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홍콩 2023의 브이아이피 개막행사가 열린 지난 21일 한국작가 이배의 단독 작품 부스를 관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홍콩과 서울 가운데 어디가 더 힘이 셀까?
요즘 국내 미술시장의 컬렉터나 화랑주, 기획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이슈거리로 떠오른 물음이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도시의 미술 경쟁력을 비교하며 ‘뒷담화’를 벌이는 이들이 늘어났다. 아시아 최대규모의 국제미술품 장터(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 2023’이 지난 21~25일 홍콩에서 치러진 뒤 생긴 현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짚자면, 지난 10년간 아시아 미술시장을 대표하는 허브(핵심 거점)로 군림해온 홍콩을 서울이 따라잡아 새로운 허브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계속 홍콩이 기존의 미술시장 지존의 지위를 유지할지에 대한 궁금증이라 할 수 있다.
아트바젤 홍콩, 판매 성과 불구
관람객 등 중화권 행사로 전락
서울, 풍부한 스튜디오·갤러리…
홍콩 위상 대체·역할분담 기대
7월 출범 ‘도쿄 겐다이’도 주목
실제로 지난 21~23일 아트바젤 홍콩의 판매전람회 현장을 돌아보고 취재한 내용을 갈무리해보면 홍콩의 문화지정학적 입지는 과거보다 현저히 위축됐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2019년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중국 중앙정부의 입김이 노골화하고 홍콩 사회와 문화계의 정치적 다원성이 압박을 받는 정황을 숨길 수 없었다. 아트바젤 홍콩의 경우 177개 화랑들이 참가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최대 250여개에 달했던 전성기 규모에 비하며 크게 떨어지고 서구의 명문 화랑과 유력 컬렉터, 화상들은 대거 불참했다. 예술가들에게 필수적인 정치적 자유가 침해를 받는 홍콩에 서구의 미술 관계자들이 대놓고 등을 돌리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공교롭게도 행사 기간 중 시진핑을 풍자한 곰돌이 푸가 등장한 서구영화 상영이 불허되고 홍콩 민주화 활동가의 이름을 언급한 미국 미디어작가의 작품은 백화점 전광판에서 사라졌다. 한국에서 아트페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은 현지 미술관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도 다른 기관에서 파견된 듯한 낯선 인상의 요원이 대화 자리에 들어와 내용을 듣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지난 20~22일 홍콩 도심 알렉산드라 하우스에 있는 크리스티 경매사 전시장에서 선보인 미국 여성 거장 조지아 오키프의 모노톤 꽃그림. 오는 5월 미국 뉴욕서 열리는 크리스티의 폴 앨런 컬렉션 경매 출품을 앞두고 전시됐다.
물론 아트바젤 홍콩 2023행사의 판매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중국 대륙과 중화권, 그리고 한국의 부유층 컬렉터들이 대거 몰려들어 서구 고객의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서구와 아시아권 메이저 화랑들도 안전하게 이들이 좋아할 만한 서구와 중국, 일본 중견 거장들의 작품들을 대거 가져왔고, 하강 중인 국제미술품 경기의 영향을 별로 타지 않고 출품한 작품 대부분을 팔아치우는 등 선전했다는 평가가 주로 나왔다. 하지만, 관람객과 고객의 편향성, 명품 백화점이 된 장터 상황은 과연 홍콩이 아시아 미술시장 유일 지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켰다. 이는 다른 말로 지난해 세계적인 서구 아트페어 프리즈를 유치한 서울이 그 자리를 대체하거나 상당 부분 역할을 분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홍콩은 오랜 금융허브이고 무관세를 바탕으로 미술품 거래에도 다른 도시가 넘볼 수 없는 기반을 갖췄다. 홍콩에 대한 미술투자는 더욱 강력해졌다는 아트바젤 쪽의 공언 또한 빈말이 아니었다.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같은 국제경매사들은 아트바젤홍콩이 열린 아트위크 기간 세계 굴지의 컬렉션 경매 출품작들로 특별전을 잇따라 열었다. 건축거장 헤르조그와 드 뫼론이 설계한 엠플러스 미술관도 20일 전세계 미술계 명사 3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한 재개관 리셉션을 열었다. 필립스 경매사는 엠플러스 옆에 신관 전시장을 차렸고, 현대미술 명작과 패션 명품 숍, 다국적 갤러리 등이 융합된 카오룽 지구의 케이11뮤제아도 관객의 발길을 이끌었다. 서울의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디지털 경제기반이 탄탄하고 시내 곳곳에 풍부한 작가 스튜디오와 다기한 대안공간, 갤러리 등을 겸비해 창작 생산의 기반 측면에서는 홍콩을 압도하지만, 시장에 연계된 경매사, 상업적 전시장 인프라는 홍콩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홍콩섬과 마주보는 카오룽 문화지구의 엠 플러스 미술관 전경. 엠플러스미술관 제공
오는 7월 ‘도쿄 겐다이’란 제목으로 대규모 아트페어를 출범시키는 전통의 미술도시 일본 도쿄의 가능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트바젤 쪽은 이미 일본 쪽 페어와 연대 의사를 표명해왔다. 지난해 프랑스 전통의 아트페어 피악을 축출한 자리에 열려 대박을 친 아트플러스 파리의 성과를 의식하는 낌새가 역력하다.
향후 글로벌 경쟁은 도시 간 경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지도 꽤 됐다. 이번 아트바젤 홍콩 장터는 동아시아 대도시들 간에 미술허브를 둘러싼 문화력 경쟁이 본격화될 것임을 보여주는 전조로서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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