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 관련사진.
영화 길
<길>(감독 배창호)의 줄거리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 등을 떠올리게 한다. 태석(배창호)은 20년 넘게 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다. 그에겐 그가 짊어진 모루처럼 무거운 상처가 있다. 둘도 없는 친구인 득수(권범택) 탓에 집을 잃고 옥고를 치렀다. 깊이 사랑했던 아내 곁도 떠나야 했다. 오해와 분노에 떠밀려 장터를 떠돌던 태석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간다는 득수의 딸 신영(강기화)을 우연히 만나 함께 득수가 숨을 거둔 마을로 떠난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의 힘이 묵직하다. 봄꽃 흐드러진 지리산 기슭 구례 산동 산수유 마을, 광활한 만경평야, 삼척 환선굴에 우뚝 솟은 산, 강원도 임계의 외딴 여인숙….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영평 바다 그물처럼 얽힌 내 사랑아~” 따위 구성진 노랫가락이 얹힌다. 이 리듬을 타고 이야기는 아련한 자장가, 때론 처연한 곡소리가 돼 감정의 밑자락을 울린다.
무엇보다 고집스럽도록 선량한 보통 사람들을 향한 눅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꼼꼼하게 복원한 1950년대와 70년대 풍경 속에 냉차 파는 할머니와 그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수박장수가 있다. 엿 장수는 곧 죽어도 쌀로 만들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태석이는 “대장장이를 돈 벌자고 하간디”라며 풀무질에만 매달린다. 친구에게 집문서도 아낌없이 내주는 태석은 말할 것도 없이 딸 버리고 친구도 배신한 악인 득수에게도 이해할 만한 그만의 이유가 있다. <길>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밴 한과 용서를, 외로운 방랑성과 끈질긴 사랑을 노래한다. 허탈한 절망과 허황된 희망 사이, 절묘한 균형을 맞춘 결말은 여운이 길다. 11월 2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 관련사진 / 씨네21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 관련사진 / 씨네21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 관련사진 / 씨네21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 관련사진 / 씨네21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 관련사진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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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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