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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독일 스타벅스서 들리는 ‘다이너마이트’…70살 엄마도 춤 춰요”

등록 2023-06-24 05:00수정 2023-06-24 23:25

[한겨레S] 커버스토리 _ 내가 BTS 팬이 된 이유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 기념 축제(BTS 10th 애니버서리 페스타)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렸다. 세계 곳곳에서 온 ‘아미’(방탄소년단 팬)들이 공연을 관람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 기념 축제(BTS 10th 애니버서리 페스타)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렸다. 세계 곳곳에서 온 ‘아미’(방탄소년단 팬)들이 공연을 관람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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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년, 20주년엔 어떤 일을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준 모든 아미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같이 잘 살아 봅시다. 이놈의 세상 속에서. 우리 존재 파이팅!”

그룹 방탄소년단(BTS) 리더 알엠은 데뷔 10돌을 맞이한 지난 17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특별 프로그램 ‘오후 5시, 김남준입니다’를 진행하며 팬덤 아미(Army)에게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방탄소년단은 2013년 6월13일 음악방송 <엠카운트다운>(엠넷)에서 데뷔곡 ‘노 모어 드림’을 부르며 세상에 나왔다. 이들이 써내려간 10년은 ‘신기록의 여정’이었다.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메인 싱글 순위 ‘핫100’에서 케이(K)팝 최초로 1위를 기록했고, 이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5년 연속 수상, ‘빌보드 뮤직 어워드’ 6년 연속 수상이라는 이정표도 남겼다. 방탄소년단은 서구 시장에서 케이팝은 통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고 세계 최정상 팝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알엠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 아미는 중소기획사 출신인 방탄소년단의 여정을 함께했다. 방탄소년단이 ‘10대가 살아가면서 겪는 힘든 일과 편견·억압을 막아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기에, 아미 역시 ‘이들을 (군대처럼) 지켜주겠다’는 의미를 앞세운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데뷔 10돌 기념 축제’에 참석한 외국인 아미들이 방탄소년단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데뷔 10돌 기념 축제’에 참석한 외국인 아미들이 방탄소년단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아미 팬클럽은 2014년 3월 꾸려졌다. 다음카페에 공식 팬클럽(회원 117만9천명)이 있지만, 하이브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 등록된 팬(2268만명), 공식 유튜브 ‘방탄티브이(TV)’ 구독자(7520만명)도 모두 아미로 포함된다.

한국은 물론 독일,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있는 아미들과 함께 방탄소년단과 동행했던 그간의 여정을 되돌아봤다. 실명을 원치 않는 아미는 내부 활동명이나 가명으로 표기했다. 국외는 현지시각, 우리나라는 국내시각이다.

‘방탄소년단 데뷔 10돌 기념 축제’에서 아미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방탄소년단 데뷔 10돌 기념 축제’에서 아미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베를린서 서울로, 서울서 뉴욕으로

지난 4일 새벽 6시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탄야 로디오(40) 교수는 공항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탄야는 이날 오후 3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기분 좋은 여정이 될 거예요.” 그의 서울 일정은 방탄소년단 데뷔 10돌을 맞아 다채롭게 열리는 기념행사 관람 위주로 짜였다.

8일 저녁 6시 서울 강남, 탄야는 한국 친구들과 만나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먹었다. “물냉면은 슴슴(plain)했어요.” 불닭볶음면을 좋아할 정도로 한국의 매운맛을 즐기지만, 평양냉면은 뭔가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방탄소년단과 함께 한국 음식도 알게 됐다. 식사 뒤엔 양재천 메타세쿼이아 길가에 있는 카페에서 저녁을 함께한 이들과 수다를 떨었다. 한 친구가 ‘왜 아미가 됐는지’ 물었다. “그건 운명과도 같았죠. 사랑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였죠.” 탄야의 대답은 평양냉면처럼 슴슴했다.

탄야 로디오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양재천에 있는 한 카페에서 자신의 휴대폰 배경 화면에 있는 방탄소년단 사진과 멤버 지민 얼굴이 담긴 버스카드를 보여주고 있다. 버스카드는 독일에서 아들이 온라인으로 구매해 엄마에게 사준 거라고 했다. 정혁준 기자
탄야 로디오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양재천에 있는 한 카페에서 자신의 휴대폰 배경 화면에 있는 방탄소년단 사진과 멤버 지민 얼굴이 담긴 버스카드를 보여주고 있다. 버스카드는 독일에서 아들이 온라인으로 구매해 엄마에게 사준 거라고 했다. 정혁준 기자

그는 2016년 부산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공연을 처음 봤다. “그땐 일곱 멤버 얼굴이 모두 같아 보였어요. 멤버 이름도 몰랐을 때였죠. 이제는 멤버 그림자만 보고도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어요.”

