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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좋은 이유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쉬는 날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달픈 생활인들에게 여러 날 이어 쉴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달콤한 여름휴가라면 알차게 보내려고 여행 계획이라도 잡겠지만 가족 모임이라도 군데군데 잡히면 어디 가기도 궁색하다. 어렸을 때는 설빔 얻어 입고 세뱃돈 받아서 영화관을 누볐다. 지금은 어머니의 노고를 덜어드리려 차례를 집으로 가져와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도 맞아야 한다. 일하는 틈틈이 짬이 나도 꼼짝없이 집에서 뒹굴뒹굴해야 할 형편이다. 이럴 때, 만화책 몇권을 곁에 두면 심심하지는 않을 터.
설날, 박물관 여행은 어떤가? 만화책으로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을 샅샅이 훑어볼 수 있다. 2005년부터 세계적인 만화가들이 참여하여 한권씩 나오고 있는 ‘루브르 만화 컬렉션’이 열권이 넘는다. 루브르는 프랑스대혁명 이전에 구체제의 심장부였다. 사람들은 혁명을 통해서 좀 더 평등한 세상에서 살기를 꿈꿨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무수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가는 공포가 덮쳤다. 베르나르 이슬레르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루브르의 하늘>에는 혁명 후에 정권을 잡고 공포정치를 편 로베스피에르와 루브르에 작품을 남긴 자크루이 다비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혁명 시기에 새로운 체제를 꿈꿨던 정치인들은 모두 사라졌는데, 그 꿈은 민중을 위한 전당으로 바뀐 루브르에 예술작품으로 남았다.
루브르가 문을 열었던 1793년 8월에 소장 작품은 겨우 600여점이었다. 지금은 40만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3만5천점이 전시 중이다. 일년에 루브르를 찾는 사람의 수는 1천만명에 육박한다. 가끔, 사람이 붐비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내가 작품을 감상하는지, 관객을 감상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코로나19 전에 몇번 갔던 루브르에서도 늘 사람에 떠밀려 그런 느낌이었는데, <루브르 가로지르기>를 그린 다비드 프뤼돔도 같은 경험을 했나 보다. 이 만화에선 작품들이 관람객을 감상한다. ‘모나리자’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했듯이 루브르엔 ‘모나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이 본 듯 만 듯 지나치는 작품들은 군중들 속에서 외롭다. 에리크 리베르주는 <미지의 시간 속으로>를 통해서 외로운 작품들을 위로한다. 작품을 지키는 경비원들에게까지 눈길을 준다. 30명의 재향군인이 경비를 하던 루브르를 지키는 직원의 수는 이제 1100명이다.
만화가들의 상상력은 박물관의 구석구석을 찾아 빛을 발한다. 직접 방문했으면 오히려 보지 못했을 작품이나 공간들을 소개한다. 크리스티앙 뒤리외가 그린 <매혹의 박물관>은 관람객들이 스스로의 눈으로 고른, 그만의 작품들을 찾도록 돕는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품들이 어떤 내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면 책장을 펼쳐볼 만하다. 거기에 상상력을 더해 멋진 이야기를 완성한 사람은 엔키 빌랄. <루브르의 유령>은 작품마다 간직하고 있는 시대의 폭력과 억압, 그리고 편견을 작품에 깃든 유령을 깨워 예술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그림에 달아 놓은 말들은 모두 멋진데, 그중에 하나만 베껴 본다.
“루브르에 가면 마치 유령을 호흡하는 것 같다. 화랑의 모든 구석마다, 작품의 구석마다, 작품의 부분들에서, 눈길이 닿는 모든 것, 모든 곳에서, 마루에서, 벽의 주름진 곳에서, 천장에 들러붙어 있는 공기에서…, 박물관을 방문하는 시간 동안 폐에 들어찬 조각들은, 문밖을 나서면 리볼리 거리 혹은 센강 부두 쪽으로 다시 뱉어질 것이다. 뱉어낸 조각들은 그들 시대에 단단히 연결된 부동의 증거로서, 운명이 원하는 대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산책하면서,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할까? ‘저 작품은 도대체 왜 저기에 걸렸지?’ 에티엔 다보도는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 <사팔뜨기 개>가 루브르에 걸릴 만한 그림인지 알고 싶어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박물관은 어떤 작품을 훌륭하다고 평가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품을 구입하고 전시하는 걸까? 정말 무슨 음모라도 있을까? 일본에서 건너온 그림, ‘월하’는 도대체 루브르에 어떻게 걸려 있는 것일까? 아라키 히로히코는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에서 세상에서 가장 검고 사악한 그림을 찾아 루브르에 들어가 활극을 벌이는 주인공을 불러냈다.
루브르의 역사가 수백년이 되다 보니,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어찌 될까도 궁금하다. 마르크앙투안 마티외가 그린 <어느 박물관의 지하>는 미래에, 박물관의 작품들을 평가하는 감정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애너그램을 사용해서 말들이 부서지고 의미가 흩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지지만 조금씩 다르게, 그렇게 박물관은 이어진다.
물론, 니콜라 드 크레시의 <빙하시대>처럼 빙하시대가 지나고 얼음 밑에서 찾은 루브르를 상상해 볼 수도 있고 스테판 르발루아의 <레오나르도2빈치>처럼 1만5018년의 상황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루브르의 주인공이 ‘모나리자’라면 그것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주인공이다. 그가 숨을 거두던 1519년과 그의 지문에서 얻어낸 디엔에이 가닥으로 복제한 레오나르도2가 사는 1만5018년의 이야기를 나란히 그려 흥미진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뜻 모를 메모, “나는 아버지보다 먼저 태어났다. 지구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인간들은 죽인 다음, 엄마 뱃속으로 돌아갔다”에서 착안한 상상력으로 지구를 구한다.
박물관이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체육관으로 가면 된다. 30년간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농구만화 <슬램덩크>. 40대의 감성을 자극한 <슬램덩크>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책도 덩달아 다시 베스트셀러다.
책을 낸 출판사의 사장님 이야기로는 이번달에 60만권을 주문받았는데, 40만권밖에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아빠가 손수 표를 사서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 가는 영화라고 들었는데 그 아빠가 아이들에게 책도 선물한다고 하니, 설날에 어울리는 가족만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만화지만,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이전에 번역되어 사람과 학교 이름들이 번안되어 출간되었다. 강백호를 사쿠라기 하나미치, 서태웅을 루카와 카에데로 기억했다면 이렇게 국민 만화 역할을 할 수가 있었을까? 한국판의 편집자가 자신의 졸업 앨범 속 이름들을 조합해서 만들었다는 이 이름들은 우리 동창들의 이름이다. 이번 설날에는 부모와 아이가 같은 만화를 보면서 함께 낄낄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만화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