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직….”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의 올해 우승자 조성진(21)은 아직 앳된 소년의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불고 있는 ‘조성진 키드’ 붐에 대한 소감을 묻자, 긴장을 감추려 가벼운 미소를 짓던 얼굴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스쳤다. 돌아온 답은 다소 뜻밖이었다. “10년 후에는 제가 뭐라고 충고를 해줄 수 있겠는데. 지금은 저도 아직 불안정한 상황이고, 그래서 제가 감히 충고나 조언 같은 것을 하기엔 이른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올해 쇼팽 콩쿠르 우승자 자격으로 18일 일본 도쿄의 폴란드대사관에서 일본의 클래식 팬들과 첫인사를 했다. 조성진의 폭발적인 인기를 보여주듯 이날 기자회견엔 한국 특파원 10여명과 일본 언론의 클래식 담당 기자 50여명이 참석하는 등 큰 성황을 이뤘다. 조성진은 20~21일 이틀 동안 ‘엔에이치케이’(NHK) 교향악단과 함께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쇼팽 콩쿠르의 첫 갈라 콘서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팬들과 만난 이유에 대해 “콩쿠르 우승자가 도쿄에서 엔에이치케이 교향악단과 연주하기로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조성진은 자신이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했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이날 쇼팽 콩쿠르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쇼팽을 좋아하긴 하지만 쇼팽만 연주해야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콩쿠르가 끝난 뒤 조금 안심도 했다. 앞으로는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독일 음악가나 드뷔시 같은 프랑스 음악가들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콩쿠르 중엔 너무 긴장해서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나중에 유튜브 등을 통해 연주를 찾아보니 폴로네즈의 연주가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8개월간의 콩쿠르 준비 기간에는 하루에 4시간씩 연습했고, 중간중간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목욕도 했다”며 웃었다.
일본에서 진행된 인터뷰이다 보니 그가 15살이던 2009년에 우승했던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 때와 비교하는 질문이 많이 나왔다. 그는 ‘당시와 현재의 차이’를 묻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나는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청중들이 바뀌었다고 말해주시지만 스스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세계 최고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21살 청년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조성진은 우승 이후 쇼팽의 나라인 폴란드의 2개 도시에서 갈라 콘서트를 했고, 영국의 런던, 버밍엄 공연에 이어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연주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 공연에 나선다. 그는 “처음엔 우승에 대해 자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가 지난 뒤 많은 메일이 오고,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유명해지는 것도 매혹적인(fascinating) 일이지만 위대한(great) 음악가가 되는 게 더 중요하고 좋은 음악가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명해지기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 좋은 음악가가 되려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콩쿠르에서 그에게 유일하게 1점이란 박한 점수를 준 프랑스 심사위원 필리프 앙트르몽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그에게서 특별한 연락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영어와 일본어로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을 끝낸 뒤 한국 특파원들과의 추가 질의응답에서 음악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소신을 좀더 솔직히 이야기했다.
-쇼팽 콩쿠르에 대한 소감은?
“처음 나갈 땐 특별한 느낌은 없었는데. 우승을 하고 제 인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서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쇼핑은 제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평생 공부하고 연주해야 할 작곡가라고 생각해요.”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나?
“유명세를 좇기보다는 좋은 곡을 계속 연주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음악가 집안이 아닌데도 이렇게 훌륭한 재능을 갖게 된 비결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부모님이 제가 어릴 때 그림이나 운동 등 여러가지를 하게 해주셨어요. 저는 그런데 음악을 좋아했었고 어릴 때부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음악을 하다 보면 힘들거나 외로울 땐 없었나?
“하기 싫을 때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모든 음악 연주자는 모두 어느 정도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은 별로 큰 어려움은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서 매우 유명해졌는데.
“저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에 제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정말 너무 많이 응원해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너무 감사드리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