‘방탄소년단을 왜 좋아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방탄소년단은 팬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상호작용하기 때문이죠. 음악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보여주잖아요. 그들은 2021년 9월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전해줬죠. 여러 면에서 재능이 넘치고 귀엽기도 하죠.”

탄야는 말을 이었다. “노래가 한국어 가사여서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쉽진 않아요. 하지만 그들 노래는 목사님 설교나 철학자의 논리적 추론과는 다르죠.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제 역할을 하고 그 역할이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멋있거나 예쁘지 않아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주죠.”

탄야는 방탄소년단을 알게 된 뒤 파리·런던·베를린에서도 콘서트를 찾았다. “방탄소년단 콘서트는 축제예요. 국적을 떠나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 노래를 함께 불러요. 나이도 사라지죠. 부산 방탄소년단 콘서트 때 독일인 친구와 함께 갔는데 그 친구가 ‘왜 네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됐어. 그들 에너지가 미쳤어’라고 말하더군요. 그 친구도 아미가 됐죠.”

독일에서도 방탄소년단이 인기일까? “지금은 스타벅스나 슈퍼마켓에 가더라도 방탄소년단 노래를 들을 수 있어요. 70살인 제 엄마는 처음엔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정도였죠. 이제는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를 듣고 있어요. 엄마는 여전히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멤버를 구분할 수도 없지만, 그들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곤 한답니다.”

아시아 사람인 방탄소년단에 문화적 차이를 느낄까? 탄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탄소년단은 사람을 연결합니다. 영어를 잘 몰라도, 한국어를 잘 몰라도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선 많은 이가 함께 노래해요. 아미가 되면 한글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노래 가사를 알고 그들의 영상 내용을 더 정확히 이해하길 바라기 때문이죠. 한국 문화도 더 알아가고 싶어요. 문화와 언어에 열려 있는 사람이 바로 아미예요.”

올해 4월26일 저녁 6시. 회사원 최키아(활동명·31)씨는 집을 나섰다. 이날 저녁 7시50분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도쿄를 거쳐 뉴욕에 도착해 그곳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였다. 그의 방미 목적은 4월27일 벨몬트 파크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의 콘서트 관람이었다. 한달 전 키아씨는 이 콘서트를 예매하려 했지만, 입장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매진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틀 뒤 예매 사이트를 검색하다, 단 한 자리가 남은 걸 보고 재빨리 구매했다. “입장권 하나 가격이 80만원이었죠. 예상보다 비싸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표를 구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예매한 순간 고민은 잠시, 무조건 가야 했죠.”

급히 비행기 표도 구해야 했다. 회사 업무를 고려해 전체 일정은 비행시간까지 포함해 2박3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뉴욕 도착 뒤 저녁에 공연을 보고 이튿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는 짧디짧은 여정이었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감동은 강렬했다. 마스크를 벗어 던진 아미들의 떼창과 함성이 공연장에서 이어졌다.

키아씨는 2017년 대학원생 시절 방탄소년단을 알게 됐다. “교수님들이 서양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탄소년단을 자주 언급하면서 궁금해졌죠.” 키아씨는 유튜브와 라이브 방송에 올라온 방탄소년단의 영상을 하나둘씩 보면서 이들의 유쾌함에 스트레스를 날리고 따뜻한 위로의 말에 감동했다. 그렇게 그는 ‘덕질’(팬 활동)에 확신을 하게 됐고, 2020년 1월 위버스에 가입했다.

“중고등학교 때 또래 문화에 휩쓸려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 같은 아이돌을 좋아했죠. 당시에는 ‘우리는 아이돌이고, 너희는 팬이야. 너희는 우리를 좋아해줘야 해’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방탄소년단은 달랐죠. 그들은 어디서나 아미 이름을 불러줬고, 삶 그대로를 팬에게 보여주었어요. <달려라 방탄> 같은 자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들의 유머 코드에 이유 모를 친숙함을 느끼기도 했죠.”

