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이수만 전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 각사 제공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 인수를 둘러싸고 벌였던 ‘쩐의 전쟁’이 일단락되면서 인수전에서 맞붙은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이수만 전 에스엠 총괄 프로듀서의 손익계산서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은 이번 인수전 의사결정 최고 책임자였을 뿐만 아니라 창업자란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센터장은 법원이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며 하이브가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초강수 베팅을 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7일 카카오는 주당 15만원에 에스엠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하이브가 지난달 공개매수로 제시한 주당 12만원보다 25% 높은 가격이었다.
카카오는 김범수 센터장의 이런 승부수를 통해 플랫폼에 실을 에스엠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대거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웹툰, 웹소설, 드라마, 영화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팬덤이 강한 케이(K)팝 영역은 부족한 편이었다. 카카오의 플랫폼과 정보기술(IT)에 에스엠의 지식재산권(IP)을 더하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를 지렛대 삼아 방송 플랫폼 기업 씨제이이엔엠(CJ ENM)과 인터넷 플랫폼 기업 네이버 등 경쟁사에 맞서 우위에 올라설 수도 있다.
또 다른 효과도 있다. 카카오는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내수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인수를 통해 이런 꼬리표를 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카카오는 국외 매출 비율이 20%에 그치지만, 에스엠은 62%나 된다. 즉 이번 인수로, 김범수 센터장이 계속 외쳐왔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비욘드 코리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기업공개(IPO)도 청신호를 켤 수 있다. 이 회사는 2019년부터 상장을 준비했으나, 쪼개기 상장과 문어발 확장 논란, 불확실한 대외 여건 등으로 상장을 미뤄왔다.
하지만 이번 공개매수에 투입하는 자금이 무려 1조2500억원에 이른다는 점은 부담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등에서 1조2000억원을 유치해 실탄은 마련했지만,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할 땐 ‘승자의 저주’에 시달리게 된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이번 인수전에서 경영권 대신 실리를 택했다.
하이브는 카카오 경영권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주당 16만원으로 2차 공개매수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 인수 과정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카카오가 협상 과정에서 ‘하이브가 주당 18만원을 부르든, 20만원을 부르든, 우린 24만원까지 부를 수 있다’며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에스엠 적정 기업가치보다 과도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려 인수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하이브는 앞으로 에스엠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차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는 지난달 10일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에게 지분 14.8%를 주당 12만원, 4228억원에 사들이는 계약을 맺었다. 이 지분을 카카오에 곧바로 매각하거나, 2대 주주로 남은 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상장 과정에서 정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만약 주당 15만원에 매각하면 1058억원가량의 차익을 얻는다.
하지만 방시혁 의장이 에스엠을 인수해 세계적인 초대형 기획사로 거듭난다는 전략은 무기한 연기됐다. 지난해 하이브 영업이익의 67%가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빅히트뮤직에서 나왔다. 지나치게 높은 방탄소년단 의존도 역시 숙제로 남았다.
이번 ‘쩐의 전쟁’의 진원이었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결국 자신의 지분을 싼 가격에 매각하는 결과만 낳게 됐다.
그는 에스엠 경영진이 이수만 지우기를 뼈대로 한 ‘에스엠 3.0’ 발표 이후 하이브에 지분을 팔아넘겼다. 지분 매각으로 받은 돈은 5000억원가량이다. 이는 이 전 총괄 프로듀서가 애초 원했던 금액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 전 총괄 프로듀서가 에스엠 지분 매각을 놓고 카카오, 씨제이 등과 협상했을 당시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1조원가량의 매각설이 흘러나왔다.
이 전 총괄 프로듀서는 이제 에스엠 지분 3.65%를 가진 개인주주로 남게 돼, 케이팝 1세대 기획자로서의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