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국어사전’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는가? 국가가 만드는 <표준국어대사전>이 1999년 처음 발간된 지 20여년이 지났다. 국립국어원은 2026년 발간을 목표로 하여 표준국어대사전의 전면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이 준비에 맞춰 한겨레말글연구소가 ‘국가사전과 언어민주주의’를 주제로 삼아 관련 전문가들의 토론회를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었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 사전팀장, 박일환 시인(<국어사전 독립선언> 저자), 변정수 출판편집인(<한판 붙자, 맞춤법!> 저자), 봉미경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전문연구원,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가 발제자로 참여해 토론이 벌어졌다.
한겨레신문사 부설 한겨레말글연구소 제16차 학술발표회가 ‘국가사전과 언어민주주의’란 주제로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발제와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발제자들의 다수는 국가가 ‘표준’을 독점하는 현행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축사를 통해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붙어 있는 ‘표준’이라는 이름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며 “국가의 권위와 사전의 권위와 ‘표준’이라는 이름의 권위가 결합해 표준국어대사전만이 인정할 수 있는 사전이라는 언중의 맹신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 사례의 하나로 ‘동주민센터’를 든 이 대표는 “2007년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로 개편할 때 한글문화연대에서 외국어를 쓰는 것에 반대했으나 행정자치부 담당자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라며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사 부설 한겨레말글연구소 제16차 학술발표회가 ‘국가사전과 언어민주주의’란 주제로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발제와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변정수 출판편집인은 표준국어대사전이 무엇을 표준어로 삼고 무엇을 비표준어로 삼을지에 관한 기준이 협소하여 풍부한 우리말이 비표준어로 밀려나는 현상을 문제로 들었다. 변 출판편집인은 ‘알타리무’를 ‘총각무의 잘못’이라고 단정해 언중이 두루 쓰는 말을 배제하는 것을 단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변 출판편집인은 “애초에 어떤 말을 쓸 수 있는지를 ‘허락’하고 말고 할 권능을 특정 기관이 행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반문화적 전체주의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대성 사전팀장은 표준국어대사전이 국어 해석의 유일한 준거로 사용되고 있어 언어 다양성을 제약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이 문제의 원인을 ‘국가사전’이 아니라 ‘사전’ 자체가 지닌 속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사전이건 민간사전이건 사전 자체가 지닌 권위성이 다양한 언어 해석을 제약하는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팀장은 표준국어대사전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지금껏 국내에서 표준국어대사전만큼 꼼꼼하게 분석되고 평가된 사전이 있을까” 하고 반문했다.
발제자들은 표준국어대사전 전면 개편과 관련해서도 제언을 쏟아냈다. 박일환 시인은 현행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어휘 가운데 일반인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전문어가 너무 많고 그마저도 풀이가 정확하지 않다며, 최대의 표제어를 수록한다는 물량주의에 더해 전문 용어 우대주의가 가세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박 시인은 “불필요한 표제어를 빼는 일에서부터 표준대사전 개편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국어사전을 편찬하고 그에 대한 온갖 비판이나 책임 추궁을 당하느니 차라리 예산을 대주어 민간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게 더 현명한 길”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변정수 출판편집인도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표준대사전을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