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고려 금속활자라며 공개한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는 그동안 문화재계에서 치열한 논란을 일으켰다. 남 교수는 증도가자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1377년)의 활자보다 훨씬 이른 13세기 활자라고 주장해왔다. 공인될 경우, 세계 인쇄문화사를 다시 써야 할 큰 발견이다. 활자의 진위를 놓고 첨예한 공방이 거듭되는 배경이다.
올해 초부터 이런 공방을 마무리하려고 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청과 전문가 소위를 꾸려 종합조사를 벌여왔다. 그런데 얼마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증도가자로 지목된 일부 활자(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품)가 가짜라는 분석 내용을 갑자기 공개해 혼선이 빚어졌다. 문화재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문화재위원회 소위 조사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도리다. 그런데 문화재 전문 연구자도 아닌 국과수 한 직원이 독단적인 연구 결과를 사전 협의도 없이 공개했고, 한 언론에서 증도가자 모두가 가짜라는 식으로 대서특필했다. 나중에 활자들 일부라도 진품으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과수의 위조설은, 증도가자 활자 재질을 볼 때 표면과 내부층의 청동 성분이 달라 서로 분리된 이중구조이며, 표면층에 후대 땜질한 흔적이 보인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40여년간 금속유물을 보존처리해온 필자의 경험으로는, 옛 청동유물은 부식 구조가 복잡해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청동제 유물이 산화해 생기는 부식생성물만 30종 이상이다. 상당수 증도가자에서 관찰되는 가루 같은 녹은 땅속 염화물에 의해 생기는 악성 녹인 염기성 염화제2구리로 보인다. 또 청동유물에서 표면과 내부 층의 이중구조는 대개 부식에 따른 밀도차이로 나타난다. 이중구조 부식층이 보인다고 섣불리 가짜로 단정하는 것은 문화재 보존과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동제 유물은 구리와 주석, 납이 주성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성분들의 상당부분이 녹 부식물로 변한다. 본래 금속성분은 유물 내부에 일부만 남고, 표면은 다양한 부식생성물로 변질되는 것이다. 유명한 청동거울인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숭실대 소장)의 경우, 형광엑스선(XRF) 분석으로 단면을 살펴보니 성분 비율이 구리 61.6%, 주석 32%, 납 5.77%로 나타났다. 그런데 부식된 거울 앞 표면만 분석해보면 구리 5.7~43.9%, 주석 50.9~80.3%, 납 4.3~17.5%로 나타나 분석 위치에 따라 성분 함유량이 크게 달랐다. 대부분의 청동유물들도 양상이 비슷하다. 그러나 국과수는 최근 만든 활자나 녹이 별로 슬지 않은 조선시대 활자만을 기준 삼아 훨씬 이전 시기 추정품인 증도가자를 가짜로 단정했다.
문화재 분석은 유물을 파괴하지 않는 게 원칙이나, 증도가자 진위 공방이 여러 해 계속되며 혼란을 빚어온 상황에서 문화재청과 소장자에게 일부 파괴분석을 제안한다. 소장자의 활자 1~2점과 가짜로 지목된 활자를 시료로 골라 각각 반으로 잘라놓고 내부를 정밀조사한 뒤 복원하는 것이다. 파괴분석을 하면 엑스선 투영 등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연녹인지, 약품을 쓴 인공 녹인지 확실하게 가릴 수 있다. 활자의 내부 단면도 바로 확인된다. 문화재청 소위에서 구상중인 여러 조사방법 등도 당연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 마침 북한 개성의 고려궁터인 만월대 발굴조사에서 금속활자 한 점을 찾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모든 관계자들이 발굴된 활자를 포함한 비교자료와 방법을 최대한 활용해 역사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진위 문제를 풀어가길 바란다.
이오희 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이오희 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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