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층을 통틀어 블랙 요원이 되는 임무 수행 과정으로 꾸민 ‘무빙’ 팝업스토어.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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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이건 일급비밀이다. 나는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블랙 요원이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요원 양성소에서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요원증을 발급받았다. 그 유명한 사내 커플 김두식(조인성)-이미현(한효주) 선배가 처음 만난 자판기도 구경하고, 마침 하늘을 날고 있던 김봉석(이정하)도 만났다. 장주원(류승룡) 선배는 없었지만 다른 신입들과 사격 연습도 했다. 7일까지 3주간 나와 같은 1만5천명의 새 요원이 탄생했다. 신입한테 주는 치킨을 먹으며 벽에 붙어 있는 선배들의 사진을 보며 상상했다. ‘나는 어떤 임무를 맡게 될까?’
꿈꾼 게 아니다. 오티티(OTT)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 팝업스토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무빙’ 팝업스토어는 입구부터 특별한 능력이 있는 이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설정을 차용해 드라마 속 세계에 들어가는 효과를 냈다. 디즈니플러스 쪽은 “‘무빙’은 고유의 세계관과 캐릭터별 특징이 뚜렷해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작품에 빠져들도록 신경 썼다”며 “블랙 요원처럼 사격을 체험할 수 있는 ‘사격존’과 봉석과 함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무빙존’이 인기”라고 했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말을 타고 총을 쏠 수 있게 꾸민 ‘도적: 칼의 소리’ 팝업스토어.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팝업스토어가 드라마 홍보 수단으로 떠오르고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로 음반 발매나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하던 팝업스토어가 드라마 분야에서도 주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으면서 규모가 커지고 구성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한 오티티 관계자는 “요즘에는 드라마 팝업스토어가 하나의 즐길 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경험을 하고 공유하려는 방문객이 많다”며 “넷플릭스 코리아가 자리잡기 시작한 2019년께부터 드라마 팝업스토어가 본격 시작됐고, 최근 1~2년 사이 티브이(TV) 방송사도 뛰어들면서 더욱 활발해졌다”고 짚었다.
제이티비시(JTBC)는 2019년 ‘눈이 부시게’를 시작으로 2022년 ‘사랑의 이해’ ‘재벌집 막내아들’, 올해 ‘힙하게’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티브이엔(tvN)은 채널 관련 행사에서 주로 진행하다가 올해 ‘성스러운 아이돌’ ‘경이로운 소문’ ‘소용없어 거짓말’의 팝업스토어를 따로 운영했다. 디즈니플러스는 지난해 ‘사운드트랙1’의 팝업스토어를 선보였고, 넷플릭스는 2019년 ‘킹덤’을 시작으로 2021년 ‘오징어 게임’ ‘지옥’ ‘고요의 바다’, 2022년 ‘지금 우리 학교는’ ‘종이의 집’ ‘수리남’, 2023년 ‘너의 시간 속으로’의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22일 공개될 드라마 ‘도적: 칼의 소리’ 팝업스토어도 지난 19일 문을 열었다.
주인공처럼 동물 엉덩이를 만지면 화면에서 영상이 나오게 한 ‘힙하게’ 팝업스토어. 제이티비시 제공
드라마 팝업스토어는 굿즈 판매로 연결되는 음반 팝업스토어와 달리 온전히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예전에는 단순 관람 구성이 많았다면, 요즘은 주요 방문객인 엠제트(MZ)세대의 성향에 맞춘 ‘체험과 공유’가 핵심이다. ‘소용없어 거짓말’은 주인공 목솔희(김소현)가 운영하는 루니 타로 카페가 홍대에 나타났다는 콘셉트로 실제 타로 카페를 빌려 2주간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거짓말 탐지기, 밸런스 보드게임 등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게임을 배치했다. ‘힙하게’는 주인공 봉예분(한지민)처럼 동물 엉덩이를 만지면 대형 극장 화면에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영상이 나오도록 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직접 도적단이 돼보는 체험존을 마련했다. 이혁주 제이티비시 마케팅팀 팀장은 “드라마 팝업스토어는 공간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콘텐츠를 양산하는지가 중요하다. 방문객들이 경험한 것을 자랑하고 싶도록 흥미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팝업스토어 입구에 ‘대형 주인공(송중기)’을 배치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다른 곳은 어떻게 하는지 살피는 등 팝업스토어는 아이디어 싸움이 됐다”고 했다.
요즘 드라마 팝업스토어는 ‘체험과 공유’를 열쇳말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각 방송사 제공
대중의 참여는 결국 드라마 홍보로 이어진다. 드라마 콘셉트를 함축적으로 담아 놓은 팝업스토어를 경험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티브이엔 관계자는 “팝업스토어는 체험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드라마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게 해 인지도 상승효과와 에스엔에스(SNS) 바이럴 효과를 동시에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혁주 제이티비시 팀장은 “팝업스토어 방문객은 작품별로 대략 1천~8천명 정도다. 드라마 홍보 경쟁이 치열해진 요즘 팝업스토어는 특히 입소문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경이로운 소문2’는 사흘간 총 10시간 팝업스토어를 운영해 821명이 참여하고 바이럴 노출 수 총 420만 이상을 기록했다. ‘소용없어 거짓말’ 팝업스토어 관련 게시글은 주요 소셜미디어에서 2500건 이상이 포스팅돼 총 조회수 43만을 기록했다. 홍보 효과도 좋고 오티티 등을 통해 언제든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1주일 남짓이던 운영 기간도 늘어났다. ‘무빙’ 팝업스토어는 지난 8월7~20일 처음 열렸다가 드라마 공개 뒤 시청자들의 요청에 따라 9월1일~10월3일 다시 문을 열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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