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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능력 과신이 진리의 길을 막는다

등록 2008-10-31 20:42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최근의 금융위기를 보면 그야말로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금융은 전산화가 가장 잘 된 분야다. 정교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복잡한 계산을 거쳐 거래가 이뤄진다. 그런데도 위기 예측은커녕 사태 발생 이후 수습도 쉽지 않다. 사람의 인식 능력에 근본적 한계가 있는 걸까.

진리에 관한 한 수학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받아들여진다. 수학은 경험을 넘어선 선험적 추론을 통해 진리를 찾는다. 그래서 일단 확립된 결론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어떤 경험적 발견으로도 뒤엎을 수 없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수리과학 분야에서 20세기 초반 수십년 동안 인식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혁명이 연이어 일어났다. 괴델의 불완전성정리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그것이다.

인간의 인식 능력은 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라는 큰 흐름이 뻗어나온다. 합리주의자 괴델(1906~78)은 수학적 플라톤주의를 지지한다. 수학적 실체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이를 추구하는 관점이 수학적 플라톤주의(수학적 실재론)다. 수학의 진리성은 결국 소수 공리에 의해 보장되는데, 공리는 직관 위에 구축된다. 따라서 수학이 경험적 학문은 아니지만 ‘세상을 서술한다’는 게 플라톤주의의 핵심이라고 <불완전성-쿠르트 괴델의 증명과 역설>(승산 펴냄)은 말한다.

괴델의 반대편에는 경험주의를 계승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있었다. 전통적 경험론에 따르면 세계의 본질에 관계되는 모든 명제는 오직 경험적 수단을 통해서만 진위가 가려진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나아가 인식가능성의 한계는 의미의 한계와 같으므로 유의미한 것은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논리학과 마찬가지로 수학에는 서술적 내용이 없음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이들은 공리와 정의와 추론규칙과 증명으로 인공적 형식체계를 구축하고, 이로부터 모든 수학적 진리가 도출될 수 있음을 보이려 했다. 이 체계가 성립하면 수학적 직관은 인간의 미혹에서 비롯된 환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괴델의 정리는 이 체계를 무너뜨린다. 제1정리는 어떤 계가 무모순이면 그 안에서 표현 가능한 참이면서 증명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제2정리는 수론에 적합한 어떤 형식체계의 무모순성은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들 정리는 인간 인식 능력의 한계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진리 탐구에서 합리주의자와 경험주의자는 진보적·보수적 성격을 다 가질 수 있다. 합리주의자는 절대 진리를 끈기 있게 추구하는 점에서는 진보적이지만, 그 진리에 쉽게 집착하면 보수화한다. 경험주의자는 끝없는 도전을 시도하기에 진보적이지만, 진리를 가볍게 여기는 상대주의에 기대면 보수적으로 된다. 중요한 것은 학문 세계에서나 현실 문제에서나 독단과 상대주의를 피하고 겸손하고 끈질기게 진리에 다가가는 태도다.

금융위기 발생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탓이 아닐까. 괴델은 이성의 한계를 알려고 평생을 몸부림쳤다. 세상을 뜨기 전 그의 몸무게는 겨우 30kg이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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