방탄소년단에게 ‘입덕’(어떤 분야나 사람을 열성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한다는 뜻)한 노래는 무엇일까? “‘웨일리언 52’를 들으면서였죠. 대학원생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세상에 두려움을 느낄 때였죠.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자기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 노래는 저를 표현하는 것 같아 노래를 듣고 눈물도 흘렸죠. 그 이후로 ‘이 친구들 그냥 아이돌이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돌’은 10대들이 주로 좋아한다는 생각에 대해선 어떨까? “방탄소년단을 아이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노르웨이 출신 인디 듀오), 마룬5(미국 팝 록 밴드), 콜드플레이(영국 록밴드)를 좋아하는데, 그들처럼 글로벌 팝그룹으로 생각해요. 세계적인 아티스트 그룹처럼 좋은 노래를 부르고 멋진 메시지를 보여주니 좋아할 수밖에요.”

나이·국적 불문 BTS로 대동단결

김푸름씨가 2022년 4월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현장에서 슈가 사진과 아미밤(응원봉)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푸름씨 제공
김푸름씨가 2022년 4월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현장에서 슈가 사진과 아미밤(응원봉)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푸름씨 제공

회사원 김푸름(32)씨는 지난해 4월 생면부지의 40~50대 ‘언니들’ 3명과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떠났다. 푸름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고 만나게 된 아미들이었다. 글 내용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비티에스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라스베이거스’ 콘서트를 같이 볼 사람을 찾아요”였다. “제 트위터 팔로어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함께 가자’는 쪽지를 엄청 많이 받았어요.”

아미라는 정체성이 같았기에 이들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언니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어요. 직업이 있고, 아이가 있고,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언니들을 이해해주는 남편도 있었죠.”

라스베이거스 콘서트는 지난해 4월8·9·15·16일 등 나흘에 걸쳐 열렸다. 푸름씨는 ‘올콘’(콘서트를 모두 보는 것)하고 싶었지만, 입장권 두개만 확보할 수 있어 둘째 날과 ‘막공’(마지막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을 처음 방문한 푸름씨가 언니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발을 내딛자, 도시가 온통 보랏빛이었다. 시내 곳곳의 건물과 주요 상징물에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보랏빛 조명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푸름씨는 방탄소년단 노래에 맞춰 함성을 내지르고 싶어 라스베이거스로 갔다. 이보다 한달 앞선 지난해 3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주경기장에서도 콘서트가 열렸지만, 코로나19 탓에 함성을 자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했지만 떼창은 가능했다. “마음껏 떼창할 수 있어 너무 좋았죠. 그 쾌감은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케이-아미로서 자부심을 느꼈죠.”

푸름씨가 방탄소년단을 알게 된 때는 2019년이었다. “그때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심리적으로 공허할 때였죠. 회사 동료가 아미였는데, 그 동료를 통해 방탄소년단을 알게 됐어요. 노래를 수없이 듣고, 퍼포먼스를 봤어요. 이별 뒤 공허함과 외로움을 방탄소년단 일곱 남자가 채워준 거였죠.(웃음)”

2021년 11월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LA’ 공연장 앞에서 일본 오사카에서 온 오히라 레오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2021년 11월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LA’ 공연장 앞에서 일본 오사카에서 온 오히라 레오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아미들은 공통적으로 방탄소년단이 주는 위로와 공감, 선한 영향력에 끌렸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오사카에 사는 30대 회사원 오히라 레오나는 전자우편을 통한 인터뷰에서 방탄소년단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 사태가 계기였죠. 외출도 못 하고 기운이 없을 때 긍정적인 생각과 힘을 준 사람이 방탄소년단이었습니다. 그들 노래 가운데 ‘러브 마이셀프’가 참 좋아요. 전 무리할 정도로 남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편인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저 자신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됐죠.”

심혜윤양이 모은 방탄소년단 앨범과 굿즈(기획상품). 심혜윤양 제공
심혜윤양이 모은 방탄소년단 앨범과 굿즈(기획상품). 심혜윤양 제공

중학교 3학년 심혜윤양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부모님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셨어요. 그래서 일본에서 태어난 뒤 13살까지 일본에서 살았죠. 2019년 한국으로 왔는데, 그때 엄마와 이모가 방탄소년단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거예요. 한국에 정착할 때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방탄소년단 노래와 가사를 들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사는 50대 재미동포 조앤 리 역시 어렵고 힘들 때 방탄소년단을 알게 됐다. 그는 메신저를 통한 인터뷰에서 방탄소년단을 알게 된 계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6년 전 큰돈을 들여 사업을 했는데 200만달러(약 26억원)가량 손실을 봤죠. 그때 한 친구가 방탄소년단의 ‘둘! 셋!’, ‘에필로그: 영 포에버’라는 노래를 보내줬어요. ‘50대에게 웬 아이돌 노래냐’며 듣지도 않았어요.”

