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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독] 오세훈 시장 재개발 바람 속…백남준 옛집터 기념관 문 닫는다

등록 2023-10-05 07:00수정 2023-10-06 15:30

서울시립미술관 내달부터 운영 중단
아카이브 등 시설 정리 들어가
서울 창신동 197번지 백남준의 옛집터 권역 일부에 들어선 백남준기념관.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란 조명 명판이 입구 출입문에 붙어있다. 노형석 기자
서울 창신동 197번지 백남준의 옛집터 권역 일부에 들어선 백남준기념관.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란 조명 명판이 입구 출입문에 붙어있다. 노형석 기자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 영영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1960년대 비디오예술의 기틀을 놓은 현대미술 거장 백남준(1932~2006)의 공식기념관이 다음달 문을 닫는다. 서울시가 2017년 3월 서울 창신동 197-33번지 옛집터 자리 일부에 지어진 개량한옥을 리모델링해 개설했던 백남준기념관을 최근 정리해야 할 문화시설로 확정하고 건립 6년여 만에 운영을 끝내기로 한 것이다.

4일 미술계와 서울시 등의 말을 종합하면, 백남준기념관을 관리·운영해 온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해 말 시 문화시설물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야 할 사업 시설물 대상 1순위로 기념관을 지목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시립미술관 쪽은 관련 예산을 내년부터 편성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으며 올초부터 지난달까지 기념관을 인수해 대신 운영할 관리 주체를 찾고 협상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시립미술관 쪽은 서울 종로구 종로문화재단과 백남준문화재단 등 지자체와 민간 재단에 운영권 인수 의사를 타진했으나 제안을 받은 기관들은 예산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운영 사업을 떠안을 수 없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오 시장이 취임한 뒤 투입 예산대비 성과가 별로 없는 문화기관을 찍어서 보고하고 협의하라는 시정 지침이 내려와 관련 작업을 벌였다”며 “전임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때 이런 방침에 따라 재원 사용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향후 미술관 사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3개 산하기관을 보고했고 그중에 백남준기념관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백 전 관장이 지목한 기관 3곳은 백남준기념관과 서울 은평구 혁신파크 안에 자리한 세마(서울시립미술관 약자) 창고, 서울 여의도에 있는 세마 벙커 전시장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김홍희 전 관장이 퇴임한 뒤로는 역대 관장들이 기념관 운영과 기획 콘텐츠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내부 콘텐츠도 개관 이래 거의 바뀌지 않은 탓에 관객수도 하루 10여명 수준에 머물 정도로 적었던 것이 구조조정의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이런 결정에 따라 서울시립미술관은 올 11월부터 백남준의 행적을 담은 아카이브와 후대 작가들의 헌정 영상 작품, 미국 뉴욕 작업실 재현 공간 등이 있는 전시 시설 관리운영에서 손을 떼고 내부 전시물 아카이브를 거두어 정리하는 작업과 함께 관리권을 시에 넘길 예정이다. 단,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전시실 옆 카페는 내년 8월까지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 일부 관리는 주민들이 자원봉사 성격으로 맡을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도시재생 1호 사업대상지였던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동 일대에 2000세대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는 재개발 재추진 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 백남준기념관이 명맥을 이어나갈 가능성은 극히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백남준기념관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술계에서는 옛집터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며 비판과 우려를 내놓고 있다. 백남준기념관 건립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재직하며 공간 리모델링과 내부 전시구성 등 개관 준비를 주도했던 미술평론가 김홍희씨는 “창신동 백남준 옛집터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고인이 5살 때부터 18살 때까지 살면서 예술세계의 바탕을 형성했던 소중한 역사적 공간”이라며 “관객 수나 재원상의 문제만을 내세워 구체적인 대안도 마련하지 않고 세계적 거장이 성장한 터전이었던 기념관 운영을 포기한다는 상황 자체가 속상하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백남준기념관은 지난 2015년부터 박원순 전 시장이 추진했던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사업을 상징하는 시설이었다. 박 시장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 의견을 받아들여 백남준 옛집터 권역의 일부인 197번지 일대에 들어선 한옥 건물을 매입한 뒤 최욱 건축가의 리모델링을 거쳐 2017년 3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이 분관 성격으로 운영해왔다.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옛집터는 3000평이 넘는 큰 집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 파괴되면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이런 지적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 쪽은 5일 오후 해명자료를 내어 “기념관 운영 종료는 열악한 전시 환경과 관객 저조 등으로 유지에 적합하지 않아 서울시 일버리기 사업 안건으로 제출해 미술관 자체적으로 추진한 것이며 창신 재개발구역에 기념관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백남준기념관의 전시실 내부. 안쪽 공가에 고인의 뉴욕 작업실을 사진과 모조품으로 재현해 놓았고, 테이블 위에서는 고인의 자전적 글이 인쇄된 책자를 펼쳐보면서 책장에 비치는 고인의 미디어아트 영상들을 감상할 수도 있다. 노형석 기자
백남준기념관의 전시실 내부. 안쪽 공가에 고인의 뉴욕 작업실을 사진과 모조품으로 재현해 놓았고, 테이블 위에서는 고인의 자전적 글이 인쇄된 책자를 펼쳐보면서 책장에 비치는 고인의 미디어아트 영상들을 감상할 수도 있다. 노형석 기자

백남준기념관의 전시실 내부. 안쪽 벽면에 김상돈 작가가 만든 백남준의 작품세계에 대한 아카이브 영상이 흘러간다. 노형석 기자
백남준기념관의 전시실 내부. 안쪽 벽면에 김상돈 작가가 만든 백남준의 작품세계에 대한 아카이브 영상이 흘러간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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