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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20년 동안 곰삭여온 ‘길’로 나섭니다

등록 2006-10-30 18:59수정 2006-10-31 11:12

배창호 감독. 김경호 기자
배창호 감독. 김경호 기자
17번째 작품 ‘길’ 내놓은 배창호 감독
배창호(53) 감독이 <흑수선> 뒤 5년 만에 17번째 영화 <길>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2003년 1월부터 여덟달 동안 촬영은 끊어질 듯 이어졌다. 그의 영화 <정> 제작 때 프로듀서를 맡았던 강충구 이산프로덕션 대표가 고생길에 뛰어들어 제작비 5억원을 끌어모았다. 지난 16일 서울 세종로에서 만난 배 감독은 당시 속내를 이렇게 기억했다. “갑갑했죠. 제작진에게 미안해서 난 중간에 그만 둬도 상관 없다는 말도 했어요.” 교통비 정도 받고도 방방곡곡을 함께 누빈 제작진 25명에게 마음 빚을 졌다. 하지만 기다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완성했지만 배급사를 찾지 못했다. “인연이 없어서였겠죠….” 결국 상업적이지 않더라도 작품성을 갖춘 영화를 알려온 배급사 스폰지와 연이 닿았다.

그렇다고 배 감독이 주인공 태석역을 맡은 까닭이 팍팍한 제작 여건 때문만은 아니다. “<개그맨> <러브스토리>에 이어 8~9년에 한번꼴로 주인공을 맡은 셈이내요. 태석을 가장 잘 이해할 만한 사람이 저였어요.” 그만큼 <길>은 그 안에서 오래 곰삭은 영화다. “20년 동안 길에 대한 영화를 생각했죠. 인간의 방랑성,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아낼 수 있는 길은 감독들에겐 보편적인 주제죠.” 그는 <고래사냥> 1·2편과 <안녕하세요, 하나님>등 로드무비로 여러 편 찍어 여정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이번 길에 대한 구상에 구체적인 살을 입힌 건 우리나라 장인들에 대한 책이었다. “특히 대장장이가 모루를 고통처럼 짊어지고 가는 모습이 좋았어요. 영화 속에서 쌀로만 엿을 만들거라는 할머니의 대사 등은 실제 책 속 모델에서 따온 거예요.” 영화 속 사람들은 고집스럽우면서도 유순하다. 전형적인 데가 있다. “저는 태석을 보며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어떤 분은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해요.” 누구 하나 제대로 모질지 못하다. “악한 사람도 깊숙히 보면 방황하게 된 원인을 안고 있어요. 상처는 대물림 되고 그걸 끊을 수 있는 게 용서인 것 같아요.”

영화 속 길도 사람처럼 푸근하고 유장하다. 그 길을 발품 팔고 <한국의 오지 마을>이란 책의 도움도 받아 찾아냈다. 경북 왜관 낙산에는 1970년대 풍경에 어울릴 법한 이발소가 있었다. 강원도 삼척 환선굴에 있는 너와집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제작비 때문에 장날 모습을 충분히 복원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길에서건 사람에서건 끌어올린 친근하고 질박한 감수성을 그는 “원형질” 또는 “한국적인 것”이라고 표현한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년)로 데뷔해 <고래사냥> <깊고 푸른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1980년대 흥행작들을 줄줄이 내놓은 그가 <꿈>(1990년) <정>(1999년) 이후 붙들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여기엔 옛 것에 대한 향수가 배어 있다. “깊은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어요. 디지털 문화는 차가워서 그런 느낌이 얇죠.” 그래서 1970년대와 50년대로 거슬로 올라가 <모정> 등 영화 포스터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까지 담았다. “황톳길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기록해 둬야죠.”

그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그는 태석만큼이나 고집스런 길을 가고 있다. “독립영화가 곧 돈 적게 들이고 재미 없는 영화는 아니죠. 자본으로 부터 창작의 정신을 지키는 영화를 말하는 거에요. 자본이 주인공이 되면 영화의 개성이 없어져요. 1천만명이 좋아하는 영화뿐만 아니라 1만명을 위한 영화도 나와야죠.”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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