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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융 소설 |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8회

등록 2013-10-02 10:15수정 2013-10-08 09:48

강병융 소설 <8화>




자전거에서 내린 인간은 강정고령보1)에 서서 찬찬히 낙동강 상류를 바라보았습니다. 낙동강이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관이 눈앞에 쫘악 펼쳐졌습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이 절로 툭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두 다리가 후덜덜 떨렸습니다. 두 눈을 싹싹 비비고 다시 봐도 역시 대단한 광경이었습니다.

유유히 흘러야 할 초록빛의 강물2)은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이 거대한 강을 녹차로 만들어 홀랑 다 마시려고 작정한 것 같았습니다. 파란 강 위에 초록 돗자리를 깔아놓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강은 움직이기 힘겹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바위 구석구석에는 누군가가 쑥떡 반죽을 던져놓은 것 같았습니다. 새파란 하늘과 진초록 강의 만남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인간은 백팩에서 병을 꺼냈습니다. 앙증맞은 미니마우스 유리병이 가방에서 나왔습니다. 미니마우스는 입을 헤벌리고 방끗이 생쥐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껍질을 살살 벗기고 물로 몇 차례 쓱쓱 씻은 뒤 머리를 퐁 터트린 다음, 속과 뼈를 싹 발라서 얇게 자른, 쥐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쥐 슬라이스 미트를 바람이 솔솔 잘 통하는 곳에서 제대로 바싹 말려 만든 쥐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인간은 유리병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콧구멍을 최대한 크게 벌린 뒤, 아주 크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냄새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냄새를 제대로 음미한 인간은 유리병의 뚜껑을 꽉 돌려 닫았습니다. 그리고 바른손으로 유리병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인간은 유리병을 쥔 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뒤, 인간은 미니마우스 유리병을 녹색의 강에 힘차게 던졌습니다. 유리병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아름답고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초록의 강에 퐁당 하고 빠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만 손에서 찍 미끄러지는 바람에 보 바로 밑에 퐁 하고 떨어져 버렸습니다. 다행히 바위에 떨어지지 않아 깨지진 않았습니다. 유리병은 강물 속으로 폭 하고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녹색의 옷을 입고 수면 위로 쑤욱 올라왔습니다. 물 위로 올라온 병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녹색의 땅에 박힌 듯 가만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는 저 미니마우스 유리병도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강에 병을 내던지려다 그냥 빠뜨린 인간은 강정고령보 자전거종주 인증센터3)에서 자신의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 길 여행 패스포트4)에 도장을 꾸욱 찍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실었습니다. 페달을 힘차게 밟았습니다. 인간의 다음 목적지는 칠성보였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인지 너무나도 시원스럽게 잘 닦인 자전거 길에 자전거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떠난 자리에 왠지 장엄한 음악이라도 흘러나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쥐가 즐겨 들었다던 그 음악이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독자의 기호에 따라 주석에 밝힌 신문 기사들과 곁들여 읽으셔도 재미있습니다.

1) 〈연합뉴스〉 2013년 8월 7일 자 <낙동강 중류 달성보·강정고령보 ‘녹조띠’>

2) 〈YTN〉 2013년 8월 21일 자 <녹조 전국 확산 조짐…대책 마련 시급!>

3) 〈뉴시스〉 2012년 4월 29일 자 <자전거 길 인증제란>

4) 〈문화일보〉 2012년 4월 19일 자 <4大江 자전거 길 종주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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