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계도 ‘노들섬’ 건립 반대 목소리
“오페라하우스 지을 돈으로 중극장(500~600석 가량)을 여럿 짓고 공연 기획·제작비를 충분히 지원해 주자.”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 계획이 임기 만료로 제동이 걸린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공연장은 어떤 모습일지를 모색하는 목소리가 공연예술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문화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들이 접근성이나 안전성, 환경 문제 등을 중심으로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해 왔지만, 정작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공연예술계는 자신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 쪽은 접근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 당선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시경쟁력으로 볼 때 랜드마크는 필수적”이라며 어느 곳에든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오페라하우스를 문화시설이 아닌 건축물로 접근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인식이라는 점이다.
연극평론가 노이정씨는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등 대형 극장들이 있지만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지어지는 바람에 용도가 불명확해지고, 이에 따라 극장 운영도 왜곡됐다”며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 발상 역시 정치적 과시용이라는 면에서 이들 극장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도 공연할 오페라가 없어서 뮤지컬을 비롯한 다른 공연으로 때우고 있는 실정”이라며 “오페라하우스 이전에 꼭 필요한 문화시설이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해 전체 공연 일수 196일 가운데 오페라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은 42일에 불과하다. 발레를 합쳐도 60일을 조금 넘는다. 나머지는 뮤지컬이나 콘서트로 채워졌다.
최준호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은 “1500석 이상의 큰 극장 하나를 짓기보다는 500~1000석쯤 되는 쓸만한 극장을 여러개 짓고 기획·제작비를 넉넉히 주어 제대로 된 공연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장의 형식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유럽 극장들이 스스로 공연을 제작하거나 기획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 극장들이 외부 단체에 단순히 무대를 빌려주는 대관 공연에 치우치고 있는 것은 극장 운영비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800석 규모의 충무아트홀(서울 중구문화재단)이 토지매입 비용을 포함해 1천억원 가량의 공사비가 든 점을 감안하면, 5천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되는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 비용이면 최소한 5개의 중극장을 지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참에 대학로의 열악한 공연 환경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문화 향유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치운 호서대 예술학부 교수(연극평론가)는 “대학로의 모든 극장들이 지하에 있고, 네모난 형태로 규격화 돼 있어 연극인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한계가 있다”며 “대학로의 천편일률적인 공간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로에는 70여개의 소극장이 있지만, 대부분 100석 안팎의 작은 극장들이어서 연극적 상상력을 펼치기에 너무 좁다. 의자도 불편하고 무대도 좁아 관객과 배우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최준호 감독은 “지금의 대학로는 우리 공연을 망가뜨리고 있다”며 “200~300석 규모로는 제작비도 건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극장이 모자라 대관경쟁이 치열하다. 공연기간이 짧으니 제작비 회수는 꿈도 꾸기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도시계획과 연계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중규모 극장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극장 설계를 공부한 임종엽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는 “유럽에서는 도시를 설계할 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극장과 도서관, 박물관을 기본적으로 먼저 배치한다”며 “극장은 공연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교제할 수 있는 광장으로서의 기능을 더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미군기지가 이전하는 용산이나 은평 뉴타운 같은 곳부터 시범적으로 극장을 지어야 한다”며 “그것이 진정한 도시공동체 형성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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