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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총알이 안 나가면 어떡하지?

등록 2013-06-28 20:19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8
간혹 예외인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고통 없는 죽음을 원한다. 전문가들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공포는 산 채로 동물에게 잡아먹히는 것과 땅에 매장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죽을 때 타인이 옆에 있는 것이 두렵다. 죽는 데 집중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로드>(The Road)는 내가 접하기 어려운 책이다. 미국 문학에 문외한인데다 많이 팔린 책은 ‘분배 정의’ 차원에서 굳이 찾아 읽지 않는 습관 때문이다. 게다가 순전히 배우 비고 모텐슨 때문에 영화를 봤는데 크로넌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 같진 않았다.

최근에 총과 카메라에 관한 글을 쓰면서 원작을 읽게 되었다. 권총(pistol)은 남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것이다. 남성의 성기는 “물총”이고, 남성 문화에서 사정(射精)과 사정(射程)은 같은 의미다. 서구 여성주의는 전쟁과 무기, 남성성의 관련성을 ‘과도하게’ 주장해왔다.(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인식이 적다.) 나는 남성성보다 계급성을 더 강조하고 싶다. 상대가 ‘열 감지 유도(guided) 미사일’로 나올 때, ‘총’은 약자의 자결 진통제일 수 있다.

<로드>의 내용은 “적대적인 세상의 칼날 위에 서 있는 방랑자들의 이야기”, “지구 멸망 이후 생존기”, “지옥으로 가는 여정” 등 매체의 찬사로 대신한다. <로드>와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영화 <미스트>를 함께 읽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폐한 지구. 여성과 어린이는 강간당한 뒤 잡아먹히는 현실을 아는 아내는 “총알이 두 알 남았을 때 새 애인(죽음)”에게 떠난다.(67쪽) 남자와 아들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중 인육을 식량으로 삼는 약탈 무리를 만나 쫓기게 된다. 잡히면 그들의 식량이다. “돼지 삶을 때 쓰는 40갤런들이 주철 솥”(125쪽)이 기다리고 있다.(이 책의 식인 개념에는 개를 먹는 것도 포함되는데, 흥미로운 차이다.)

잡히기 전에 죽어야 한다. 이때 총은 가장 인도적인 도구이다. 마지막 한 발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 남자는 여윈 아들을 보듬고 총을 쥐여주며 말한다. “(만일 아빠가 먼저 잡히면) 무서워하지 마. 저 사람들이 널 발견하면 그래야 해. 알았지? 쉬. 울면 안 돼. 내 말 들려? 어떻게 하는지 알지. 그걸 입 안에 넣고 위를 겨냥해. 빨리 세게 해야 돼. 알았지? 울지 말라니까. 알아들었지?” 아이가 무섭다며 매달리자 남자의 미칠 것 같은 걱정. “총알이 안 나가면 어떡하지? 나가야 돼. 안 나가면 어떡하냐니까? 저 사랑하는 머리를 돌로 깰 수 있어?”(130~131쪽)

직면한 죽음 앞에서의 최선. 산 채로 먹히지 않으려면 한 번에 죽어야 한다. 총알이 안 나가서 아들을 죽여야 한다면? 사랑하는 이를 기술이나 도구 없이(하긴, 있어도) 죽여야 하는 상황. 총은 반드시 제대로 발사되어야 한다. 나는 이 구절에서 평소에는 ‘무시하던 인간’ “하느님, 제발…”을 나도 모르게 외쳤다.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은 총기 소지 자체가 폭력 문화의 원인이 아님을 밝혀냈다. 인구 대비 소지율은 캐나다와 스위스가 미국보다 훨씬 높지만, 총기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총이 아니라 문화가 문제인 것이다. 총은 기본적으로 살상이 목적이고, 사라져야 할 무조건적인 악인가. 그것이 평화일까. 총이 오발이든 정당방위든 타인에게 상해를 입힌다는 시각은 자기가 아닌 상대방의 피해를 전제한 ‘공격자’ 입장이다.

우리가 무기라고 부르는 것, 특히 재래식 무기는 필요한 맥락에 따라 무기가 아닐 수도 있다. 순결 이데올로기 때문에 불편한 비유이지만, 은장도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자기를 ‘지킨다’. 약자의 방어는 공격자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해치는 것이다.

살아남기보다 어떻게 죽는가가 더 절박한 사람들이 있다. 점점 많아질 것이다. 정당방위는 ‘정당한 살인’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리고 어떤 현실에서 정당방위는 ‘정당한 자살’이다. 죽음보다 살아있는 순간이 무서운 시대, 산 채로 죽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것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안락사’일까.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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