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 영산대 교수
전도된 의인화가 드러내는 인간의 정체는? -뮤지컬 ‘캣츠’-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어떤 뮤지컬이 ‘누구’의 작품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같은 종합예술이라도 영화감독이 영화의 작가이고 연출가가 연극의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과 다르다. 뮤지컬 〈캣츠〉 하면 얼른 이 작품의 음악을 만든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떠올릴 것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음악은 물론 핵심적이다. 하지만 트레버 넌의 뛰어난 연출과 질리언 린의 기발한 안무 없이 〈캣츠〉는 탄생할 수 없었다. 물론 이 작품에서 웨버의 공헌은 각별하다. 그가 T.S. 엘리엇의 우화 시집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에서 뮤지컬 제작의 아이디어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엇의 시는 이 작품에서 건물의 기초와 같은 것이다. 이는, 노래를 먼저 만든 후 작사가가 가사를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해오던 웨버가 이 작품을 위해서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엘리엇의 시에 맞추어 작곡을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뮤지컬 〈캣츠〉가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연관 있다. 엘리엇의 시가 이미 그렇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레버 넌과 웨버가 구원(救援)의 은유를 담은 것도 작품의 성격에 영향을 주었다.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한때 아름다운 고양이였으나 지금은 늙고 추해진 암고양이 그리자벨라다. 매년 고양이들의 무도회에서는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로노미가 나타나 한 마리의 고양이를 선택하고, 그는 하늘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모든 고양이들이 기대에 들떠 있는데, 의외로 선택된 고양이는 남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는 그리자벨라다.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내일의 희망을 담은 ‘메모리’를 노래하는 그리자벨라, 결정의 순간 그리자벨라를 가리키는 듀터로노미, 이제 다른 고양이들이 부르는 축원의 합창을 뒤로하고 그리자벨라는 하늘로 올라간다.
그런데 엘리엇의 시 그리고 춤과 노래 사이에 끼워 넣은 구원의 은유만으로 〈캣츠〉가 인문적 성찰과 철학적 명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뮤지컬로서 이 작품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작품 전체가 철학적이라는 것을 놓치기 때문이다.
〈캣츠〉가 고양이들의 의인화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무심코 하는 말이리라. 의인화란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인 양 나타내는 일’이다. 물론 엘리엇의 시는 의인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의인화된 고양이들의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 고통과 희망, 죽음과 구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뮤지컬 〈캣츠〉에서 관객이 보는 것은 의인화한 고양이뿐인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관객은 ‘의묘화(擬猫化)’를 본다. 이것은 ‘고양이 묘(猫)’ 자를 써서 내가 만든 말이다. 의인화의 정의를 뒤집어서 의묘화를 정의하면 ‘고양이 아닌 것들을 고양이인 양 나타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캣츠〉는 전도된 의인화의 예술이다. 이는 특히 무대 배경과 안무에서 그 기예적 극치에 이르고 있다. 도시 골목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사람들이 모두 고양이가 되어 있지 않은가.
인문적 관점에서 본, 성공한 뮤지컬로서 〈캣츠〉의 비밀은 바로 의인화와 의묘화가 기기묘묘하게 혼재하며 어울려 있다는 데에 있다. 엘리엇의 시를 바탕으로 한 노랫말은 의인화의 굴대이다. 한편 춤과 음악의 리듬은 의묘화의 빗살 수레바퀴이다. 그렇다면 이 기막힌 의인화와 의묘화의 섞임에서 우리가 얻는 철학적 화두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총체적 ‘다름의 가능성’이다. 곧 ‘모두 같은 것에서 모두 다른 것들이 나올 수 있다’는 이 세상의 의미심장함이다. 이는 모든 고양이는 지금까지 ‘고양이’라는 말이 규정해놓은 모든 의미로부터 다른 무엇일 수 있으며, 모든 인간은 지금까지 ‘인간’이라는 말이 정해놓은 모든 의미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무엇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고양이가 더는 우리가 생각하는 고양이가 아니며, 사람이 더는 사람이 생각해온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이 〈캣츠〉의 춤과 노래에 담겨 있는 은유이다. 고양이 무도회에 참가해서 관능적인 몸짓과 천문학적 고음으로 노래하는 고양이들은 각자 너무도 개성적이다. 특히 거구를 능숙하게 놀리며 관능적 춤을 발산하는 럼 텀 터거는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그는 각기 다른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무척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을 뒤집는 역설의 화신이다. 이것이 그를 ‘철학 고양이’로 만든다.
의묘화는 ‘탈(脫)인간화’의 한 방식이다. 〈캣츠〉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를 붙들고 사유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사람은 사람과 다르다’라는 명제에 이른다. 어쩌면 우리는 탈인간화의 극단에서 인간의 원초적 변신을 선언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해야 할 때가 왔는지 모른다. 김용석 / 영산대 교수 anemoskim@ysu.ac.kr
의묘화는 ‘탈(脫)인간화’의 한 방식이다. 〈캣츠〉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를 붙들고 사유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사람은 사람과 다르다’라는 명제에 이른다. 어쩌면 우리는 탈인간화의 극단에서 인간의 원초적 변신을 선언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해야 할 때가 왔는지 모른다. 김용석 / 영산대 교수 anemoskim@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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