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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바타 연대기’로 보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유령들

등록 2022-12-31 12:00수정 2022-12-31 12:36

[한겨레S] 기획
영화 ‘아바타2’에 숨은 이야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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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턴 박사님 맞으십니까?”

아프리카 탐험 역사에서 한장을 장식하는 이 한마디는 실종됐던 영국의 탐험가이자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을 찾아낸 미국 탐험가 헨리 스탠리가 건넨 말이다. 서구 최초로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들어간 리빙스턴이 장기 실종된 뒤 4년 만인 1871년 11월3일의 일이다. 리빙스턴은 반가운 마음에 해안지역 외엔 당시 서구에 알려지지 않았던 대륙 중심부에 대한 연구 자료들을 넘겨준다. 하지만 지금까지만 들으면 훈훈한 미담인 이 만남은 거대한 비극을 불러왔다.

리빙스턴은 선교사로서 노예제에 반대했고, 원주민 인권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현지 언어를 익히는 노력으로 주민 협조를 끌어내 꽤 정확한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노쇠한 자신이 못다 한 과업을 스탠리 같은 후배들이 이어주리라 믿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전까지 풍토병과 주민들의 적대 같은 난관 때문에 제한되던 식민화 시도에 물꼬를 터버린 것. 서구 열강은 (자신들 시각에서) 마지막 임자 없는 땅이던 검은 대륙을 분할하기 위해 막판 전력질주를 개시한다. 이때 스탠리의 탐험 실적을 적극 활용한 이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다. 유럽의 소국 벨기에는 식민지 쟁탈전에 끼어들고자 스탠리를 고용한다.

그는 “아프리카 흑인을 돕기 위한 박애주의와 학문적 탐사”를 명목으로 국제콩고협회를 설립하고 회장이 된다. 문명화를 내세운 레오폴드 2세의 명분에 혹한 우호적 여론의 지지로 벨기에는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콩고 독립국을 식민지화한다. 본토의 80배에 가까운 땅에서 레오폴드 2세는 비싸게 팔리던 고무 채취를 위해 주민들에게 할당량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채우지 못하면 수족을 절단하고 학살을 일삼았다. 3세계 식민지에 대한 야만과 수탈은 당시 일상이었지만 콩고의 참상은 제국주의자들에게도 충격일 정도였다. 탐험가들이 현지 주민들과 친교를 맺고 학술 연구에 나서 온갖 고난을 감수한 업적은 이렇게 악용되고 만 것이다. 이런 사례는 널려 있다.

<아바타>가 복기한 제국주의 역사

<터미네이터 1>, <에이리언 2>,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트루 라이즈> 같은 흥행작들로 할리우드 총아가 된 제임스 캐머런 감독 작품 목록 중 유일하게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 있다. 하지만 그 영화, 1989년 선보인 <어비스>는 이후 캐머런의 영화인생을 결정짓는다. 잠수함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심해로 간 탐험대가 고대부터 지구에 있던 지성체와 접촉하는 이야기는 이후 캐머런 영화의 방향과 주제를 규정한다. 이미 <터미네이터>나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감독이 보여준 인류의 과한 폭력성과 거대기업의 탐욕, 그로 인한 소탐대실의 파국을 향한 경고는 더욱 정돈되고, ‘바다’에 매료되면서 환경문제 고민이 추가된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위)이 &lt;아바타 시리즈&gt;에서 보여준 외계 세계는 경이롭기만 한 게 아니다.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우리 별의 제국주의 역사를 투영해 보여준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제임스 캐머런 감독(위)이 <아바타 시리즈>에서 보여준 외계 세계는 경이롭기만 한 게 아니다.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우리 별의 제국주의 역사를 투영해 보여준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감독은 1997년, <타이타닉>으로 해양영화를 이어간다. 세계 최고 호화여객선이 첫 항해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역사적 해난사고를 다룬 영화는 세계적 성공을 거두면서 감독에게 할리우드에선 불가능한 특권을 보장한다. 원하는 만큼 자원을 투입해 차기작을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신작은 참 오래 걸렸다. 12년 뒤, 감독은 신작 <아바타>를 선보이고 자신이 <타이타닉>으로 갖고 있던 세계 흥행 1위를 갈아치운다.

