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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독] ‘왜곡’ 국감자료 넘긴 공무원들…국립현대미술관장 ‘패싱’ 의혹

등록 2022-12-22 07:00수정 2022-12-23 10:50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지난 10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문화체육관광부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 국정감사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지난 10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문화체육관광부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 국정감사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관장과 학예실을 일부러 따돌린 것일까?

국내 최대 미술기관으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소속인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이 국감 자료 ‘고의 패싱’ 의혹에 휩싸였다. 문체부에서 파견돼 관장을 보필하고 학예연구실 전시 운영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은 행정직 공무원들의 행태가 의혹의 초점이다. 이들이 관장과 학예실 쪽에 사전 보고나 협의 없이 통계 수치를 왜곡한 작품 구입 관련 자료를 만들어 문체부 간부들에게 전달하고 이 자료를 여당 의원이 받아 국정감사에서 관장을 겨냥해 폭로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 파견 공무원들이 왜곡된 자료를 작성한 뒤 정치권에 유출한 경위와 의도 등을 놓고 여러 의문들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최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문체부와 국현 내부 관계자들을 탐문하고 관련 문건들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밝혀졌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0월 국현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현 기획운영단 행정지원과 직원들이 윤범모 관장에게 정식 보고하지 않고 경매사 작품구입액 등의 통계 수치를 왜곡한 자료를 문체부에 따로 올렸다.

이 통계 자료를 담당하는 주무 부서는 학예실 소장품 자료관리과다. 하지만 행정지원과 공무원들은 박종달 기획운영단장의 지시를 받아 학예실과 사전 협의 없이 임의로 국현 내부 회계망을 검색해 자료를 만들었다. 이들은 2019년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옥션, 케이옥션 경매사를 통해 국현이 사들인 소장품 구매 내역 등의 통계 정보를 뽑아냈다. 2020년과 2021년 서울옥션한테서 각각 사들인 구매액(15억2576만원·15억1741만원)이 같은 시기 케이옥션의 구매액(1억6536만원·1636만원)보다 약 9배 이상 더 많은 수치를 기록한 내용으로 통계 보고 자료를 만든 뒤 문체부 공식 소통망 대신 텔레그램으로 문체부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노형석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노형석 기자

이후 이 자료는 미상의 경로를 통해 여당인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에 들어갔다. 황보 의원은 지난 10월18일 열린 국현 국감에서 윤 관장이 취임 뒤인 2020년과 2021년 서울옥션에 편중해 소장품을 구입했음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 경매사와 관장이 특수관계에 있지 않으냐는 말이 나온다며 질타했다. 이에 윤 관장은 학예실 소장품 자료관리과가 수합한 공식 통계를 제시하며 거의 비슷하게 작품들을 구매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소장품 자료관리과가 국감 뒤 황보 위원실에 공식 제출한 통계자료를 보면, 2020년과 2021년 케이옥션의 작품 구매액 내역(11억9020만원·14억1567만원)은 행정직 공무원들이 작성한 자료의 구매액 내역보다 더 많아 같은 시기 서울옥션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현 내부의 한 관계자는 “행정직 공무원들이 내부 회계망의 구매액 정보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임의로 해석해 케이옥션 구매액을 축소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고 관장 앞에서 오류를 모두 시인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겨레>가 입수한 국현 쪽의 경위 문건을 보면, 행정지원과 직원이 ‘케이옥션’과 ‘㈜케이옥션’ 상호가 뒤섞인 예산 집행부를 참고하면서 ‘㈜케이옥션’ 상호의 일부 구매액만 정리해 자료를 작성하면서 집행 금액이 누락됐다며 오류를 인정한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확인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자료관리과가 공개한 정정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자료관리과가 공개한 정정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주목되는 것은 기획운영단 행정지원과 공무원들이 왜곡된 관련 자료를 뽑아 문체부에 전송하는 과정에서 공식적인 보고 체계를 거치지 않고 텔레그램을 썼다는 사실이다. 관련 직원들을 면담한 홍 의원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행정지원과 직원이 경매 구입 자료를 만들어 문체부에 텔레그램으로 보낸 뒤 자료를 지웠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문체부는 국감을 앞두고 통상적인 정책 자료를 보고받아 수합한 것으로 작성 과정에서의 오류 외엔 절차상 별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장과 학예실 주무 부서에 알리지 않고 자료를 만든 배경과 여당 의원실로 자료가 유출된 경위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윤성천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민주당 의원들의 국감 증인 신청 명단에 서울옥션 대표가 들어있어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윤 관장 관련설도 들려서 미술관(국현) 기획운영단에 경매 관련 정보를 확인해보라고 했다”며 “자료를 받아서 이미 이해하고 정리된 상황이고 황보승희 의원실로 자료가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박종달 기획운영단장은 “경매 구매 실적은 학예실과 행정직이 공유하는 지난 결산 자료들 중 일부로, 주무인 소장품 자료과 직원이 임신해 몸 상태도 안 좋고 연락도 잘 안 돼 그냥 행정지원과 직원이 맡아 급하게 하다가 잘못된 자료를 만들었고 정정하게 된 것”이라며 “빨리 일 처리를 하다 보니 관장한테 나중에 보고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번도 그런 사례”라고 해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노형석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노형석 기자

그러나 국현 관계자들은 소장품 자료관리과가 작성해야 할 자료를 관리과장과의 협의와 관장 재가 없이 행정직들이 자의로 작성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월권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애초 문체부에서 국현 쪽에 관련 자료를 보고하라고 지시한 계기가 된 국회의 경매사 대표 증인 요청도 실제 취지는 국현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병훈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근 경매사의 청년작가 전시와 관련해 문체부 장관 앞으로 증인 요청 의향을 공식 전달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미술관과 무관하다”고 전했다. 이런 정황들이 드러나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관장은 1980년대 현실비판적인 미술인모임 ‘현실과 발언’의 창립 주역 중 한명으로 진보 미술 진영의 비평가와 근대미술사연구자로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2월 20대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돼 올해 1월까지 재직한 데 이어, 지난 2월 공모를 통해 21대 관장으로 재임명됐다. 문체부 산하 국가문화기관장들 가운데 전 정부 시절 임명된 드문 인사로 꼽힌다. 윤 관장은 “나와 주무 부서인 학예실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허위에 가까운 국정감사 자료가 만들어져 정치권에 유출됐다는 게 참담했다. 국가미술관 운영의 상식을 넘어선 일이 벌어진 만큼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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