며칠 뒤 그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였다. 휴대전화에 들어 있던 두 노래가 운전 중 우연히 재생됐다. “괜찮아. 자! 하나 둘 셋 하면 잊어”라는 가사가 가슴을 울렸다. “사업 실패로 세상 모든 이가 나에게 등을 돌려 ‘이젠 다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들은 거였죠. 마치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 같아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울다가 통곡하는 바람에 경찰차가 서기도 했어요.”

한국에 유학 온 20대 미국인 대학생 제시카 다나는 “미국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엔 마약·섹스·총 같은 자극적인 가사가 많아 거부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같은 메시지를 함께 내고, 시적인 노래를 많이 불러 좋아해요”라고 했다.

“입대 결정 존중…정치적 이용엔 분노”

2019년 6월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머스터(방탄소년단 팬미팅 공연) 매직샵’에서 김아미(가명)씨가 찍은 사진. 김아미씨 제공
2019년 6월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머스터(방탄소년단 팬미팅 공연) 매직샵’에서 김아미(가명)씨가 찍은 사진. 김아미씨 제공

아미들은 방탄소년단과 기획사(빅히트뮤직과 하이브)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40대 회사원 김아미(가명)씨 얘기다. “애증 관계죠. 과거엔 빅히트가 중소기획사였지만 이젠 대기업으로 커지다 보니 모든 걸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하고, 이를 팬들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죠. 아이돌과 기획사는 보통 7년마다 계약을 맺잖아요. 방탄소년단과 빅히트는 처음엔 연습생 관계로 맺어졌고, 2018년엔 글로벌 스타 관계로 재계약했죠. 세번째 계약이 2024년이에요. 그땐 기획사가 또 다른 비전을 방탄소년단에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의지를 보일지 궁금해요.”

혜윤양은 청소년 시선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위버스샵에서 판매하는 굿즈가 중·고등학생이 사기엔 너무 비싼 편이에요. 굿즈 가격이 계속 야금야금 올라 팬을 돈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게다가 기획사에선 방탄소년단을 앞세운 웹소설과 웹툰도 만들고 있는데요. 그걸 왜 만드는지 팬에게 제대로 설명을 안 해줘요. 기획사가 팬들과 공감대를 전혀 쌓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방탄소년단 입대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큰 논쟁거리가 됐다. 아미들 생각은 어떨까?

“독일은 2011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했습니다. 한국은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한국 위상을 높였다면, 군대 대신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저는 방탄소년단을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 한국 정치인들에게 가장 실망했습니다. 다만 방탄소년단은 군대에 가고 있고, 저는 그들의 결정을 지지합니다.”(탄야)

“진을 시작으로 제이홉도 입대했으니, 다른 멤버도 잘 복무하고 제대해 완전체로 아미 앞에서 공연해주길 기대해요. 하지만 정치권에서 군 문제를 놓고 방탄소년단을 이용하려 한 것에 대해선 여전히 불편하고 화가 나죠.”(키아)

“군대 문제는 ‘양날의 칼’ 같아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병역 의무를 다하는 건 잘한 결정이라고 봐요. 다만 스포츠와 순수예술 분야에 견줘 대중음악 분야가 차별받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아미)

17일 밤 여의도에선 알엠의 특별무대가 끝난 뒤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이날 탄야와 키아씨는 여의도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두 사람은 이날 행사에 온 40만명과 함께 불꽃놀이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12일 밤 보랏빛으로 물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외국인 아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밤 보랏빛으로 물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외국인 아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보라해!(뷔가 만든 신조어.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가운데 맨 마지막의 보라색까지 아낀다는 의미로 ‘사랑해’라는 뜻) 언제나처럼 이번 여정에서도 방탄소년단을 보며 행복하고 희망찬 기분을 느꼈어요.”(탄야)

“아포방포(정국이 만든 슬로건. ‘아미 포에버, 방탄소년단 포에버’의 줄임말)! 방탄소년단이 20주년, 디너쇼, 환갑잔치까지 쭉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죠. 조용필·나훈아 같은 대가수처럼, 오랜 기간 아미와 함께하길!”(키아)

푸름씨는 이날 행사에는 가지 못했다. 회사 일이 있어서다. 대신 일하면서 틈틈이 유튜브를 통해 현장을 봤다. “방탄소년단의 ‘디엔에이’ 가사(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처럼 그들과 아미는 운명인 것 같아요. 1년 365일 24시간, 1분1초가 온통 방탄소년단! 보라해!”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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