의도를 담을 필요는 또 뭐가 있었으랴. 하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아시아인들이 모욕감을 느꼈다면, 그건 좋은 행동이 아닐 것이다.

갑자기 2018년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새삼 다시 논란이 된 ‘고요 속의 외침’ 때문이다. 한국방송(KBS) <가족오락관>을 필두로 수많은 예능에서 사랑받아온 방송용 게임인 ‘고요 속의 외침’은 일종의 스피드 게임이다. 문제를 내는 사람과 맞히는 사람 모두 외부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쓴 상태로, 주어진 제시어를 설명해 제한시간 안에 더 많은 정답을 유도해야 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핵심은 문제를 내는 사람이나 맞히는 사람이나 상대의 입 모양에 의존해야 하는 탓에 서로의 말을 엉뚱하게 잘못 알아듣기 쉽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이어지는 기상천외한 동문서답 퍼레이드 덕에 ‘고요 속의 외침’은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다. 최근에는 티브이엔(tvN)의 나영석 피디가 연출하는 <신서유기> 시리즈와 <출장 십오야>, <뿅뿅 지구오락실>, 제이티비시(JTBC)의 간판 예능 <아는 형님> 등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문제는 이 게임을 웃으며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고요 속의 외침’을 볼 때마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주변 청인(비청각장애인)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이 떠올라 고통스럽다는 청각장애인들의 지적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고요 속의 외침’ 게임을 하는 청인들에게는 상대가 제 말을 못 알아들을 때 짜증을 내고 답답한 표정을 짓는 일, 틀린 단어를 듣고 주변 사람들이 포복절도하는 일은 전부 게임을 하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잠시 겪고 마는 이벤트다. 그러나 청각장애인들에게는 매일매일 견뎌야 하는 불편과 고통이다. 누군가에겐 매일의 고통인 것을, 잠깐의 유희로 소비하면서 과장된 입 모양과 몸동작으로 낄낄거리고 말 수 있다는 건 분명한 특권이다. 그리고 그 특권 때문에 누군가는 지속적인 장애혐오에 시달린다.

문제는 지적이 반복될 때마다 점점 더 나아지기는커녕 더 험악해지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뿅뿅 지구오락실>이 화제가 되면서, 다시 한번 ‘고요 속의 외침’을 문제 삼는 칼럼과 기사들이 등장했다. 그러자 댓글창에는 “장애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문제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과민반응이다”, “모든 청각장애인들이 다 불편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고, 괜찮다는 사람도 있는데 저 사람들만 과하게 예민하게 군다” 등의 공격적인 반응이 줄을 이었다. 추측해보자면, 자신들은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졸지에 자신들을 장애를 조롱하는 유머에 웃는 몰지각한 사람들로 모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던 것이리라.

‘기울어진 눈’을 생각해보라

나 또한 ‘고요 속의 외침’을 보며 웃는 시청자도, 그 게임을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제작진들도, 모두 청각장애인을 비하하고 조롱할 의도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심지어 문제를 제기하는 청각장애인들 중에서조차 게임의 의도 자체를 문제 삼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에 감사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의도로 ‘기울어진 눈’ 제스처를 취한 멕시코인들의 행동이 그랬듯, 의도가 좋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 제스처에 크게 기분 나쁘지 않았던 한국인들이 있었다 한들, 제스처를 문제 삼은 한국인들이 특별히 과하게 예민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설령 비하와 조롱의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행동의 결과로 상대가 상처 입고 모욕감을 느낀다면 그건 지양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네가 그러면 그걸 보고 웃은 내가 뭐가 돼?”라고 화를 내기 전에, 불편을 호소하는 상대의 입장을 한번쯤 헤아려볼 수 있지 않을까?

웃음은 되도록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때 그 힘이 커진다. 2021년 기준 대한민국의 청각장애인 인구수는 34만2582명이다.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웃음을 나눌 수는 없는 걸까? 난 한국의 예능 장인들에게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역량이 충분하며, 우리도 우리 안의 의도하지 않은 차별과 혐오를 자성할 역량이 된다고 믿고 싶다. 이제, ‘고요 속의 외침’을 졸업해야 할 때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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