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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우리 의식주에 사람 살리는 지혜 깃들어…‘진짜 한류’ 알려야죠”

등록 2013-04-07 19:37수정 2013-04-07 23:04

지난달 서울 삼청동에 한옥을 지어 질경이생활문화원 무봉헌을 연 이기연 질경이우리옷 대표가 당호 액자를 배경으로 섰다. 소귀 신영복 선생이 당호 무봉헌을 한글로 써줬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달 서울 삼청동에 한옥을 지어 질경이생활문화원 무봉헌을 연 이기연 질경이우리옷 대표가 당호 액자를 배경으로 섰다. 소귀 신영복 선생이 당호 무봉헌을 한글로 써줬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우리 생활문화운동’ 30년
질경이우리옷 이기연 대표

2013년 3월9일, 서울 삼청동길 중심에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새 한옥이 들어섰다. 질경이생활문화원 ‘무봉헌’이다.

질경이 우리옷의 이기연(55) 대표가 주인인 이 한옥은 110㎡(33평) 터에 넓지도 않은 규모인데 무려 6년이 걸린 대공사였단다. ‘원장’이라는 명함을 하나 더 얻은 그는 “우리옷 만들고 입히기 30년 만에 평생의 꿈을 펼쳐보일 복합문화공간을 마련했다”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그러니까 30년 전, 그가 1984년 민족생활문화연구소를 열어 소장과 부설 생활문화학교 교장을 맡아 우리 것 알리기 운동에 나설 때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그동안 운동으로 출발한 질경이 우리옷은 ‘생활한복의 대명사’이자 패션산업의 한 갈래로 어엿하게 자리를 잡았다. 90년대 중반을 절정으로 정작 국내에서는 생활한복의 인기가 시들해지긴 했지만, 질경이 우리옷은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국 베이징 등등 세계적인 패션무대에 진출해 당당히 명품 옷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가 한류 바람 속에 도리어 한국적 색채를 잃어가고 있는 삼청동에서 새로운 우리 생활문화 운동의 판을 벌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홍익대 미대 출신의 화가에서 우리옷 디자이너이자 패션사업가로, 이제 다시 생활문화 운동가로 나서는 그의 예사롭지 않은 출사표를 들어봤다.

인터뷰/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먼저 무봉헌을 짓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80년대 초 생활문화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의식주’ 전반에 걸쳐 무국적 서구화에 물든 우리 일상을 바꾸는 게 목표였다. 친숙한 생활용품을 골고루 개발해 보급해봤는데 그 가운데 옷이 가장 대중성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옷사업단을 꾸려 ‘질경이 우리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20여년 옷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전국에 매장이 44개나 퍼져 있었는데 정작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철학이 담긴 옷’은 잘 보이지 않았다. 최근 10년간 대리점 방식의 매장은 차츰 정리해 지금은 직접 관리가 가능한 7곳만 남겼다. 매출은 당연히 줄었다. 그런데 6년 전 원래 있던 낡은 한옥이 무너지면서 삼청동에 터가 나왔다. 버거운 일이었지만 마침내 때가 왔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홍대 미대시절 민중미술로 시작
84년 민족생활문화연구소 세워
‘우리옷입기’ 호응 좋아 사업 30년

-상업시설로 한옥을 새로 짓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비용은 물론이고 공사도 오래 걸려 투자가치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들 말리지 않았나?

“물론 우여곡절 파란만장, 말로는 다 할 수 없어 집 지은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려고 송준 작가 등이 처음으로 기록을 해왔다. 다행히 3년 전쯤 송동철(건축사사무소 소도)씨를 비롯해 젊고 의욕에 찬 젊은 건축가들이 합류해 함께 우리 문화 현장을 답사하고 공부를 하면서 이 터에 맞는 한옥 설계가 나왔다. 공사는 정영수 대목이 맡았다. 원래 삼청동은 집을 지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조선시대 소격서와 삼청전을 두고 기우제와 초제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일제 때 일본인들이 경복궁 부재를 뜯어다가 마구 지어 집장사를 하면서 변질된 것이다. 그런 역사적 내력을 알게 되니 반드시 제대로 된 한옥을 지어야겠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무봉헌(舞縫軒), 이름에 특별한 뜻이 담긴 듯하다.

“당호는 서예가 성재 황방연 선생이 신사임당의 시 ‘사친’에서 두 글자를 빌려 지어주셨다. 마지막 구절 ‘언제쯤 색동옷 입고 어머니 품에서 바느질할꼬’에서 따왔다. ‘꿰멜 봉’은 ‘만날 봉’으로도 풀이를 하니, ‘사람과 사람이 만나 흥겹게 춤을 추는 공간’이란 의미도 담겼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음과 마음이 경계를 허물고, 손에 손을 모아 뜻을 세우는 두레의 터전이 됐으면 한다.”

-무봉헌 개원식 안내서를 보니 ‘무봉헌 생활문화교실’을 운영한다고 했다. 30년 전 민족생활문화학교를 다시 여는 셈인가?

“회원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일반인과 외국인 대상으로 각각 진행하게 될 것이다. 전통 발효음식 시음·시식회와 만들기, 우리옷 염색과 바느질법, 대체의학 등등 갖가지 체험실습과 그 경험을 인문학적 감성으로 정리해내고 성찰을 깊게 해줄 강좌를 준비중이다. 호기심에 한두번 구경해보는 겉핥기 공부가 아니라 실제로 해봄으로써 생활양식을 바꾸고 사고와 정서까지 달라지게 하는 교육을 할 것이다.”

