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누리집 갈무리
최근 극장 관객 수 조작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가 검찰 송치로 이어지자, 영화계에서는 흥행지표를 기존 관객 수에서 매출액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객 수를 통합전산망에 등록해야 매출로 집계되는 현재 시스템에서 ‘관객 수 조작’ 논란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어서다. ‘천만 영화’로 대표되는 과당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시행하는 매출액 기준 흥행지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영화계가 경찰의 관객 수 조작 혐의를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건 ‘머릿수’로 매출이 계산되는 현재의 통합전산망 시스템에서 ‘유령 관객’의 존재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찰이 관객 수 조작의 대표 사례로 꼽은 ‘그대가 조국’(2022)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6억원의 사전 매출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를 매출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내고 포토북 등 굿즈와 시사회 초대권을 받은 5만1794명을 관객 수로 통합전산망에 입력해야 하는데 실제 표만 받고 극장에 오지 않는 관객이 입력되면서 매출과 실제 관객 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유령 관객’의 존재는 ‘그대가 조국’뿐 아니라 ‘미쓰백’(2018) 등 관객들이 영화를 응원하기 위해 표를 사는 ‘영혼 보내기’ 캠페인에서도 발생해왔다.
이런 경우 외에도 일반적으로 상업영화는 마케팅 목적으로 극장에서 초대권을 구매해서 배포한다. ‘비상선언’(2022)처럼 그 수가 지나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1만장 안팎으로, 상업영화의 흥행 향방을 바꿀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영화계의 주장이다. 이번에 경찰이 조사한 국내 개봉작 462편의 관객 수 부풀리기 조사 결과를 단순 수치로 환산했을 때 영화 한편당 허수 관객은 8천명 정도다. 오동진 평론가는 “실관람객만 관객 수로 인정한다는 논리로 접근하면 크라우드펀딩, 마케팅, 각종 시사회 등 복잡한 영화 시장에 포함되는 여러 매출 구조를 왜곡시킬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건은 영화계를 손쉽게 부도덕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으로 몰아갈 여지가 있는 관객 수 집계 방식을 매출액 기준으로 바꿔야 할 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은 2004년에 도입됐다. 이번 논란의 중심이 되긴 했지만 그 전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며 불투명했던 한국 영화 시장의 매출 구조를 현대화하는 데 기여했다. 판매량(관객 수)이나 매출을 공식적인 단일 창구를 통해 집계해 밝히는 건 문화예술 분야에서 영화 산업이 유일하며 출판계도 추진해왔지만 아직 도입되지 못했다. ‘박스오피스 경제학’을 쓴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통합전산망은 2000년대 초 100만, 200만 돌파 영화가 늘어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이 급성장했지만 공식적인 매출 데이터가 없어 불신이 쌓인 투자자들의 강력한 요구로 도입됐다”며 “당시 정부도 영화 산업을 키우기 위해 법을 정비하고 세제 지원을 하면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때라 통합전산망이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관객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기면서 추정치에 기반한 관객 수 계산으로 벌어졌던 ‘타이타닉’(1998)과 ‘쉬리’(1999)의 역대 최고 흥행 영화 논란,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2000) 간의 한국 영화 흥행 1위 논란 같은 다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매출이 아닌 관객 수 중심으로 흥행지표가 정착한 이유는 극장 쪽이 수익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검표인이 상영관에 입회해 ‘머릿수’를 세던 관행이 통합전산망 도입 이후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도입 초기만 해도 티켓값이 지금처럼 통신사 등 각종 할인과 특수관 가격 등으로 세분되지 않고 조조와 학생, 성인 등 세가지뿐이었던 터라 ‘머릿수’와 매출의 차이가 크지 않아 유지돼온 측면도 크다.
현재 통합전산망은 영화별 관객 수와 함께 매출액도 공개하고 있지만 흥행 순위는 관객 수로 집계한다. 현재 통합전산망이 공개한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를 매출액으로 바꾸면 순위도 바뀐다. 역대 흥행 1위에 올라 있는 영화는 관객 수 1760만명을 기록한 ‘명량’(2014)이지만 매출액으로 바꾸면 ‘극한직업’(2019, 1626만명), ‘아바타: 물의 길’(2022, 1080만명)에 이어 3위로 내려앉게 된다.
김태형 영진위 공정환경조성팀 팀장은 “대작 영화들이 ‘천만신화’에 얽매여 할인 티켓을 무리하게 뿌리는 등의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매출액 중심으로 흥행지표를 바꾸는 문제를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티켓값이 3천원 이상 올랐지만 각종 할인에 영화 간 관객 수 경쟁으로 공식 가격과 관람료 간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코로나 이후 한국 영화 시장 전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무분별한 경쟁보다는 합리적으로 흥행 가치를 정립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배급사들은 다소 유보적인 견해를 보인다. ‘천만 감독’ ‘500만 흥행’ 등 대중영화에서 가장 선명하고 직관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마케팅 방식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대형 배급사 관계자는 “사업자에게 중요한 건 매출이라는 면에서 장기적으로 흥행지표가 관객 수보다는 매출 중심으로 바뀌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천만 감독, 천만 배우 등은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명료한 마케팅 방식”이라며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관객 수 중심 지표를 당장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한국 영화에 더 불리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영화 배급과 흥행’의 저자인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아이맥스 특수관 등에서 더 많이 상영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매출이 한국 영화보다 높게 나오기 유리한데다 관람료 인상 등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역대 흥행 기록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역대 미국 박스오피스 1위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이지만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보정했을 때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40)가 흥행 1위로 꼽힌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