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투자·배급사인 씨제이이앤엠(CJ ENM)의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주목받은 이른바 ‘쌍천만’ 김용화 감독의 영화 ‘더 문’이 5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작품 완성도도 한계가 컸지만 코로나 이후 생겨난 극장가 흥행 양극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콘텐츠 제왕’으로 불린 씨제이이엔엠의 위상이 날로 기울어가는 모양새다.
‘신과 함께’ 1∙2 모두 1000만 관객을 모은 ‘쌍천만’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이 관객수 50만명대로 극장 상영을 마무리하며 개봉 23일 만인 오는 25일 주문형비디오(VOD) 시장에서 공개된다. 제작비 280억원 이상 들어간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600만명이다. 씨제이이앤엠은 지난해 여름에도 ‘외계+인’이 154만 관객으로 큰 실패를 맛본 데 이어 올해 설에 개봉한 ‘유령’도 66만명 동원에 그치며 잇단 바닥세를 보여오던 터다.
21일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화권입장권통합전산망을 보면 20일까지 ‘더 문’의 누적 관객 수는 50만6559명. 개봉 3주 만에 주요 개봉작은 물론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인 ‘옥토넛 어보브 앤 비욘드’ ‘러닝맨: 리벤져스’에도 밀리며 일일 관객 수 10위권 아래로 떨어졌다. ‘더 문’은 같은 날 개봉한 ‘비공식작전’은 물론이고 ‘밀수’, 6월 개봉한 ‘엘리멘탈’에도 밀렸다.
무엇보다 관객들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 김용화 감독이 세운 덱스터스튜디오의 특수효과(VFX)가 총망라된 비주얼은 호평받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하고 진부한 스토리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도 김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국 에스에프(SF)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거리감이 상당하다고 느껴진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더 존중하는 문화가 됐을 때 더 멋진 우주 영화를 갖고 돌아오도록 하겠다”며 마치 흥행 실패가 관객들의 잘못된 태도 때문인 것처럼 말해 빈축을 샀다. 김도훈 영화평론가는 “‘그래비티’ ‘마션’ 등의 비슷한 할리우드 에스에프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한국에서 해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며 “창의적인 이야기를 개발하지 않고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이후 생겨난 극장가의 양극화 현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범죄도시 3’이 1000만 관객을 넘긴 반면, ‘더 문’보다 흥행 사정이 낫다고 하는 ‘비공식작전’조차 100만 문턱을 가까스로 넘겼을 정도로 영화 흥행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대작 영화의 경우 혹평을 받거나 손익분기점 기준으로 실패해도 200만~300만명이 극장을 찾던 코로나 이전 분위기는 이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킬링타임’용으로 개봉 영화를 즐기던 관람문화가, 이제는 검증된 영화를 찾아보는 ‘목적형 관람문화’로 바뀌면서 200만~300만 관객 작품은 사라지고 100만명대 이하와 400만명대 이상으로만 박스오피스가 갈리는 현상이 올 여름 극장가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올여름 대작 가운데 가장 먼저 개봉한 ‘밀수’는 20일까지 478만명의 관객이 보고 가면서 5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9일 개봉해 이날까지 279만명을 모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오펜하이머’에 이어 좌석점유율 2위를 유지하고 있어 400만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여름 ‘복병’으로 부상한 ‘오펜하이머’는 15일 개봉 이후 6일 동안 159만명이 보고 갔다. 개봉 5일 만에 200만명을 넘긴 ‘아바타: 물의 길’처럼 1000만 관객까지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무난히 500만명에는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 배급사 관계자는 “이른바 망한 영화도 200만명 이상 관객이 모이던 시절은 지난해로 완전히 막을 내린 것 같다”며 “영화를 만들면서 흥행을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바뀌는 관람 문화에 부합할 만한 새로운 기획들을 개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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