-기존의 외국인 대상 문화체험 프로그램들과 어떻게 다른가? 2011년 팔당 세계유기농대회 때 외국인 귀빈들을 모델 삼아 우리옷 패션쇼를 진행해 호평을 받았던데, 그 연장선인가?

“오는 17~20일 열리는 환태평양법률가협회(IPBA) 서울총회 때도 패션쇼를 비롯해 우리 생활문화 체험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부부 동반으로 800여명의 외국인이 참가하는데 행사장이 마침 <문화방송>(MBC) 사극 오픈세트장인 ‘용인드라미아’여서, 무봉헌에서 제안하려는 우리 고유의 의식주 라이프스타일을 다양하게 시연해볼 참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인에 맞는 상설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개원 기념전으로 공예가 조수정씨의 ‘하늘과 땅과 사람이 담긴 장신구-잇다’를 선보였는데, ‘질경이 작가 초대전’도 지속적인 프로그램인가?

“우리 전통을 잇거나 현대화하려는 젊은 공예작가들을 발굴해 질경이 우리옷과 연계해줄 작정이다. 일회적 소개에 그치지 않고 전시 작품을 아래층 질경이 삼청점 매장에서 상설 판매해 유통과 수익도 지원할 것이다. 개원 기념전만 해도 3년 전부터 작가와 교류하며 무봉헌의 취지와 우리옷에 어울리도록 준비한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다. 함께하는 사람들이나 여러 분야를 참여시킬 네트워크가 필수적인 것 같은데.

“물론이다. 지난 30년간 쌓아온 질경이의 역량과 나 자신의 내공, 우리 전통문화계의 적극적인 참여까지 총결집시켜 하나둘 실천할 것이다. 무봉헌 운영 구상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 우리 문화 현장을 둘러보면서 나도 놀랄 정도로 다져진 인적 네트워크가 이미 있었다. 나 혼자만 꿈꾼 게 아니었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거나 지켜보면서 청춘을 보낸 우리 세대들 대부분이 비슷한 꿈을 안고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 것, 우리다운 생활양식, 공동체문화, 평화와 통합, 자연과 공존 등등 같이 하면 훨씬 재밌고 수월하지 않겠나. 이제 무봉헌이 그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이기연(55) 대표
이기연(55) 대표
일제가 오염시킨 ‘신의 공간’ 삼청동
6년 공사로 제대로 된 한옥 완공
‘무봉헌’ 열고 제2 생활문화운동에

-좀더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예를 든다면?

“우리 맛의 뿌리인 발효음식만 해도 최소한 1년은 기다려야 하기에 함께 연구하고 개발해나갈 귀농인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팔당 유기농 1세대인 양수리의 도농콘텐츠연구회와도 공동사업을 진행중이다. 마침 내가 13년간 교장을 맡았던 생활문화학교 1기 졸업생이 터를 잡고 있다. 그들과 함께 간장·된장·효소·술·식초 등등을 함께 담그고 숙성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시음·시식회도 열어 평가하고, 이를 요즘 젊은이들도 좋아할 만한 음식 메뉴로 응용해 개발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연결시키려 한다.”

-개인적인 내공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 생활문화 운동에 투신하게 된 이력을 듣고 싶다.

“76년 미대에 들어갈 때부터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를 화두삼아 그 본질을 찾고자 몸부림쳤다. 미술의 한계를 넘고자 연극, 탈춤, 탱화, 민속화, 풍물, 민담 등등 갖가지 유무형의 우리 문화를 찾아 익혔다. 그런데 그 시절이 바로 유신독재의 절정기 아니었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는 의정부의 전자부품공장에 ‘위장취업’하기도 했다.”

-질경이 우리옷이 하나의 상품으로 탄생한 계기가 있었을 텐데?

“내가 잘하는 그림·예술을 통해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한 끝에 찾아낸 해답의 하나가 민족생활문화연구소와 미술 동인 ‘두렁’이었다. 화랑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만 유통되고 애호가들만 향유하는 예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을 보급하고자 유통방식부터 바꿨다. 만화·판화·걸개그림을 달력·카드·손수건·티셔츠 같은 생활용품에 넣어서 퍼뜨리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그림을 무늬로 새긴 옷이 가장 반응이 좋았는데 문득 보니 그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대로 움직이는 전시장인 셈이었다. 그래서 가장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우리풀인 질경이를 상표로 우리옷 사업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생활한복이 예전만큼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촌스런 시장옷으로 취급하거나 ‘운동권’ ‘꼴통’ 같은 사람들이 입는 옷이라는 색깔 잣대로 보기도 한다. 원인이 무엇일까?

“종종 화가 날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의원 같은 사회 지도자층에서조차 우리옷을 잘 모르고 흉내만 낸 얼치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례가 많다보니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다. 질경이 초창기부터 가장 강조한 게 ‘개량한복’이 아니라 ‘우리옷’이 바른 이름이라고 설득하고 홍보하는 일이었다. ‘한복’이란 말 자체가 일제가 만든 표현이니, 원래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이 입은 옷은 ‘우리옷’ 아닌가. 그래서 지금도 ‘한겨레평화의나무합창단 단복’처럼 디자인이나 옷 협찬 의뢰를 받으면 반드시 ‘우리옷과 철학’에 대한 강의를 먼저 듣는 조건으로 제공한다.”

-무봉헌을 통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생활문화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매일 매순간 반복되는 의식주가 생활방식을 바꾸고, 생활방식이 바뀌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바뀌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수천년 쌓인 우리 지혜를 되살리려 지금 이 땅에 사는 우리들부터 좀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또 한가지, 이제는 우리옷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양식, 생활문화를 통째로 알리고 팔겠다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을 함께 살리는 문화, 그것이 진짜 한류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적어도 삼청동에 오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공간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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