하지만 <아바타>가 구현해낸 놀라운 비주얼 황홀경에 매료되면서도 사람들은 불편한 구석을 떠올렸다. 세계 최대 영화시장인 미국 관객들은 자국 역사에서 감추고픈 기억을 들키고 만 것이다. 바로 ‘서부개척’이라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추방의 역사다. 영화의 주 무대인 외계 행성 ‘판도라’에서 지구의 인류와 대응하는 존재인 ‘나비족’의 자연 친화적 외양과 문화는 누가 봐도 북미 원주민이었으니 말이다. 인류는 자원이 고갈된 지구에서 절대적 가치를 갖는 ‘언옵테늄’이 유일하게 발견된 판도라를 포기할 수 없다. 이 화합물은 핵융합 발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중동 석유를 둘러싼 국제적 암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속편에서는 이 행성의 해양생물에게서 인간의 노화를 막는 기적의 물질 ‘암리타’까지 발견된다. 숫제 연금술이 꿈꾸던 수준이 실현되는 판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판도라 행성을 (인류 관점에서) ‘개척’하는 임무는 거대 기업집단 ‘아르디에이’(RDA)의 몫이다. 기업국가 수준 권력을 가진 아르디에이는 구시대 ‘동인도회사’의 미래판이다. 대영제국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식민지, 인도를 정복하고 경영했던 민간기업의 22세기 모델이 아르디에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다. 이 기업이 고용한 용병과 원주민 나비족의 투쟁이 <아바타> 시리즈의 핵심 전개다. 아르디에이는 판도라의 자원을 착취해 지구의 에너지 고갈 대안은 물론 부유층의 ‘불로불사’ 욕망까지 채워주며 권력과 부를 강화한다. 아르디에이의 행태는 곧 동인도회사, 회사의 요구를 관철하는 ‘보안작전부’는 회사군대다. 이 회사군대는 단순한 용병을 넘어 정규군급 지휘 체계와 무기를 갖췄다. 감독의 전작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이버다인’, <에이리언> 시리즈의 ‘웨일랜드 유타니’ 군산복합체 설정 끝판왕 격이다.

경계인 ‘아바타’의 기시감과 딜레마

아르디에이는 1편 초반, 한 개체에 5억달러나 드는 ‘아바타’를 선보인다. 판도라는 자원의 보고이지만 지구 인류는 호흡조차 불가능한데다 적대적 생물들로 가득한 외계판 ‘쥬라기 월드’다. 압도적 무력을 가진 인류지만 정작 이 별에선 고도의 전자기술과 인공지능은 오히려 작동에 제약을 당할 정도다. 마치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정글에서 초기 정복자들이 겪던 시련이다. 대안으로 원주민 나비족을 모사한 인공생명체를 기본 소체가 된 인간이 조종해 현지에 적응하는 프로젝트가 ‘아바타’다. 초반 이들은 나비족 사회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 가능성을 모색한다. 하지만 나비족은 자연 친화적이라 지구인이 원하는 거래가 성립될 수 없다. 이제 아르디에이는 폭력으로 원하는 것을 착취하기로 결의한다. 2편에서는 아예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파괴된 지구 대신 판도라를 식민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정글을 불태우고 거대도시를 구축하면서 지구 인류 이주를 준비한다. 내륙에 국한되지 않고 대양으로 진출해 자원 확보에 나선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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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주인공 제이크 설리를 비롯한 소수의 아바타는 나비족에 동화되어 그들 편에 선다. 국지전에서 승리해 아르디에이 인원들을 지구로 송환하지만 15년 뒤 아르디에이는 10배 전력으로 돌아온다. 미국의 서부정복 역사에서 원주민들이 겪었던 상황과 판박이다. 초반 ‘리틀빅혼 전투’처럼 원주민들은 용감히 싸워 미군 선발대를 물리친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패배한 백인들이 물러가길 기대했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더 압도적인 무력과 적반하장의 증오였다. 후대에 “명백한 운명”으로 알려진 팽창주의의 서막이다.

이미 제이크 설리의 부족은 더 강력하게 돌아온 아르디에이에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위해 불가항력적 선택으로 지구인의 무기를 탈취해 사용 중이다. 고유의 율법을 어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나비족은 재생 가능한 나무 외에 금속을 무기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지구인 역시 근거지와 필수자원 확보에 급급해 아직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르디에이는 점점 정보와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즉 판도라의 이후 운명은 과거 서구 제국주의가 ‘점’과 ‘점’, 즉 보급 가능한 근거지를 확보한 뒤 이를 ‘선’으로 잇고 마침내 내륙으로 진공하던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하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파멸이냐, 공존이냐

<아바타> 연대기의 미래는 인류의 역사를 우주적 스케일로 재현할 것이다. 패권과 생존에 집착하는 지구인 대 원주민 나비족은 물론 판도라 생태계 전체가 맞붙는 파멸적 ‘종의 전쟁’이냐, 나비족의 평화와 생태적 삶에 인류가 감화되어 공존의 씨앗을 싹틔울 것이냐가 화두로 떠오를 테다. 나비족은 물론, 더 지적이고 평화를 애호하는, 지구상의 고래를 닮았으면서 훨씬 고차원적 존재인 생물 ‘툴쿤’ 중에도 무력항쟁 노선이 등장하기 시작한 상황이다. 판도라는 이미 식민제국이 철수한 뒤에도 그들이 분탕질해버린 상흔에서 헤어나지 못한 현실 3세계 국가들처럼 ‘실낙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변수라면 구시대 서구 탐험가들처럼 3세계 주민과 사회에 대해 가장 먼저 인식한 이들의 역할이다. 제이크 설리와 그의 가족, 2편에서 새로 등장한 ‘스파이더’처럼 인간이지만 나비족으로 살려는 이들, 심지어 시리즈 전체에서 핵심 악역이지만 인간의 육신을 잃고 나비족 육체에 기억을 전송한 쿼리치 대령 같은 존재들의 향후 행보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선보이는 경이로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테다. 캐나다 출신 백인 감독이 어떻게 ‘역사의 복수’를 자신이 창조한 판타지 세계에서 선보일지는 2024년 예정된 3편 개봉까지 다시 또 기다려야 한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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