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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엔지오

“선거조작 국정원 6·4선거 손놓고 있겠나?…남재준 파면해야”

등록 2014-04-21 19:51수정 2014-05-16 09:42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한겨레가 만난 사람] 박석운 ‘국정원 시국회의’ 공동대표

박석운(59)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광장의 파수꾼’이다. 비제도권 진보민중운동의 상징이기도 한 그는 19년째 시민사회 연대운동의 구심점 노릇을 해오고 있다. 수많은 사회적 현안에서 단체들 간의 이견을 조율하고, 집회·시위 등 투쟁 전략과 전술을 마련하는 실무 책임자, 즉 집행위원장이 그의 직업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표급으로 ‘승진’했지만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

그는 남재준 국정원장 등의 파면과 특별검사 실시를 요구하며 지난 3월29일부터 4월19일까지 22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4·19 기념일에 맞춰 ‘10만명이 참가하는 국민 촛불 대행진’을 이끌어내기 위한 결의였다.

그는 박근혜 정권은 물론 ‘집단적 망각’을 상대로도 투쟁하고 있었다. 40차례가 넘는 촛불시위를 이어왔지만 광장은 점점 썰렁해져 갔다. 단식은 그가 자청한 불쏘시개인 셈이다. 그러나 19일 행사도 ‘세월호 침몰 사건’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국가적 대참사 앞에 참가단체들은 행사를 중단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며 차분하게 진행됐다.

앞서 17일 청계천 광장에서 만난 그는 스무날째 단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꿋꿋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 드러났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도 요원하다. 지방선거에 휩쓸려 부정선거 이슈가 가라앉는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꽤 긴 단식을 하고 있는데 천막조차 없다. 추위나 비는 어떻게 피하나?

“천막을 안 친 게 아니고 못 치고 있다. 단식농성 첫날 비를 막기 위해 천막을 쳤더니 경찰이 막무가내로 철거했다. 어떤 사전경고나 영장도 없었다. 이후에는 비닐도 못 치게 했다. 수십년간 험한 꼴을 많이 겪었지만 현 정부에선 집회·시위 환경이 어느 정권보다 열악하다.”

-왜 그렇게까지 한다고 생각하나?

“박근혜 정권이 이번 시위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촛불시위는 두 달 이상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지난해 6월28일부터 10개월에 걸쳐 40차례나 하고 있다. 언제든 다시 촛불이 확산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촛불’로 역부족·국민법정 등 시도

-시민들의 호응이 커 보이지 않는데.

“상당수 국민들이 무감각하거나 지쳐 있다. 보수언론과 방송이 부정선거 문제를 철저하게 묵살한 탓도 크다. 그러나 묵과할 수 없다는 국민도 많다. 촛불시위만으로 시민들의 힘을 모으기엔 역부족이다. 앞으론 운동방식을 다양화할 예정이다. 5월 말엔 국민법정을 열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정원의 범죄행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국민 공소장을 만들었다. 1만명의 시민배심원단을 모집해 유무죄를 심판하게 할 것이다. 또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도 준비하고 있다.”

-요구사항이 박 대통령 사퇴가 아닌 국정원장 파면인 까닭은?

“시민단체의 스펙트럼이 넓다. 어떤 단체는 부정선거의 진상이 밝혀지고 난 뒤에 퇴진 요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바로 퇴진을 요구하면 국민이 수긍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따로 또 같이’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국정원 시국회의’는 모두가 동의되는 수준에서 행동해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 대통령이 물러나기까지 2년2개월이 걸렸다. 우리 사회는 미국보다 민주주의의 힘이 약하니까 더 걸릴 수도 있겠지만 대신 훨씬 역동적이다. 당장은 안 된다 해도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이다.”

국정원장 책임 묻는 단식 22일
동기는 환갑여행 간다지만
누군가 해야할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단식을 해야 할 만큼 절박했나?

“가톨릭을 비롯해 종교계에서 이미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면서 특검을 관철시킬 수 있는 여건이 됐다. 그러나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과 담합을 했다. 결과적으로 운동의 동력이 떨어지고 말았다. 야당이 손을 놓고, 언론은 축소·은폐를 하는 상황이라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난 새정치연합이 굉장히 우둔하다고 생각한다. 선거 조작을 했던 국정원 지휘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 6·4 지방선거에서도 그 사람들이 손을 놓고 있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방법으로 선거조작을 할 게 뻔한데 야당은 막연히 ‘좋은 후보를 뽑아 선거운동 열심히 하면 정권을 심판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다. 단식은 부정선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절박한 투쟁이다.”

