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장용준(노엘)이 지난 2021년 9월 무면허 운전과 경찰관 폭행 등 혐의를 조사받기 위해 서울 서초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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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노엘이다. 지난 13일 그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발표한 트랙 ‘강강강?’은 자신을 디스(비판)한 래퍼 플리키 뱅에 대한 맞디스로 가득 차 있다. 래퍼들끼리 디스전을 벌이는 거야 흔한 일이니 여기까지는 별일이 아니지만, 그가 디스를 위해 꺼내 든 표현은 대번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내 발로 걸어나온 회사 어따 대고 이간질? 전두환 시대였다면 네가 나 건드리면 가지 바로 지하실. 너네가 말한 이게 드릴 맞지? 얘네 따라해봤는데 왜 지랄임?”
맥락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노엘은 앞서 드릴을 주 장르로 삼고 있는 래퍼 블라세에게 자신의 음주운전 전력을 디스당하자,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니(너) 같은 한국에서 된장찌개 처먹고 산 새끼들이 드릴 하는 게 제일 역겨워”라는 문구를 올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힙합의 세부 장르 ‘드릴’은 미국 시카고에서 태동한 장르인데, 그 특징 중 하나는 살인 범죄에 관한 가사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거친 가사보다는 사운드적 특성 중심으로 향유되기 시작했고, 이 상황은 국내 힙합 신에서도 비슷했다. 노엘의 ‘된장찌개’ 운운은 그러니까 폭력적인 환경과는 거리가 먼 한국에서 산 래퍼들이 드릴 장르를 구사하는 게 꼴 보기 싫다는 이야기다.
그러자 블라세와 〈쇼 미 더 머니 11〉에서 같은 팀이었고 본인도 드릴을 주 장르로 삼고 있는 래퍼 플리키 뱅이 참전했다. 플리키 뱅은 “된장찌개 먹고 자랐지만 음주운전 해본 적은 없어”라는 가사의 랩으로 다시 노엘을 디스한 뒤, 자신의 사운드클라우드에 아예 한 곡 통째로 노엘을 디스하는 ‘스모크 노엘’이라는 트랙을 발표하는 것으로 싸움을 확전시켰다.
“걘 진짜 경찰한테 잡혀, 역시 리얼 래퍼 정신이 좀 아퍼. 내가 한국 힙합을 바꾸고 있을 때 걘 운전자나 바꿔쳐.” 미성년자 성매수 시도를 포함한 노엘의 각종 논란을 언급한 뒤 플리키 뱅은 말한다. “아버지 발목 그만 좀 잡아라. 넌 받아야 돼 불효상 노벨.”
‘스모크 노엘’이 공개되고 3시간 뒤, 노엘은 ‘강강강?’이라는 트랙을 발표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그 문제의 표현이 나왔다. 바로 뒤에 따라오는 가사가 “너네가 말한 이게 드릴 맞지? 얘네 따라해봤는데 왜 지랄임?”이란 점을 감안하면, 아마 허장성세로 범죄 행위를 묘사하는 가사를 쓰는 일부 래퍼들을 조롱하기 위해 들고나온 가사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사를 접한 사람들은 경악했다. 제5공화국의 폭압정치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그것도 집권 여당의 대통령 최측근 아들이라는 사람이, 고작 랩게임 한번 이겨보겠다고 ‘전두환 시대’의 ‘지하실’을 논한 것이다. 사람들은 노엘의 인성부터 역사의식 부재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노엘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다시 폐쇄했다.
사람들은 노엘의 이번 가사가 전두환 정권 당시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한국 현대 정치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가볍게 여겼다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난 그런 비판을 하는 것이 과연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기에 절망한다. 애초에 노엘이 그런 쪽으로 깊이 있는 성찰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까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깨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가 한국 정치에 대해 그다지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욕을 먹자 돌연 “재난지원금 받으면 좋아서 공중제비 도는 새끼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추정해보건대 동료 시민들에 대한 존중도 별로 없는 듯하니 말이다.
내가 놀란 건 조금 다른 지점이다. 노엘의 ‘강강강?’을 들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문제가 된 가사가 논쟁적일지언정 래퍼로서의 재능은 확연히 입증했다며 ‘악마의 재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글쎄, 과연 그런가? 생각해보자. 플리키 뱅은 ‘스모크 노엘’에서 노엘의 비행이 아버지 장제원 의원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디스했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이제 성인이 된 자신의 행보와 아버지의 행보는 별개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자신이 그 많은 비행을 저질렀어도 여전히 아버지는 잘나가고 있다고 맞받아칠 수도 있었다. 노엘이 지금껏 래퍼로서 받아온 존중은 그의 랩 스킬 때문이었지 아버지의 권력과는 무관한 것이었으니 그 점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노엘은, 굳이 “전두환 시대였다면 네가 나 건드리면 가지, 바로 지하실”이라는 가사를 썼다. 그게 아버지의 권력에 빌붙는 가사란 점, 그 권력의 부당한 이용을 암시하는 가사라는 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가사 때문에 ‘윤핵관’ 장제원 의원의 발목을 잡았다는 점에서 노엘은 정확히 플리키 뱅의 디스를 실천으로 입증해 준 셈이 됐다. ‘네가 나 욕한 거, 그거 맞음’이라고 자백한 것이다.
세상에, 상대의 디스가 적확했다는 사실을 이렇게 성실하게 나서서 증명해주는 래퍼가 또 어디 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어떤 맥락에서 디스를 당한 건지 이해를 못 한 거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랩게임에선 스킬도 플로도 스왜그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일단은 말이 통한다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랩만큼 언어를 정교하게 조탁하는 일에 천착하는 예술도 드문데, 명색이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말의 맥락을 그렇게나 못 읽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저 플로와 스킬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상대가 한 비판도 못 알아듣는 사람을 ‘재능 있는 래퍼’라고 불러주기 시작한다면, 랩은 그저 다소 까다로운 잰말놀이에 불과해진다. 힙합이 걸어온 길은 정확히 그 반대가 아닌가? 랩이 단순히 말을 빨리하는 기예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걸어온 역사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미안한 얘기지만, ‘강강강?’을 ‘실력만큼은 입증한 랩’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턱없는 사치인 것이다. 그건, 역사의식과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을 상실한 한 전과자의 잰말놀이 욕설에 불과했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