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애도 시 연속 기고
한국작가회의 애도 시 연속 기고
한국작가회의와 <한겨레>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가족뿐 아니라 지켜보는 모든 이의 슬픔을 달래고 보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작가회의 회원들의 시를 연속으로 싣는다.
가만있어라, 지시에 따르라, 이 명령은
배가 출항하기 오래전부터 내려져 있었다
선장은 함부로 명령을 내리지 말라, 재난대책본부도
명령에 따르라, 가만있어라, 지시에 따르라
배가 다 기운 뒤에도 기다려야 하는 명령이 있다
목까지 물이 차올라도 명령을 기다려라
모든 운항 규정은 이윤의 지시에 따르라
침몰의 배후에는 나태와 부패와 음모가 있고
명령의 배후에는 은폐라는 검은 손이 있기에 이 나라는 명령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걸 기억하라
열정도 진정성도 없는 비열한 정부, 입신출세와
대박 챙길 일밖에 아무 관심도 없는 자들의 국가,
선장은 단순잡부 계약직, 장관은 단순노무 비정규직
그들이 내릴 줄 아는 명령은 오직 한가지뿐
가만있어라, 명령에 따르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서해훼리호가 침몰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지하철이 불타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안개처럼 흩어지고, 슬픔은 장마처럼 지나가고
아, 세상은 또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재난 따윈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저들
촛불시위와 행진과 민주주의가 더 큰 재난이라 여기는
저들이 명령을 하는 동안은, 결코 하지만 우리는 저 고귀한 지시를 따른다, 승객을 버리고
선장과 노련한 선원들이 첫 구조선으로 달아난 그 시각
선원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다!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끝내 오르지 못한 박지영, 선장!
우리는 그 정신을 따른다, 그 고귀한 명령을!
이슈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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