그는 올해 59살이다. 1976년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풀려난 뒤 84년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시민공익법률상담소에서 노동상담을 했다. “엄혹한 시절이라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조 변호사 그늘에 묻혀 있었다”고 했다. 89년부터는 부천 성고문 사건 피해자 권인숙씨가 국가배상금을 받아 설립한 노동인권회관에서 소장을 맡았고 이후 노동정책연구소 등에서도 같은 자리를 지켰다. 그가 본격적으로 시민사회 연대운동에 나선 건 96년 말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공동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왼쪽)가 인터넷신문 <서울의 소리> 편집인 겸 대표 백은종씨와 함께 지난 1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단식 20일째를 맞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왼쪽)가 인터넷신문 <서울의 소리> 편집인 겸 대표 백은종씨와 함께 지난 1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단식 20일째를 맞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텃밭놀이’…뿌린 씨 단식중 싹터

-환갑이 지척인데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한 살 일찍 초등학교를 입학하다 보니 동기들은 올해 환갑 기념 여행을 간다더라. 광우병 촛불 때까지 여러 연대조직의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을 두 번 갔다. 그 뒤 후배들이 집행위원장을 계속하면 또 감옥 갈 거라며 배려해줘서 공동대표가 됐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다.”

-직함을 몇 개나 갖고 있나?

“정확하게 셀 수는 없지만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연대사업만 해도 국정원 시국회의, 삼성 바로잡기, 쌍용차 범대위, 케이티엑스(KTX) 범대위(철도민영화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범대위, 지금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이름을 바꾼 에프티에이 대응 범대위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상근으로 대표를 맡고 있는 곳은 한국진보연대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 세 군데다. 시간을 쪼개 가면서 일하고 있다.”

-함께 활동하던 많은 분들이 제도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치권 등에서 영입 제안은 없었나?

“없었다.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바빠서 할 여가가 없다’고 답한다. 아마 나는 으레 광장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보다.(웃음)”

-‘진보운동 하면 박석운’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식상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섭섭하지 않은가?

“전혀 없다. 나도 빨리 졸업하고 싶다. 요즘엔 후배들이 성장하면서 실무는 많이 안 해도 된다. 조만간 졸업할 수 있을 거다.”

-지금까지 활동에 스스로 점수를 준다면?

“운동은 평론이 아니라 일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예측이다. 충분히 앞을 내다보고 일을 진행해야 하고, 끝난 뒤에도 성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운동권의 투쟁은 대중들의 작지만 잠재적인 힘을 이용해 현실에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목표가 이뤄지는 건 채 1할이 안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2할 정도의 승률을 올렸다. 자평한다면 70점은 되는 것 같다. 미흡하지만 나름대로 운동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30년 넘게 현장운동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지간한 문제에는 좌절하지 않는다. 낙천적이고 낙관적인 편이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 다녀온 뒤 만나 결혼한 아내는 지금까지 쭈욱 외국인 노동자 보호단체에서 일해왔다. 아들은 어릴 땐 집회에 같이 다녔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운동하시니까 저는 안 해도 되죠?’라고 한다. 마음으로 지지하는 걸로 안다(웃음).”

19년째 집행위원장이 ‘직업’
식상하다는 말에 서운하지 않아
후배 키워 물려주고 졸업하고파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느냐?

“수많은 연대조직의 집행위원장이나 공동대표 직함을 갖고 있지만 거기서 받는 개인적인 활동비는 없다. 강연 등의 부정기적인 수입 외에 야간에 따로 하는 부업이 있다.”

-현장에서 은퇴하면 뭘 할 생각인가?

“하고 싶은 일은 많다. 한국의 운동 이론과 철학에 대한 정리를 하고 싶다. 또 필요하다면 진보정치세력들을 결집해서 우리 사회 주류가 되도록 기여를 할 생각이다. 진보정치가 최소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는 돼야 서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 그래야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겠냐.”

-진보정치의 주류화를 위해 당장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보는가?

“‘광장 사수’와 ‘진보연대세력의 대통합’이다.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 이후 진보개혁 진영이 풍비박산 난 건 진보와 개혁 세력으로 분열돼 선거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에게 기득권층의 지지만 얻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게 됐고, 이후 촛불에 대한 단계적이고 집요한 탄압이 이뤄졌다.”

그는 3~4년 전부터 짬을 내 “텃밭놀이를 한다”고 했다. 고구마나 콩처럼 병충해에 강하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작물을 “씨 뿌려 놓고 가끔 가서 들여다보는 천하태평 농법”이다. 단식 직전 씨를 뿌렸다는 그는, 단식이 끝나면 싹이 터 있을 거라고 했다. 그가 30여년 동안 정성을 기울인 진보운동은 언제쯤 열매를 맺게 될까?

인터뷰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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